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좋다는 어떤 사람이 산길을 가다가 다리를 다친 여우를 보았습니다. 야생동물이라 다리를 다치면 사냥을 못해서 굶어 죽습니다. 며칠 후 그곳에 다시 갔더니 여전히 여우가 살아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숨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우는 죽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호랑이가 여우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은 다리 다친 여우도 저렇게 먹이신다.” 고 감탄을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믿음에 확신이 생긴 이 사람은 자기도 하나님이 먹여 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누워만 지냈다. 그런데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호랑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아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주는 호랑이의 본은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우의 본을 받으려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같은 이야기를 듣고도 돕는 모델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도움 받는 모델을 따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엽적적이고 편협한 사람은 모든 사건과 이야기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을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입장을 달리해서 볼 줄 아는 눈이 있습니다. 입장을 달리해서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해석을 달리해서보면 막힌 곳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새로운 돌파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편협한 사람은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억울함과 분노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장을 달리해서 보는 사람은 더 큰 섬김을 위해 나가는 추진력을 얻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이 성공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멋진 자동차를 선물했습니다. 동생이 새 자동차를 타고 오다 알고 지내는 동생을 만났습니다. “형님! 새 자동차 사셨네요? 아니! 내가 산 것이 아니고 형이 선물로 사주었다.” 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부러워하지 말라고? 너도 크면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을 날이 올 거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형님! 저는 형님이 받은 선물 받은 것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동생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형님이 부러운 거예요? 나도 커서 내 동생에게 좋은 것을 선물해 주는 형이 될 거예요.” 무엇을 부러워하는가에 따라서 그릇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린이 교육에서 너무 해석만을 가르치면 안 됩니다. 해석이란 기성세대들만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해석을 너무 강하게 하다보면 입장을 달리해서 보는 눈이 죽기 가 쉽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12세가 될 때까지 해석을 가르치지 않고, 그냥 story을 반복적으로 전한다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로 하여금 신앙인물 이야기를 적어도 1000번이상은 은 듣게 한다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사자 굴에 들어간 것 같은 위기를 맞을 때 자신이 다니엘이 되어서 사자 굴의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창의적인 길을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힘이 그를 이기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교육의 힘인 것입니다. 우리도 내 주장만 단정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항상 입장을 달리해서 생각하는 훈련에 힘을 써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부러워하느냐? 에 따라 그릇이 달라지기 때문 입니다.

Aug , 9, 2009 , 비콘 힐 에서 김 병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