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인가 무죄인가?

롬1:18-32 (25절까지)

여러분 자동차를 운전하십니까? 운전하며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어떤 때에는 너무 많다고 생각 할 만큼 신호등이 많습니다. 빨간불 초록 불 노란불이 번갈아 꺼지고 켜집니다. 그 앞에 서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저 신호등은 참으로 고맙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저것은 왜 있어서 남의 길을 가로막나? 이렇게 생각 하십니까? 만약에 신호등이 없다면 1년에 수십만 명이 더 죽을 것 이라고 합니다.

저기에 서 있는 경찰을 보면서 ‘이 더운 날, 추운 날 나와서 우리를 위해 수고 하시는구나 참 고맙다.’ 이런 마음입니까? 아니면, ‘저 양반은 왜 저기에 서서 남의 길을 못 가게 만드나?’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여러분은 법을 통해서 자유를 느낍니까? 아니면 속박을 느낍니까? 그것은 내 마음에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 생각의 틀입니다. 우리의 됨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 5장 1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자유인입니다. 인간은 그가 누리는 자유만큼의 영역을 사는 것입니다. 자유만큼의 인격을 사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얼마나 자유를 느끼고 있습니까?

저 신호등을 보시며 자유를 느낍니까? 속박을 느낍니까? 경찰서 앞을 지나가며 자유를 느낍니까? 두려움을 느낍니까? 그것이 당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자유하게 하는 율법을 어기고, 죄를 범하므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16-17이 로마서의 주제 역할을 한다고 지난번 강해 시간에 말씀 드렸습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에서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최악의 상태에서 최상의 상태로 옮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자는 죄에서 벗어나 의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참 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스스로 의인이 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스스로 자기의 죄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죄를 용서 받는 길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을 필두로 3:20까지 계속됩니다. 즉 왜 내가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는가? 내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1:18-3:20까지를 세분하면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1:18-32 온갖 죄로 타락한 이방사회의 참상△ 2:1-16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도덕주의자들의 죄
△ 2:17-3:8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의 죄 △ 3:9-20 전 인류의 범죄

여기서 결국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기소장을 바울이 쓰고 있는 것입니다. 유죄인가? 무죄인가?

‣범죄사실 :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한 것 ‣기소자 : 바울
‣피고 : 모든 인류 ‣증거 : 오늘 우리가 공부할 내용 ‣선고 : 사형

1:18을 보십시오! 이 구절이 3:20까지의 핵심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하나님의 진노입니다. The Wrath of God-무엇이 연상되십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생각나십니까? 하늘에서 유황비가 쏟아지고, 바위만한 우박이 내리치고 번개가 번뜩이는 것을 연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나타나나니..being revealed..는 현재 진행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유황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흔들리고 있지도 않앗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있을까?.

I. 자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생각 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진노를 했다. 대노를 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상상 하십니까? 뚜껑이 열렸다- blowing one's top..-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집니다. 행동이 거칠어지고, 폭력적이 됩니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유리창이 깨지고, 소리소리 지르는 자제력이 상실된 그런 모습이 연상이 되실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진노라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qumos- ojrgh; 먼저 이 qumos에서 thermometer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무엇입니까? 네 온도계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화를 폭발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것, 이것이 thumos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이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ojrgh;인데 이것은 조절된 분로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시지만 항상 조절된 상태로 나타납니다. Controlled 된 상태로 충동적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분노하십니까? 바로 죄(SIN)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악한 일을 하거나 해를 주고 있는 것을 볼 때 분노하지 않으세요? 네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여러분 가까이 살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유괴를 당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성폭행당하고, 온몸에 상처투성이 인체,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것을 보고도 무관심하다면 그 사람은 문제가 있는 분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는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분노 하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에서 부부가 서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언쟁이 생기는 것..저는 나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결혼생활에 대한 관심이 아직 많다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가 있는 부부는 그런데 관심이 없습니다. 서로 포기한 상태라 무감각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로 표현된 분노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죄에 분노 하실까요? 왜냐하면 죄는 사람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창조를 비틀어서 해를 끼치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고 완전하게 창조하셨는데, 전쟁과 증오와 폭력과 편견과 오만과 사악과 비리로 얼룩진 세상을 보시면서 하나님이 만약에 분노치 않으시다면 그건 창조주로서 권리를 포기 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분노하시는 대상이 두 가지인데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영어로 Godlessness and wickedness 이것은 하나님이 존재 하시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무신론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경건치 않은 삶이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삶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는 믿고 있으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 것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날 세속주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저 위에 하늘나라에나 계시지. 이곳에 사는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의는 어떠한 Rule 법칙이 없이 사는 모습을 말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내 스스로 판단자가 되어라, (Be your own Judge) 이기심, 남이 나에게 어떻게 대했는가를 보고 행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대로 그들을 대하라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의는 어떠한 규범도, 규제도 없는 삶을 말합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