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말씀 6: 두날개 소그룹 셀 가족 모임
본문: 사도행전 2:42-47

셀가족 모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매일 모였다. 매일 모여 말씀을 외우고 떡을 뗐다. 무슨 교회를 매일 가나? 매일 가는 것이다. 성경적인 삶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신은 나의 가족입니다” 매일 모이지 않는 가족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똑같은 피, 예수의 보혈이 흐르고 있다. 초대교회를 보라. 핍박을 받고 모두 쫓겨갔다.

공동체 운동을 비슷하게 한 자들이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초대교회는 소그룹으로 모여 교제를 나누고 대그룹으로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 둘이 균형을 이루는 교회가 두날개다. 상호 책임을 지고 서로 의지하는 교회. 그런 공동체였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주일 예배와 주중에 소그룹으로 모여 교제를 나누는 교회이다. 하나님이 디자인한 교회는 두날개다. 두 날개가 평형을 이룬다. 소그룹 1000명이면 주일 1000명이 건강한 교회이다.

로마의 땅 밑에 200Km가 넘는 천연 동굴이 있었다. 200년이 넘도록 핍박했다. 그래서 카타콤에 들어가면 찾을 길이 없었다. 이곳에서도 소그룹과 대그룹이 있었다. 대그룹 예배는 축제 예배다. 옛날에 드린 예배는 조용한 절간이었다. 그러나 대그룹 예배는 축제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축제를 열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가장 싫어했던 자는? 살진 송아지. 초청예배는 새로온 탕자, 오래 된 탕자 모두 온다.

옛날에는 강단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은? 축제다. 지금은 예배에 춤이 들어간다. 춤과 노래로 예배했다.

전통예배는 묵도, 찬송, 기도, 찬송, 설교, 기도, 찬양하는 예배. 한 두 번 일어났다 앉았다하는 예배였다.

전인적인 소그룹. 우리가 가족이다. 우리가 가족입니까? 함께 모여있으니 가족? 그러나 예배가 끝나면 뿔뿔히 흩어져 버린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콩자루 교회가 있다. 자루 안에 있을 때는 하나인 것 같은데 풀어 놓으면 온 방에 흩어져 있다. 콩을 하나로 묶어놓은 메주가 되어야 한다. 생긴 것은 메주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전인적인 소그룹을 통해 하나님의 친밀함과 따뜻함을 경험하고, 대그룹을 통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되었을 때 공동체를 파괴했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사단은 끊임없이 공격해온다. 우리가 하나 되었을 때 우리는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는데 사단은 이혼을 통해 가정을 파괴한다. 어느 가정에서 전화가 왔다. 주례서주었던 교인 가정이었다. 이혼하겠다고.. 와서 예배를 드려달라고 했다. 가보니 온 파편이 온 집에 가득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마귀형상. 두 사람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악한 영은 떠나가도록 기도했다. 둘이 나가 떨어져 30분 후에 일어나더니 정신을 차리고는 왜 이렇게 되었냐고....

사단은 교회 공동체, 소그룹 공동체, 가정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한다. 313년 콘스탄틴은 어머니가 예수 믿고 많은 귀족들이 예수 믿고 있었을 때 정치적으로 살기 위해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그리고 지하의 그리스도인들을 지상으로 나오게 했다. 로마가 공인하자 전 세계로 확장하였다. 기독교는 핍박을 받아야 부흥한다. 중국을 보라. 모택동을 중국에 보낸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두날개 미국 사역 후에 중국 사역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통역을 세워서 했다. 훈련 중간 쯤 부흥이 일어났다. 손을 들고 찬양하게 되었다. 기도도 한 시간을 하도록 했다. 잘못 배운 것이다. 뜨겁게 기도할 줄도 모르고 찬양할 줄도 몰랐다. 그들이 한 시간 동안 찬양하고 기도한다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가능성을 보았다.

대만 역사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대만 사람들이 1단계 훈련을 마치고 우르르 대륙으로 들어갔다.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미국에 왔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313년 교회를 지어주고 합법적으로 모이게 한 다음 소그룹 모임을 없애버렸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의 한 날개가 없어졌다. 그 때부터 교회는 한쪽 날개로 퍼덕 거리면서 날았다. 금세기에 오기까지 한쪽 날개를 회복하지 못하고 교회는 한쪽 날개로 날았다.

