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뉘게 되면서 로마를 수도로 하는 서로마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제국이 생겨납니다. 그 동로마제국을 후에 이름하기를 비잔틴제국(the Byzantine Empire)이라고도 부릅니다.

영어 식 발음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은 본래 라틴어로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로 표기하였습니다. 이 도시는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비잔티움(Byzantium) 이었습니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게 함락되었으며, 오스만제국 하에서는 콘스탄티노플과 현재의 이름인 이스탄불(Istanbul)이 모두 사용되다가 1930년에 와서야 이스탄불이 도시의 공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이런 유래에서 동로마제국을 통상 비잔틴제국이라 불렀었고, 후에 역사가들에 의해 이 이름이 공식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제국의 사람들은 그 나라를 로마제국으로 불렀습니다.

비잔틴 제국 혹은 동로마 제국(라틴어; Imperium Romanum Orientale)은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1453년 오스만제국에게 망할 때까지 천년 가까이 유지되었습니다. 비잔틴 제국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국가였으며, 한때 활발한 정복 사업을 통해 옛 로마제국의 고토를 거의 되찾아 광활한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여 그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무역로에 자리잡고 있어 제국의 경제는 수 세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습니다. 더불어 비잔틴 제국은 동쪽의 페르시아, 오스만 등의 침략으로부터 유럽과 기독교 세계를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까지 하였습니다.

이런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교회는 로마의 분열과 함께 로마시의 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를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로 점차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동방교회를 흔히 동방정교회(The Eastern Orthodox Church)로 불렀습니다. 서방교회가 후에 교황이라고 불리게 된 로마 주교의 큰 영향력 아래 있었다면, 동방 정교회는 황제의 지배 하에 있어서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영향력은 그리 대단치 않았으므로 각 나라별로 교회의 자립화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활발한 선교로 세르비아, 불가리아, 러시아 등 슬라브 민족인 대부분의 동유럽권과 일부 중동권에 기독교가 확산되었고 비잔틴 제국은 자연스레 정교회의 본산지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슬라브 민족은 동방 정교회와 함께 키릴문자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문자는 선교사 키릴이 선교를 위해 문자가 없던 지역에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고안하여 가르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슬라브족이 정교회 신앙을 받아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9세기의 그리스 출신의 선교사인 키릴과 메소디우스 형제였습니다. 그리스 북부 데살로니가 출신인 이들은 세르비아의 슬라브족에게 정교회 신앙을 전했고 문자를 만드는 등 슬라브족의 종교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슬라브족의 사도’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비잔틴 사회에서는 교회가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세례, 결혼, 장례 등 개개인 생활의 중요한 순간에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또한 신학, 예술, 경제, 정치, 외교 등 국가와 사회의 모든 부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