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환상적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물들기 시작하던, 1997년 10 월 16일, 8명의 이름없고 가난하며 상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우리 교회는 아주 작은 모습으로, 첫 성경공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 이후 지난 12년간, 영어권, 한어권, 스페니쉬권, 국내외 지교회 등 적지 않은 가족으로 불어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많이 자라났습니다.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오늘, 창립 12주년을 맞이하며, 이 같은 부흥이나 성장의 감격보다 더욱 저를 감격케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 그 분이심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지난 12년간 예수님은 제게 가장 믿음직스러운 최고의 파트너이시었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그 분께 달려 나가 대소사를 상의드리며, 개인적, 목회적 희노애락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주님과의 교제가 지속되면서, 예수님은 그저 저를 도우시는 단순한 파트너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지금도 여전히 제게 최고의 senior 파트너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단순한 파트너를 넘어, 제 영혼의 가장 가까운 연인이자 신랑으로 깊이 인식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저를 신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과연 이 지면을 빌어 제 안에 늘 타듯이 끓어오르는 이 감격과 기쁨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12년간의 목회는 무엇보다 저와 주님과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같은 변화는 제게는 참으로 혁명적인 자아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언젠가, 연속적으로 드려진 80일 기도회 이후, 비행기 안에서 뚜렷이 들은 주님의 음성, “아가서를 공부하라.” 이 음성과 함께 시작된 사랑의 탐색 속에서, 저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차원으로 우리 주님을 새로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아가서의 솔로몬처럼 신부된 교회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시는 신랑이요, 사랑에 빠진 제 영혼의 연인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발견과 함께, 저는 나날이 빠지듯 깊어지는 주님과의 사랑 속에서 그저 기뻐하고 행복한 신부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목회는 오직 사랑하는 주님을 위한 사랑의 수고로 여겨지기에 그저 기쁘고 감사했으며, 성령님께서는 매일 매일 보다 깊은 차원의 헌신으로 저를 이끌고 가심이 느껴졌습니다.

인디아 네팔 선교 여행을 앞둔 어느 날, 성령님께서는 행 20:24 말씀으로 저를 감동하셨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즉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떠올리시면서 성령님은 제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의 생명을 주었듯이, 너도 인도나 네팔을 위하여 너의 생명을 줄 수 있겠느냐?” 충격 속에 저는 비로소 선교의 의미를 마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이요, 증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를 의미한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동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선교 여행을 떠나지만, 선교는 사실상, 그 민족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주겠노라는 결단 가운데 일어나야함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의 궁극적 핵심은 주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까지 포기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내 영혼의 연인이신 우리 주님은 제게 생명을 거는 사랑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새벽, 네팔의 순진무구한 영혼들의 수많은 눈동자들을 떠올리며, 인도의 고난에 찌든 무수한 슬픈 얼굴들을 떠올리며 많은 눈물 속에 저는 대답했습니다. “우리 딸은 주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라면 언제든지 저의 생명까지 저들에게 주겠습니다.”

과연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합니다, 이제 12돌을 맞이한 우리 인터내셔널 갈보리 교회가 계속하여 주님과의 거룩한 사랑에 빠진 순결하고, 강하며, 행복한 신부와 같은 교회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