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사역을 잘 감당하려면 무엇보다도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먼저 버려야 한다. ‘편견(prejudice)’이라는 단어의 뜻은 이전의 결정과 경험에 근거하여 내려지는 ‘판단’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praejudiciium’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American Heritage Dictionary(1982)에서는 편견에 대한 정의를 보다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데, 편견이란 예전에 형성되었거나 사실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형성된 이치에 맞지 않는 판단이나 의견이라고 정의한다.
장애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닌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언제 어디서든 장애인이 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예비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1월 26일(금) 새벽 5시 40분, 난 가족과 함께 85번 도로를 타고 남쪽 다운타운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를 보게 되었다. 8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그 장면은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75마일 정도로 달리던 고속도로 선상에서 앞서가던 차가 졸음운전으로 중앙 분리대를 치고 회전하면서 바로 따르던 뒤차와 충돌을 하였는데, 뒤차 연료탱크를 쳤는지 차가 갑자기 폭발을 하면서 순식간에 화염을 덮어졌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1분이 체 지났을까? 화염에 덮인 차 속에 타고 있던 한 사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불이 붙은 모습으로 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을 하늘로 들고 절규하는 신음소리와 고통소리를 나는 내 눈앞에서 그대로 목격을 하였다. 그리고 그 장면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다른 차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차에서 뛰쳐나와 자기의 겉옷을 벗어, 그 사람의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은 정말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우리 스스로가 아무리 운전을 잘 한다 하여도, 예비 장애인의 가능성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것을 통하여 보더라도, 장애 문제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사고나 중도장애가 꼭 아니라 할지라도 장애문제가 자신의 문제임을 특수교육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의 평균 연령을 남자는 대략 74세, 여자는 78세로 본다. 특수교육에 의한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되면, 아무리 건강에 자신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삶의 남은 일부분을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장애문제가 장애인 또는 장애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곧 나 자신의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신체적인 결함이나 장애만을 보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모만을 보고 평가하려 한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디모데 후서 2장 20-21절)
사람들은 모양이 예쁘거나 외모가 반듯하게 보이는 ‘금그릇’은 귀한 그릇이고, 나무나 흙으로 만든 그릇을 보고는 ‘천한 그릇’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릇의 모양이나 가격만을 가지고 귀한 그릇이다 천한 그릇이다라고 평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릇의 깨끗함을 가지고 평가하시며,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신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도 더러운 것과 냄새나는 오물들로 잔뜩 담겨있다면 우린 그 그릇을 사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시며 그 그릇을 ‘귀한 그릇’이라고 부르신다.
장애인에 대한 많은 편견들이 있지만 이런 잘못된 편견을 내려놓는다면, 장애인 사역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조금이나마 바로 깨닫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장애인 사역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장애인 사역은 구제사역도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져야 하는 것이 선교사역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사명에 장애인 전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장애인 선교사역에 교회와 사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적극적인 관심과 기도를 요청하고 싶다.
장애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닌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언제 어디서든 장애인이 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예비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1월 26일(금) 새벽 5시 40분, 난 가족과 함께 85번 도로를 타고 남쪽 다운타운으로 향하던 중 교통사고를 보게 되었다. 8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그 장면은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75마일 정도로 달리던 고속도로 선상에서 앞서가던 차가 졸음운전으로 중앙 분리대를 치고 회전하면서 바로 따르던 뒤차와 충돌을 하였는데, 뒤차 연료탱크를 쳤는지 차가 갑자기 폭발을 하면서 순식간에 화염을 덮어졌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1분이 체 지났을까? 화염에 덮인 차 속에 타고 있던 한 사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에 불이 붙은 모습으로 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을 하늘로 들고 절규하는 신음소리와 고통소리를 나는 내 눈앞에서 그대로 목격을 하였다. 그리고 그 장면이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다른 차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차에서 뛰쳐나와 자기의 겉옷을 벗어, 그 사람의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은 정말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우리 스스로가 아무리 운전을 잘 한다 하여도, 예비 장애인의 가능성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것을 통하여 보더라도, 장애 문제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사고나 중도장애가 꼭 아니라 할지라도 장애문제가 자신의 문제임을 특수교육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의 평균 연령을 남자는 대략 74세, 여자는 78세로 본다. 특수교육에 의한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되면, 아무리 건강에 자신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찾아온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삶의 남은 일부분을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장애문제가 장애인 또는 장애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곧 나 자신의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신체적인 결함이나 장애만을 보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모만을 보고 평가하려 한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디모데 후서 2장 20-21절)
사람들은 모양이 예쁘거나 외모가 반듯하게 보이는 ‘금그릇’은 귀한 그릇이고, 나무나 흙으로 만든 그릇을 보고는 ‘천한 그릇’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릇의 모양이나 가격만을 가지고 귀한 그릇이다 천한 그릇이다라고 평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릇의 깨끗함을 가지고 평가하시며,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신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도 더러운 것과 냄새나는 오물들로 잔뜩 담겨있다면 우린 그 그릇을 사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시며 그 그릇을 ‘귀한 그릇’이라고 부르신다.
장애인에 대한 많은 편견들이 있지만 이런 잘못된 편견을 내려놓는다면, 장애인 사역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조금이나마 바로 깨닫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장애인 사역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장애인 사역은 구제사역도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져야 하는 것이 선교사역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사명에 장애인 전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장애인 선교사역에 교회와 사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적극적인 관심과 기도를 요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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