크리스천으로 참되게 살아간다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전(殿)인 거룩한 성전(聖殿)으로서의 합당한 몸가짐을 해야 한다. 예배(禮拜)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비밀(秘密)을 깨닫고, 행함 있는 믿음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實踐)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기본자세(基本姿勢)라 할 것이다.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사람들, 즉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멀리하고 꼭 없애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참된 신앙을 방해(妨害)하고, 이것들을 멀리하고 깨끗이 치운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참된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꼭 없애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욕심(慾心)의 보따리를 치워 없애야 한다.(막 10:22)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욕심(慾心)은 사망(死亡)이라는 결론(結論)이 성립(成立)된다. 욕심 때문에 비방(誹謗)하게 되고, 빼앗게 되고, 저주(咀呪)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 욕심(慾心)을 꼭 없애야 할 것이다.
다음은 염려(念慮)의 사슬을 끊고 없애 버려야 한다.(마 13:22) 마태복음 6장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기록하고 있다. 염려(念慮)는 모든 일의 승리(勝利)를 패배(敗北)로 만드는 씨앗이다. 마음에서 염려를 빼어 버릴 때 믿음이 생기고, 믿음 위에 확신(確信)이 생겨 모든 일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염려는 마음에서 꼭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이다.
다음은 의심(疑心)의 안개를 걷어 버리고 없애 버려야 한다.(마 28:17) 야고보서 1장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疑心)하지 말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의심은 헛된 관심(關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생각을 가미(加味)했기 때문에 의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믿음을 방해(妨害)하는 가장 큰 적이 의심(疑心)이다. 의심(疑心)은 무서운 결과를 낸다. 의처증(疑妻症), 의부증(疑夫症), 나아가서 살인(殺人)까지 저지르는 결과를 내는 것이 작은 의심의 씨앗이다. 그렇기에 의심은 마음에서 없애 버려야 할 가장 위험한 씨앗인 것이다.
다음은 교만(驕慢)의 함정(陷穽)에서 빠져 나와 없애 버려야 한다.(눅 18:12)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驕慢)은 멸망(滅亡)의 선봉(先鋒)이요”라고 기록하고 있다. 교만함은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높이기에 급급(汲汲)한 사람은 결국 자신이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즉 멸망(滅亡)으로 간다는 말이다.
우리들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주관(主管)하신다. 부(富)하게도 하시고 가난(家難)하게도 하시고, 시작도 끝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여긴다면 이는 교만의 모습이고 교만(驕慢)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결과이기에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마음에서 교만(驕慢)을 반드시 없애 버려야 한다.
다음은 편견(偏見)의 눈을 치워 없애 버려야 한다.(마 13:55) 디모데전서 5장 12절에 “너는 편견(偏見)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偏僻)되이 하지 말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을 깨닫는 순간 편견(偏見)과 편벽(偏僻)은 사라질 것이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공평(公平)하게 만드셨다. 사랑도 긍휼(矜恤)도 자비(慈悲)도 은혜(恩惠)도 축복(祝福)도 공평(公平)하게 나눠주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만이 최고(最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며 자신만이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시초인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따먹은 선악과(善惡果)가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 믿고 하나님을 배반(背反)하여 범죄(犯罪) 하였다. 결국은 하나님과 떨어져 살아야 되는 인생이 되었고, 남자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고, 여자는 잉태(孕胎)하는 고통(苦痛)을 알게 된 것이다.
