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에게,

약 35년 전에 영어 수화(手話, 농아들의 언어)를 한 학기 배운 적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 배운 것을 거의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오므린 오른 손을 오른쪽 이마에 얹고 검지(집게손가락)를 하늘을 향하여 튕기듯이 펴면‘잊는다’는 말입니다. 머릿속에 있던 것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는 뜻인 줄 압니다.

사람은 과거를 잊기 잘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들 중에서도 세월이 지나면 우리는 그 일부를 잊고 맙니다. 독일의 학자 에빙하우스에 의하면 사람의 기억력은 19분이 지나면 41.8%를, 63분 뒤에는 55.8%를 잊어버리고 그리고 31일 지나면 21%만 겨우 기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인의 기질은‘냄비 기질’이라고 합니다. 너무 쉽게 끓어오르고 너무 빨리 식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온 나라가 떠나갈 듯이 흥분하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40년을 미국에 살며 조국 한국을 들여다보면 북한의 위협에 외국에 사는 우리들이 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6. 25를 잊은 지 오래 된 듯합니다. 주적(主敵)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극단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족상잔의 쓰라림을 다 잊고 만 듯합니다.

어떻게 보면 과거를 잊는 것이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나 잘못이나 실패나 슬픔 등에 묶여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습니까? 즉 우리는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섬기다가 벌을 받곤 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 때마다 그들을 용서해 주시고 평안과 번영을 주셨습니다. 다시 타락하고 ... 이것을 일곱 번 반복하는 동안 사사기 시대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등한히 하고 내 마음대로 살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그러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한 동안 열심히 섬기고 교회에 충성합니다. 그리고 또 잊고 곁길로 빠져나가 어려움을 자초하고 ...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영원히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망각의 은혜와 기억의 은혜여! 어제의 고통을 잊고 다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목양실에서 문창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