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바울에게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행20:22-23). 성령은 두로의 제자들, 아가보라는 선지자에게도 바울의 앞날에 벌어질 일을 알려주셨다. 그들은 바울을 걱정해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도록 권유했다. 성령께서 바울이 당할 환란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은 빨리 피하라고, 그곳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다. 성령께서 알게 하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며 비록 죽음을 당하는 길이라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음을 깨달아 믿음으로 감당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같은 예언을 놓고 바울과 다른 제자들의 반응이 달랐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성령의 음성을 듣든 환상을 보든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초점을 맞춘다면 반응도 같았으리라.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이 고난과 고통이라면 피하고 싶은 욕구가 앞선다면 반응은 다르게 나올 것이다.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사역의 통로로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같은 예언을 놓고 다른 해석과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오늘 우리들도예언이나 환상에 대한 해석과 반응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계시나 환상이나 성령의 무슨 지시를 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이런 저런 뜻이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며 분별해야 한다. 왜? 무슨 뜻으로? 무엇을 하라고? 나에게 이런 환상을 보여주시는가? 그래야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만약 바울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의 만류를 듣고 어떻게 할 지 갈등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21:13)

바울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닮고자 했던 그의 삶이 눈물겹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인 예수님처럼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예고하셨을 때, 그것을 만류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치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셨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자신의 유익보다, 사람의 도리를 따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면 감당하는 사람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