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가 60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사실까요? 못 다 한 사랑을 아쉬움없이 쏟아부으며 사랑하지 않으실까요? 후회없이, 열정을 다하여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안타까운 현실은 사랑하는 사람을 도리어 괴롭힌다는 점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어떤 기대를 품고, 상대방이 이렇게 해주기를 요구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느 이혼 담당 변호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나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애초에 배우자를 자기와 함께 살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해가 지나도, 혹은 몇 해가 되기도 전에, 배우자가 변화되지 않으면 이혼을 택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성품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매 순간 선택하면서, 배려하면서, 이해하면서, 용서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가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완성된 행복이란 어느 가게에서도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배워가며 행복해지도록 하셨습니다. 다른 열매는 없어도 사랑의 열매만은 주렁 주렁 맺히는 연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두번째로 드는 생각은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스포켄에서 만난 분들 가운데 가장 기분좋은 사람은 작은 일에서도 감사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는 12명 가족이 죽 한 냄비를 끓여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생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내일이라는 말은 너무 사치하고, ‘냉장고에 먹을 음식’이라는 말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얼마나 풍요롭게 살고 있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은 냉장고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집이 커지면 감사의 크기가 커질까요? 감사만큼 좋은 항암제는 없고, 함께 덮은 이불처럼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해줍니다. 감사하는 나무에서 행복의 새와 축복의 새가 머뭅니다. 10명 모두를 고쳐주셨는데, 그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17:17)고 물으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우리는 365일 내내 감사할 것입니다.

세번째 생각은 겸손하게 사는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주님은 너무도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태어나심도 말구유에서, 죽으심도 십자가에서,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주님이 대신 달리셨습니다. 죽는 날까지 겸손하게 해주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교만할 때 언제나 넘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요, 멸망의 지름길 아닙니까? 우리 생애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사랑을 베풀면서 살고 싶습니다.

달력을 넘기며, 이기범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