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북미 원주민 선교의 여름 선교 사역인 '사랑의 군병들 2009'이 지난 8월 12일 토론토의 '하나님의 지팡이 교회' 선교팀이 전원 무사히 귀가하므로 대진군의 막을 내렸다.
물론 그렇다고 선교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기에.
1997년 여름, 불과 2교회 17명으로 시작된 북미 원주민 연합 선교가 이제는 토론토, 몬트리올, 뉴욕, 뉴저지 등지 50여 개 교회, 500여명이 넘는 연합팀이 파송되는 경이적인 선교운동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뉴욕에서 개최 되었던 선교 대회에는 월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2천여명이 넘게 참석해 뉴욕순복음교회의 본당을 꽉채워 한민족 성도들의 선교 열기를 능히 실감하고도 남았다.
특히 뉴욕, 뉴저지 한인 교회들의 연합 선교에 대한 호응이 뜨거웠다. 너무 많은 성도들이 지원해 선교지 출발을 불과 1주일 남겨놓고 더 많은 선교지 확보를 위해 미네소타와 위스콘신으로 날라갔다. 2~3년이 걸려도 선교의 문이 잘 열리지 않는 보호구역의 문이 열려지는 기적을 맛보았다. 또한 지난 2년 동안 문을 열었던 선교지가 갑자기 문을 닫고 책임자들이 이리저리 회피하는 곳에 선교팀이 들이닥쳐 도착 당일 문이 열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아무튼 주님의 은혜로 500명이 넘는 대선교군단이 모두 여름 선교를 마치고 이제는 일상생활로 돌아가 있는 상태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기는 청교도들이 세운 북미땅인데, 어째서 복음의 사각지대(미국과 캐나다의 3000여 곳의 원주민 보호 구역)가 북미 땅 곳곳에 산재해 백주의 복음을 거부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이유를 알면 당신은 이미 원주민 선교사이다. 우선 그들을 부르는 호칭부터 변한다. '인디언'이라는 모욕적인 호칭으로부터 '원주민'이라는 존칭으로 말이다.
북미 원주민 선교가 세계 선교의 사각지대로 변한데는 서구 선교 신학자들의 고의적인 외면에서 비롯된다. 북미 원주민 선교를 수면으로 떠올리게하기 위해서는 서구 기독인들의 고해 성사가 따라야 되기 때문이다.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권을 팔아 넘겼노라'는 에서의 뼈아픈 고백,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나오는 ''도적'일을 우리들이 탐욕에 눈이 어두워 원주민들에게 저질렀노라'는 참담한 고백 말이다.
서구 기독교인들은 미전도 종족 이론에서 북미땅에 엄연히 실재하는 700여 원주민 종족의 이름조차도 완전히 제해버렸다. 그리고는 복음이 지나간 자리이기에 오늘날 북미 원주민들의 복음 거부는 순전히 그들의 책임이라고 오히려 덮어 씌우는 일까지 있다. 북미 원주민 입장에서는 복음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복음을 빙자한 잔혹한 식민지가 할퀴고 지나갔기에, 아니 지금도 그 식민정책이 진행되고 있기에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본받지 아니하고 기독교라는 종교를 등에 업고 인도자에서 지도자로, 지도자에서 지배자로, 무서운 독재자로 변질된 서구 기독인들의 과오를 불식하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 가야한다.
이제 수많은 한인 교회들과 성도들이 북미 원주민 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북미 원주민 선교사로서, 행여나, 참된 복음 대신 '서구 우월주의', '서구 식민주의'에 오염된 병든 복음으로, 서구인들이나 우리 한인들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원주민들로부터 받고 선교지의 문들이 일시에 다 닫혀버리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마태 11:28), 우리를 섬기려고 오신 주님(마가 10:45), 자기를 비우고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엡 2:8),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신 주님(요 4:7)을 통해서만이 북미 원주민들에게 복음의 본질을 전할 수 있다.
이제 원주민들은 지난 500년간 죽임 당하고, 속임 당하고, 파괴당해 왔기에 아무도, 무슨 말도 믿을 수 없는 피해 망상증 환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기에 북미 원주민 선교는 오랫동안 신뢰를 쌓고 성육신 된 복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안된다. 거리가 머네, 돈이 많이 드네,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네 하면서 우리들의 편리함과 계산과 공로를 따지는 사람들은 아예 원주민 선교를 시작 조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교회나 선교기관들은 아예 북미 원주민 선교는 비껴가는 것이 피차에 좋다. 그러기에 북미 원주민 선교는 600만 원주민 복음화 뿐만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철저히 이해하고 변질된 유사 복음의 홍수 속에서 생수와 같은 순전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선교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기에.
