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6시면 가정예배를 드리기 위해 찬송을 부르며 자녀들의 방문을 노크하셨습니다. 매일 아침 찬송가 두 장, 성경 한 장, 통성 기도로 이어지는 30여 분 간의 아침예배로 오늘의 저희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용돈을 주시며 온전한 십일조를 알려주셨습니다."

지난 10일 저녁 7시 시애틀한인장로교회에서 김호환 목사의 집례로 故 박희영 장로의 천국환송예배가 있었다. 예배에는 교계 목회자들을 비롯해 한인사회 인사 등 300여 명의 지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회고하며 천국으로 가는 길을 축복했다.

김호환 목사는 '한 의인을 생각하며(사57:1-2)'란 제목으로 "모든 사람에게는 죽음의 과정이 있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며 "어떤 의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설교했다.

故 박 장로의 임종을 지켜본 김 호환 목사는 "고 박희영 장로는 소천하기 20일 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찬송가 186장 '내 주의 보혈은'을 찬송하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천국으로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막내 딸 박진수 씨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온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며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몸으로 가르쳐 주신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세상을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지는 것도 이기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으며, 인자했지만 신앙에서는 한 치의 양보함도 없으셨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일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故 박희영 장로는 1912년 6월 서울 종로의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7세 때인 1919년에는 중국 훈천으로 가정이 이동해 독립운동의 자금을 조달하다 일제 군정부에의해 함경북도 웅기로 추방당하기도 했다. 이후 평양 숭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47년 미군정 행정처에서 근무했으며, 1949년부터 10년 동안 삼척시멘트 상무이사로 일했다.

서울 동부 장로교회에서 장로장립을 받았으며 1972년에는 서울에서 초원장로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1979년 시애틀로 이민 온 후 1980년부터 시애틀한인장로교회에서 시무장로로 헌신했으며, 1986년 은퇴했다. 은퇴이후 교회를 섬기다 2009년 7월 8일 새벽 김호환 목사의 임종예배 후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찬송을 부르며 97세의 일기로 임종했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지인들은 故 박희영 장로는 매우 겸손하였고 언제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을 지닌분이었다"며 "특히 항상 교회와 교인 각 사람을 위해 골방기도를 하던 영적 아버지이자 리더였다"고 회고했다.


▲교계 목회자들을 비롯해 한인사회 인사 등 300여 명의 지인들이 길게 늘어서 마지막으로 고인을 조문했다.ⓒ김브라이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