종교개혁을 통해 믿음과 말씀은 회복했지만 한쪽 날개는 회복하지 못했다. 한 가족, 하나, 한 공동체란 사실을 잊어버리도록 했다. 17세기 요한 웨슬레를 통해 소그룹이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속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초대교회와 같은 소그룹은 한국에서 시작하였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초대교회의 소그룹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한국교회가 회개 운동과 함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성령 운동과 교회 안에 있는 신비주의자들을 통해 이단들도 함께 일어났다. 해방 후에 교회는 은사주의자들에 의한 상처가 많았다. 얼마 후 6,25를 겪으면서 기도운동이 일어났다. 기도하면 은사가 나타난다. 자연히 고전 12장의 은사가 나타난다. 6.25후 은사자들. 장로교회는 그런 은사자들을 모두 쫓아냈다. 잘못된 은사자들 때문에 교회가 많은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은사자들을 몰아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여의도로 여의도로 갔다. 전도는 누가 하나? 성령의 불을 받아 뚜껑이 열린 사람들이 한다. 장로교회는 불 받은 사람들을 모두 몰아냈다. 은사를 몰라 관리하지 못하여 다 몰아냈다. 병이 나면 누구에게 가겠는가? 은사자에게 간다. 은사자들도 잘못되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여의도로 여의도로 갔다.

엄청난 부흥이 일어나 3만명이 될 때 어떻게 관리하느냐 문제가 있을 때 서울 시 지도를 놓고 교구, 대교구, 지역, 구역등 조직을 만들어 70만명이 넘는 교회로 만들었다. 소속감과 친밀함을 느끼고 나누었다.

장로교회는 구역이라는 제도를 배워왔다. 그때부터 조직을 배웠지만 그 안에 있는 생명을 보지 못했다. 70년대 여의도순복음교회 구역장은 빨간 가방을 가졌다. 장로교회 목사들이, 장로교회 여전도사 10명보다 순복음교회 구역장이 더 나았다. 안되면 금식했다. 늘 물병가지고 다녔다. 목소리가 다 갈라져있었다. 성대 결절이 일어났다. 구역원들을 위해 밤새 철야하고 기도하고,.... 구역원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금식하고 기도했다. 가족이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 장로교회는 이런 정신, 생명력, 성령의 역사는 보지 못하고 제도만 배워왔다. 그들은 새 신자가 오면 그냥 성령받게 했다. 받을 때까지 기도했다. 받은 척이라도 해야 끝났다.

한 구역장이 있었다. 새댁이 전도되니 아침에도 기도하고, 낮에도 기도하고, 저녁에는 가서 기도하고.... 뭘 사면 하나 가져다주고..

장로교회는 이렇게 한다. 이 집사가 사업에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통성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그리고 끝이다. 그들은 어떻게 했느냐? 그들은 부도를 내게 한 귀신을 쫓아내는 기도를 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감동 주시는 대로 돕는 일을 했다. 실행했다. 그들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왜? 가족이니까? 회원 관리가 아니었다. 상호 보존, 상호 의존, 상호 책임이다. 그 정신을 장로교회는 몰랐다. 제도만 배웠다. 그러니 구역을 해도 안되었다. 획득된 권위가 없었다. 장로교 목사들이 그 구역장을 빼내려고 노력했다. 100명 200명 전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안되면 금식하고....

새댁이 졸지에 교회에 등록을 하고 매일 10 사람이 과잉 보호를 하니 문제가 생겼다. 이사를 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했다. 압구정 뒤에 뒷구정으로 야반도주 하듯이 이사를 했다. 새벽에 짐을 풀고 있는데...

셀그룹이 무엇인가? 상호 책임지고 상호 의존하는 리더. 주님의 심장이 없이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마음이 없이는 될 수 없다. 성령에 사로잡히지 않고는 되지 않는다. 그런 정신으로 살았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호박에다가 수박 넝쿨 건다고 수박되지 않는다. 정신을 알아야 한다.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여의도교회가 국제 컨퍼런스를 통해 많이 배워갔다. 랄프 네이버가 그것을 배워서 성공했다. 서구 사회에 잘 맞도록 업그레이드를 하고 싱가폴에서 성공했다. 모든 공동체는 성장하면 제도화되고 생명력을 멈춘다. 구역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여의도교회는 셀그룹이론을 받아들였다. 세계 100대 기업도 20년 이상 100대 기업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15년으로 끝난다. 15년 후의 시대를 예견하지 못하면 도태하고 만다. 여의도 교회는 결국 구역 이론을 보완하는 것으로 끝났다.

생명력이 넘쳐야 한다. 생명력, 번식이 중요하다. 이름이 무엇이든. 상호 책임, 상호 의존, 사랑, 번식이 일어나느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셀그룹이다. 이런 이름을 가졌어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셀교회가 아니다.

장영규 목사(보스톤제일교회 담임ㆍNYTS 구약해석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