1997년 여름, 불과 2교회 17명으로 시작된 북미 원주민 연합 선교가 이제는 토론토, 몬트리올, 뉴욕, 뉴저지 등지 50여 개 교회, 500여명이 넘는 연합팀이 파송되는 경이적인 선교운동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뉴욕에서 개최 되었던 선교 대회에는 월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2천여명이 넘게 참석해 뉴욕순복음교회의 본당을 꽉채워 한민족 성도들의 선교 열기를 능히 실감하고도 남았다.
특히 뉴욕, 뉴저지 한인 교회들의 연합 선교에 대한 호응이 뜨거웠다. 너무 많은 성도들이 지원해 선교지 출발을 불과 1주일 남겨놓고 더 많은 선교지 확보를 위해 미네소타와 위스콘신으로 날라갔다. 2~3년이 걸려도 선교의 문이 잘 열리지 않는 보호구역의 문이 열려지는 기적을 맛보았다. 또한 지난 2년 동안 문을 열었던 선교지가 갑자기 문을 닫고 책임자들이 이리저리 회피하는 곳에 선교팀이 들이닥쳐 도착 당일 문이 열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아무튼 주님의 은혜로 500명이 넘는 대선교군단이 모두 여름 선교를 마치고 이제는 일상생활로 돌아가 있는 상태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기는 청교도들이 세운 북미땅인데, 어째서 복음의 사각지대(미국과 캐나다의 3000여 곳의 원주민 보호 구역)가 북미 땅 곳곳에 산재해 백주의 복음을 거부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 이유를 알면 당신은 이미 원주민 선교사이다. 우선 그들을 부르는 호칭부터 변한다. '인디언'이라는 모욕적인 호칭으로부터 '원주민'이라는 존칭으로 말이다.
북미 원주민 선교가 세계 선교의 사각지대로 변한데는 서구 선교 신학자들의 고의적인 외면에서 비롯된다. 북미 원주민 선교를 수면으로 떠올리게하기 위해서는 서구 기독인들의 고해 성사가 따라야 되기 때문이다.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권을 팔아 넘겼노라'는 에서의 뼈아픈 고백,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나오는 ''도적'일을 우리들이 탐욕에 눈이 어두워 원주민들에게 저질렀노라'는 참담한 고백 말이다.
서구 기독교인들은 미전도 종족 이론에서 북미땅에 엄연히 실재하는 700여 원주민 종족의 이름조차도 완전히 제해버렸다. 그리고는 복음이 지나간 자리이기에 오늘날 북미 원주민들의 복음 거부는 순전히 그들의 책임이라고 오히려 덮어 씌우는 일까지 있다. 북미 원주민 입장에서는 복음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복음을 빙자한 잔혹한 식민지가 할퀴고 지나갔기에, 아니 지금도 그 식민정책이 진행되고 있기에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본받지 아니하고 기독교라는 종교를 등에 업고 인도자에서 지도자로, 지도자에서 지배자로, 무서운 독재자로 변질된 서구 기독인들의 과오를 불식하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 가야한다.
이제 수많은 한인 교회들과 성도들이 북미 원주민 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북미 원주민 선교사로서, 행여나, 참된 복음 대신 '서구 우월주의', '서구 식민주의'에 오염된 병든 복음으로, 서구인들이나 우리 한인들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원주민들로부터 받고 선교지의 문들이 일시에 다 닫혀버리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마태 11:28), 우리를 섬기려고 오신 주님(마가 10:45), 자기를 비우고 종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엡 2:8),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신 주님(요 4:7)을 통해서만이 북미 원주민들에게 복음의 본질을 전할 수 있다.
이제 원주민들은 지난 500년간 죽임 당하고, 속임 당하고, 파괴당해 왔기에 아무도, 무슨 말도 믿을 수 없는 피해 망상증 환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기에 북미 원주민 선교는 오랫동안 신뢰를 쌓고 성육신 된 복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안된다. 거리가 머네, 돈이 많이 드네,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네 하면서 우리들의 편리함과 계산과 공로를 따지는 사람들은 아예 원주민 선교를 시작 조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교회나 선교기관들은 아예 북미 원주민 선교는 비껴가는 것이 피차에 좋다. 그러기에 북미 원주민 선교는 600만 원주민 복음화 뿐만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철저히 이해하고 변질된 유사 복음의 홍수 속에서 생수와 같은 순전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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