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영광장로교회 김병규 목사

날짜 : 2009년 6월 30일

성경본문 : 사도행전 10장 17-33절

기도의 능력을 통해서 하나의 매개체를 만들어주는 것이 성령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성령에 이끌려 두 사람이 만나게 되어집니다. 여러분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지금 유대인이 이방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법입니다. 옛날에 부정한 사람은 동네에서 쫓아냈습니다. 시골에서 당산제 지낼 때 동네에서 부정한 사람은 당산제 지낼 동안 동네에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지방 사람은 들어오면 안되기 때문에 금줄을 달아놓았습니다. 심지어 시집 온 사람이 시가의 전통을 모르면 쫓겨났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이방인을 향한 전통은 대단했습니다. 우리가 이 전통을 생각하면서 지금 유대인과 이방인이 만나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 위법을 누가 고쳐주었다고 했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육으로 부부가 만났을 때는 결국 육의 필요가 사라지게 됩니다. 결혼 이유가 아내가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라고 하면,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는 그것이 살아지게 됩니다. 사랑의 승화는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영혼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함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의 기대에 조금 못 미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의 사랑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불구함의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절대 안되는 일을 성령에 이끌려 고넬료의 집으로 갑니다.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위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25절, 이상한 일은 이방인이 유대인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에게 절하는 법은 없었지만 고넬료는 절을 합니다. 베드로를 영적인 리더로 보았기 때문이지 유대인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다. 26절을 보면 여기에 인간관계를 승리하는 요점이 있습니다. 고넬료는 자기의 신앙과 경건 때문에 베드로를 존중해줍니다. 절대 신분 때문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의 도리로 돌봐주는 것입니다. 회갑때까지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결혼해서 어느때까지는 도와주지만 그 뒤는 알아서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이치적으로 해야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돌보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나의 본분입니다. 지금 고넬료는 베드로를 그렇게 취급합니다. 베드로가 유대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위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기 위치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설교를 잘하는 것이지 성령이 이끌어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깨부수는 것이 내 자아의 성숙입니다. 우월주의를 가진 사람이 예수 중심의 사람이 되고, 열등한 사람이 예수 중심의 사람이 되면 사자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일치가 세상을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을 하나로 만들고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을 예수 안에서 하나로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이 전도 복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도 행전 중심 내용은 10장 11장의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 사건입니다. 유대인에게 멈춰있던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터닝포인트가 되어서 이방인에게 전해지는 놀라운 사건이 두 사람의 만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이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자아와 하나님의 성령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인생이 바뀌어집니다. 이런 터닝포인트가 없으면 항상 육적으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또 너무 교만한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오늘 중요한 것은 고넬료의 이방인의 신앙,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베드로의 겸손한 신앙, 이것이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어지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 비전을 향해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역사적인 일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17절 이하의 환상에 의심하니, 고넬료의 하인들이 베드로의 집을 두드렸습니다. 베드로가 의심할 때 고넬료의 하인을 만나게 하시고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미세한 것까지 돌봐 주시고 섭리해 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날마다 내 열정과 열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성령이 우리를 하나로 만드신다는 놀라운 축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넬료가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했듯이, 베드로가 율법의 사람이었지만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드셔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성령이 매개가 되어서 한 뜻으로 이루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