창조주(創造主)이신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의심(疑心)과 편견(偏見)을 가졌기 때문이다. 편견(偏見)은 치우친 생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말한다. 공평(公平)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만이 편견이 없으신 것을 안다면 나의 생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제나 사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죽음도 헛되게 하는 삶을 살 뿐임을 명심하여 오늘도 돌이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을 모시기에 부적합(不適合)한 모든 것들을 깨내 놓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자리하고 있는 곳이 타락(墮落)의 자리라면 빨리 일어나 깨끗한 성결(聖潔)된 자리로 옮겨 앉기를 바란다.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결단(決斷)하기를 원하신다. 무사안일(無事安逸)의 자리에서 험난하더라도 정결한 자리로…….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사람들, 즉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멀리하고 꼭 없애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이것들은 참된 신앙을 방해(妨害)하고, 이것들을 멀리하고 깨끗이 치운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참된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꼭 없애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욕심(慾心)의 보따리를 치워 없애야 한다.(막 10:22)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욕심(慾心)은 사망(死亡)이라는 결론(結論)이 성립(成立)된다. 욕심 때문에 비방(誹謗)하게 되고, 빼앗게 되고, 저주(咀呪)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 욕심(慾心)을 꼭 없애야 할 것이다.
다음은 염려(念慮)의 사슬을 끊고 없애 버려야 한다.(마 13:22) 마태복음 6장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기록하고 있다. 염려(念慮)는 모든 일의 승리(勝利)를 패배(敗北)로 만드는 씨앗이다. 마음에서 염려를 빼어 버릴 때 믿음이 생기고, 믿음 위에 확신(確信)이 생겨 모든 일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염려는 마음에서 꼭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이다.
다음은 의심(疑心)의 안개를 걷어 버리고 없애 버려야 한다.(마 28:17) 야고보서 1장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疑心)하지 말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의심은 헛된 관심(關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생각을 가미(加味)했기 때문에 의심이 시작되는 것이다. 믿음을 방해(妨害)하는 가장 큰 적이 의심(疑心)이다. 의심(疑心)은 무서운 결과를 낸다. 의처증(疑妻症), 의부증(疑夫症), 나아가서 살인(殺人)까지 저지르는 결과를 내는 것이 작은 의심의 씨앗이다. 그렇기에 의심은 마음에서 없애 버려야 할 가장 위험한 씨앗인 것이다.
다음은 교만(驕慢)의 함정(陷穽)에서 빠져 나와 없애 버려야 한다.(눅 18:12)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驕慢)은 멸망(滅亡)의 선봉(先鋒)이요”라고 기록하고 있다. 교만함은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높이기에 급급(汲汲)한 사람은 결국 자신이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즉 멸망(滅亡)으로 간다는 말이다.
우리들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주관(主管)하신다. 부(富)하게도 하시고 가난(家難)하게도 하시고, 시작도 끝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여긴다면 이는 교만의 모습이고 교만(驕慢)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결과이기에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고 마음에서 교만(驕慢)을 반드시 없애 버려야 한다.
다음은 편견(偏見)의 눈을 치워 없애 버려야 한다.(마 13:55) 디모데전서 5장 12절에 “너는 편견(偏見)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偏僻)되이 하지 말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을 깨닫는 순간 편견(偏見)과 편벽(偏僻)은 사라질 것이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공평(公平)하게 만드셨다. 사랑도 긍휼(矜恤)도 자비(慈悲)도 은혜(恩惠)도 축복(祝福)도 공평(公平)하게 나눠주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만이 최고(最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며 자신만이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시초인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따먹은 선악과(善惡果)가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 믿고 하나님을 배반(背反)하여 범죄(犯罪) 하였다. 결국은 하나님과 떨어져 살아야 되는 인생이 되었고, 남자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고, 여자는 잉태(孕胎)하는 고통(苦痛)을 알게 된 것이다.
창조주(創造主)이신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의심(疑心)과 편견(偏見)을 가졌기 때문이다. 편견(偏見)은 치우친 생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말한다. 공평(公平)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만이 편견이 없으신 것을 안다면 나의 생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제나 사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죽음도 헛되게 하는 삶을 살 뿐임을 명심하여 오늘도 돌이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을 모시기에 부적합(不適合)한 모든 것들을 깨내 놓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자리하고 있는 곳이 타락(墮落)의 자리라면 빨리 일어나 깨끗한 성결(聖潔)된 자리로 옮겨 앉기를 바란다.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결단(決斷)하기를 원하신다. 무사안일(無事安逸)의 자리에서 험난하더라도 정결한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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