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특징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어떤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이 바로 이러한 종교주의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자주하는 말이 호언장담입니다. "알라신이 우리를 이기게 할 것이다" 이슬람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부처님이 우리를 지킬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로 생각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들을 교만케 할 이유는 아닙니다.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는 이방인을 개로 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만 사랑하시고 다른 족속들은 멸시 하시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의외로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최고야. 우리 교회에 와야 구원을 받아. 축복 받아 . 우리 교파가 참된 교회고 우리 교회만 진짜 성도가 모이는 곳이고, 다른 덴 다 가짜들이야’ 더 잘 쓰는 말은 ‘배교한 사람들이야. 주님이 떠난 교회야’ 그럽니다. 이 얼마나 교만한 말입니까? 하나님을 빗대어 자신을 높이는 자세들입니다.

네 번째 특징은 자신들만이 하나님과 직통 라인을 갖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말합니다. (롬 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러나 바울의 논조는 그럼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느냐? 그럼 행하라 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지요.. 많이 알수록 행할 의무가 많은데 유대인들은 행함에는 느리고 말에는 빠릅니다. 선을 행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악을 행함에는 얼마나 교묘한지 모릅니다.

다섯번째 특징은 종교주의 자일수록 높은 도덕성을 가진 것을 자랑합니다.

물론 높은 도덕성을 지닌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것이지요. 저는 여러분이 높은 도덕성을 가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나 높은 도덕성을 지녔다고 그것으로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바람직한 가치관과 도덕성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이롭게 하는 요소이지 그것으로 천국을 갈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 아니 모든 종교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높은 도덕적인 삶에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교회 안가도 됩니다.

왜냐면 교회 나가는 (사람) 것들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알코올 중독에다가 좀도둑 아닙니까? 저게 감옥서 뭐 예수를 믿었다나요? 그러면 뭘 합니까? 전과자인걸요?
또 매일 이말 저 말 속닥거려서 사람들 이간질이나 시키고, 얼마나 치사한지 먹는 곳은 빠지지 않고 다 찾아다니면서 자기가 뭐 한번 사는 것 못 봤어요. 저 사람은 주위 사람과 안 싸운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저런 사람이 교회 가서 구원 받는다면 나는 천 번도 더 갔을 거예요.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 많이 만나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의로움은 하나님 앞에서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오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율법의 교훈을 받아 .. (롬 2:18)

유대인들은 남자가 13세만 되면 언약의 아들 이란 이름으로 일컫는 성인식을 합니다. 이때 모세 5경을 사람들 앞에서 외우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율법을 줄줄 외우는 것은 물론 강론도 할 수 있게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 속에는 사랑을 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자기들끼리는 사랑하겠죠? 그러나 이방인들을 향해서는 싸늘한 시선뿐인 것을 느꼈습니다. 안식일만 지키면 뭐합니까? 그들에겐 전도란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하는 유대인 만나 보신 적 있습니까?
(롬 2: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여섯 번째 특징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 내려다보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항상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역할만 생각 합니다. 스스로는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난파선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향해서 던지는 로프가 아니라 그 사람들을 내려치는 망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남을 정죄하고 스스로 높은 체 하는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바로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땅 끝까지 전파하는 제사장의 나라로 세운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바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의 중보의 역할이 아닙니까? 제사장 되었다고 다른 사람을 깔보고 군림한다면 그건 잘못된 제사장의 모습일 것입니다. 제사장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하나님께 사함 받도록 중보적 역할을 하면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바로 제사장의 역할일 것입니다. 바로 그런 뜻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인 것입니다. 그 선택이 하나님의 편애나 어떤 특별한 우월을 가질만한 것이 아닌 바로 사역적인 면이란 것을 이스라엘은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그것이 잘못되었기에 오신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만약에 우리도 혹시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서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한다면 우리도 같은 실수를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쭐대고 다른 종교를 향해서 눈을 내라까는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도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전도하는 자세에 대해서 한 거지가 다른 거지를 향해서 어디서 빵을 얻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전도를 할 때의 자세는 바로 이러한 겸손과 긍휼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롬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일곱번째 종교주의자들의 특성은 자신들이 가르치는대로 자신들은 행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선의 굴레에 빠지기 너무나 쉽습니다. 스님들 보세요. 고기 안 먹고 술 안 마신다는 건 고승일수록 더 잘 어깁니다. 곡차 운운 하면서요 속세를 떠나긴 어딜 떠납니까? 요샌 강남 한복판에 절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스스로 많은 규율을 만들어서 거기에 가두어 둔다면 같은 오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려는 오류입니다. 밖에서 매식 안하고, 장사안하는 것을 거룩으로 본다면 그건 거룩이 아니고 기본입니다. 만약 문자적인 안식일을 주일로 지킨다고 하면 그들은 여행도 못 다닐 것입니다. 밥도 못해 먹고, 불도 못키고 지내야 할 겁니다. 안식일 가는 거리 안 어기려고 호텔서 모이는 유대인과 무엇이 다른가 말입니다.

저는 차라리 주일에 사랑을 나누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전도 할 사람과 사랑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주일을 잘 활용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도들과 교제하는 날로 쓴다면 더 주님이 기뻐하시리라 봅니다. 문자적인 안식일 준수가 주일 준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를 정죄하는 기준이지요. 그러므로 죽는 날이고, 주일은 그야 말로 예수님으로 더불어 같이 살아난 날이므로 이날은 축하하는 축제일인 것입니다. 그것이 다르지요.

(겔 33:31)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겔 33:32)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이 말씀을 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설교를 듣고 좋은 음악과 노래를 들으며 교회 문을 나서면서 다 잊고 산다면 그들은 종교적인 수행을 하는 거에 불과 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대형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를 3가지를 어떤 사람이 만화로 그렸습니다. 첫째는 사고 후에 수사가 너무 빠르게 끝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고 후에 복구공사가 너무 빠르게 끝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고 후에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사건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같은 사건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고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지요.

종교주의에 빠지면 (롬 2: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가호호 전도를 나가보면 가장 큰 복음전도의 장애가 무엇입니까? 복음이요? 아닙니다. 바로 기독교인이 스스로 복음전도를 막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소위 종교 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싫은 것뿐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듯이 유대인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종교적인 삶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도록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새 교회가 혹시나 이런 요소는 없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혹시 이런 율법적인 요소는 없는지? 내가 세운 신앙생활의 원칙과 규례를 통해서 남의 신앙을 평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그것을 통해서 의롭다고, 남보다 더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 보길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다 영적인 거지입니다. 단지 그 양식을 어디서 얻는지 만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더 낳은 우월의식은 우리에게는 없어지고 긍휼을 가진 마음이 충만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