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냇물에서 돌을 치우지 말라”

산골짜기에서 흐르기 시작한 시냇물은 멀리 있는 강의 포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련의 여정과 과정을 거치며 흘러간다. 만일 그 시련이 싫다고 돌들과 장애물을 치워버리면 어떻게 될까? 시내는 그때로부터 아름다운 노래를 잃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흐르는 시냇물에서 돌들과 나무뿌리들과 제방을 치워보라. 그때로부터 흐르는 물은 입을 다물어 노래를 그칠 뿐 아니라, 흐르는 물의 생명력은 상실되고 만다. 생수 같이 맑은 물도 곧 부패되어 좋지 않은 냄새를 품어내기 시작 할 것이다.

시련의 과정을 존중하면 어떻게 될까? 산골짜기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강에 이르기까지 돌이나 나무뿌리에 부딪치고 눌리기도 하고, 둑이나 제방 으로 인해 먼 길을 돌아 나가는 고난도 있게 될 것이며,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긴장하면서 흐르게 될 것이다.

이 시련의 과정들 때문에 때로는 아픔도 있고 놀라기도 하고 그 앞에서 눈물도 흘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때문에 노래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리고, 그것들 때문에 물은 맑고 청결하게 살아나 주변의 많은 생명을 살리게 되지 않겠는가?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다가오는 인생의 시련과 역경의 과정을 피하지 말고 멀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심신은 좀 편안할지 모른다. 이 세상을 좀 더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라. 시련과 역경의 과정이 생략되어진 곳엔 생명력이 제거된다. 죽은 인생이 된다.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고 벅찬 감격도 기쁨도 없는 적막공산(寂寞空山)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흐르는 삶의 시냇물에서 돌들을 치우지 말라. 스위스의 위대한 신앙인 칼 힐티(Carl Hilty)는 말했다.

“위대한 사상(思想)은 커다란 고통으로 깊이 파 헤쳐진 마음의 바닥에서만 생긴다. 이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곳에서는 혹종의 천박과 범용만 남는다.”

욥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正金)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탁월한 인생의 궤적(軌跡)에는 반드시 거기에 걸 맞는 과정의 대가가 따른다. 눈물 없이 영광도 없다. 시편 126:5-6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기억하라. 기쁨의 단은 눈물의 과정이 있음으로 왔다. 과정이 남다르면 열매도 남다르다.

“우리에게 로버트 리 장군이 없었으므로”

예상을 뒤엎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에게 외국 기자가 찾아와 승리의 비결을 물었을 때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에게 로버트 리 장군과 같은 명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자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로버트 리(Robert Lee) 장군 같은 명장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도움만 바라보고 밤낮으로 기도할 수 밖 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나의 일에 개입(介入)하셔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링컨에게 로버트 리 장군과 같은 명장이 있었다면 겸손히 엎드려 기도하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내각의 각료들이 링컨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쳐 단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명장이 없었으므로 그는 더 많은 시련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그 시련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겸손히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그에게 강하게 임하게 된 것이다.

다윗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10년 동안 사울에게 광야로, 동굴로, 이방인의 땅으로 쫓겨 다니면서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었지만, 이 시련의 과정을 통하여 그는 첫째,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둘째, 사람을 다루는 지도력을 배웠다. 셋째, 자기를 절제하는 지혜를 터득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그러므로 과정의 미학을 무시하는 편의주의와 인스턴트 정신을 경계하고 자신의 내부에서 몰아내야한다. 수고의 땀을 흘리는 과정을 편의주의로 대체하려는 안일한 마음은 인간에겐 치명적인 원수이다. 또한 이것은 교회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고도의 수법이기도 하다. 환란이나 연단의 과정을 중요하게 말하는 성경 말씀 로마서 5:3-4 을 주목하라.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또다시 전성기(全盛期)를 맞이하라”

과정을 사랑하고 과정에 충실한 자는 망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마귀도 감히 덤비지 못한다. 환란은 인내가 되고, 인내는 연단이 되며, 그 연단이 소망이 되는 과정의 비밀을 마귀가 절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정의 진실을 믿는 자에겐 언제나 하나님의 기적이 가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핑계와 변명만 늘어놓을 것이다.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기본 과정을 무시했거나 피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깨닫고 하루 빨리 기본으로 돌아온 자는 언제나 다시 산다. 분명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5:1-8은 포도농사의 과정에 관한 비유이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하나하나의 과정이 인생에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비유 안에는 평범한 사람이 탁월한 사람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