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자’로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명자에게는 핑계나 변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명자는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갖습니다. 사명자는 전도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갖는 자들입니다. 때로 전도하는 것이 미련하거나, 무식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도는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통법규는 세계적으로 까다롭기 이를데 없는 강한 규제를 담고 있습니다. 정해진 속도, 법규, 규칙등 자동차 운전자들이 지켜야 할 내용 및 알아야 할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까다로운 교통법규도 생명과 관련된 일에는 예외가 됩니다. 생명이 촌각에 달린 환자를 태우고 가는 앰뷸런스를 위해 소방차나 경찰차가 에스코트를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 모든 차량들은 운행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 앰뷸런스는 정지해야 할 빨간 신호등도 지나쳐버립니다. 좌회전 금지구역에서도 마음대로 좌회전합니다. 앰뷸런스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어도 사람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앰뷸런스는 생명을 다루는 차량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바로 생명과 연관된 일입니다. 시간이 남아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제1의 우선순위를 갖습니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은 최우선순위가 부여됩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제 딸 아이가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때를 말입니다. 앰뷸런스에서 내려진 제 딸이 병원 응급실로 들어서는 순간, 병원에서는 통상 코드블루라고 불리우는 비상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응급의사들, 간호사들, 의료기사들이 달려오며 병원 전체가 마치 제 딸아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과 같이 급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정말 생명의 고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향하여 초점을 맞춘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9/11 사태 때 무너진 잔해더미 속에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뉴욕시 전체가 통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불평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팔 물건을 오히려 구조작업을 벌이는 소방관들과 구조요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모든 차량의 통행이 제한되었어도 그것 때문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명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관련된 일이 우리의 사명이기에 우리는 최우선순위를 이것에 두어야 합니다. 물질도 드리고, 시간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생명과 관련된 일에 무관심하다면 범죄입니다. 미국법은 생명과 관련된 일이라면 사유재산권 마저도 소유주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아끼는 고가의 자동차라 할지라도 생명을 다루는 일에 한해서는 경찰 또는 이에 관련된 사람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거부하면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우선순위가 부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해야 하느냐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시간과 물질 마저도 아까와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시간과 물질의 여유가 있느냐에 대하여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전제요, 의무이며, 특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