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런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는 요즈음이다. 소식의 결과와 내용들을 볼 때, 너무 급하게들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사실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신속한 해결, 당대의 평가, 절망과 비관,,,’ 등에는 우리 몸의 심장 같은 매일의 ‘수고와 오래 참음’,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계속 해야만 하는 ‘소통과 사랑’은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모든 일을 단번에 빨리 해결하고 싶은 생각과 행동들이 충돌한 결과로 혼란은 가중되는 듯하다. 이렇게 되니 경제회복과 민족의 평화는 더 어려워 지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가장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이 당장 ‘오늘 먹을 양식이 없는 이웃들과 동족의 어린이들’이 아닐까? 이것은 우리가 하루 하루 구해야 하는 ‘일용할 양식의 숨은 비밀’을 모른 결과이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보면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 구절이 있다. 좀 쉽게 풀어 다시 읽으면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세요!”라는 말이다. 하루 먹을 양식을 달라는 주님의 기도가 너무 포부가 작게 느껴지지 않는가? 적어도 인도의 간디는 그의 기도에서 “10억 인구가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건만, 하루 먹을 양식의 기도는 ‘좀 적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한 십 년 먹을 양식이 생긴다거나 평생을 살 수 있는 돈이 하루아침에 생긴다면 우리는 과연 어찌 될까?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 한꺼번에 생긴 그 많은 양식과 물질들이 문제없이 잘 보존되고, 자신도 가족도 다 온전할 수 있을까? 그 후에도 매일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에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물질)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책임져 달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렇게 매일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양식에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변함없는 ‘인내와 사랑’이 들어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한 십 년 혹은 평생 먹을 양식(물질)이 하루 만에 확보된다면 거기에는 ‘교만’(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몰라보는)이 자리잡을 것이고, 더 나아가 ‘소외’(사람과의 관계평화)의 도구가 될 가능성은 더 증가하지 않을까? 이렇게 하나님을 배제하거나 차별을 두고 사람과의 관계를 해결하려는 발상을 성경은 죄에 대한 유혹과 시험으로 규정하고 있다(마태4장; 예수께서 받은 처음과 두 번째 시험).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성급해지고, 빠른 결과만을 바라고, 또 영원한 생명을 경시함도 일용할 양식에 숨은 비밀, 즉 주님의 다스림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아예 믿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달부터 우리 지역을 순회하는 기도회를 타코마 S교회에서 J목사님의 큰 배려로 시작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5월부터 벌인 “북한어린이돕기 동전모으기” 기사를 본, 한 어린이의 그간 각별히 모은 정성이 함께 드려졌다. 나는 비닐에 쌓인 한 움큼의 동전($8.78)을 보면서, ‘이 동전들을 넣을 때마다 떠올린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어찌 보면 정말 작은 일일 것이다. 비록 하루아침 우리를 놀라게 할 일은 아니지만, “일용할 양식이 없어 생명이 꺼져가는 이북 친구들에게 일용할 양식(영양제)을 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기특하기가 그지없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의도대로 만드는 임산부와 어린이 영양제가 계속 잘 생산되어 공급되고 있으며, 단동병원에서는 매일 매일 밀려드는 한족, 조선족, 강을 넘어온 북녘의 환자들(일용할 양식을 구하는)을 돌보느라 샘의 사역자들이 눈코 틀새 없이 바쁘다는 소식에 더 큰 감동을 느낀다.
특별히 단동 샘복지병원이 현지 ‘중국노동조합원을 위한 건강검진병원’으로 지정되는 일도 있었다. 이것은 비록 작지만 매일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우리 동족들에게 공급해 달라고 꾸준하게 드려진 후원자님들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이다. 이와 같이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사역지(동족들)에 우리 쪽에서 위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준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동족)사이를 연결해 주는 일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 속에는 우리뿐 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평화와 동족의 생명을 돌보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비밀이 매일 숨어있음을,,,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에도 조급하지 않고 충분히 견딜 수가 있게 되는 것을,,,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 보면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 구절이 있다. 좀 쉽게 풀어 다시 읽으면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세요!”라는 말이다. 하루 먹을 양식을 달라는 주님의 기도가 너무 포부가 작게 느껴지지 않는가? 적어도 인도의 간디는 그의 기도에서 “10억 인구가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건만, 하루 먹을 양식의 기도는 ‘좀 적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한 십 년 먹을 양식이 생긴다거나 평생을 살 수 있는 돈이 하루아침에 생긴다면 우리는 과연 어찌 될까?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 한꺼번에 생긴 그 많은 양식과 물질들이 문제없이 잘 보존되고, 자신도 가족도 다 온전할 수 있을까? 그 후에도 매일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에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물질)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책임져 달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렇게 매일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양식에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변함없는 ‘인내와 사랑’이 들어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한 십 년 혹은 평생 먹을 양식(물질)이 하루 만에 확보된다면 거기에는 ‘교만’(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몰라보는)이 자리잡을 것이고, 더 나아가 ‘소외’(사람과의 관계평화)의 도구가 될 가능성은 더 증가하지 않을까? 이렇게 하나님을 배제하거나 차별을 두고 사람과의 관계를 해결하려는 발상을 성경은 죄에 대한 유혹과 시험으로 규정하고 있다(마태4장; 예수께서 받은 처음과 두 번째 시험).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성급해지고, 빠른 결과만을 바라고, 또 영원한 생명을 경시함도 일용할 양식에 숨은 비밀, 즉 주님의 다스림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아예 믿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달부터 우리 지역을 순회하는 기도회를 타코마 S교회에서 J목사님의 큰 배려로 시작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5월부터 벌인 “북한어린이돕기 동전모으기” 기사를 본, 한 어린이의 그간 각별히 모은 정성이 함께 드려졌다. 나는 비닐에 쌓인 한 움큼의 동전($8.78)을 보면서, ‘이 동전들을 넣을 때마다 떠올린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어찌 보면 정말 작은 일일 것이다. 비록 하루아침 우리를 놀라게 할 일은 아니지만, “일용할 양식이 없어 생명이 꺼져가는 이북 친구들에게 일용할 양식(영양제)을 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기특하기가 그지없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의도대로 만드는 임산부와 어린이 영양제가 계속 잘 생산되어 공급되고 있으며, 단동병원에서는 매일 매일 밀려드는 한족, 조선족, 강을 넘어온 북녘의 환자들(일용할 양식을 구하는)을 돌보느라 샘의 사역자들이 눈코 틀새 없이 바쁘다는 소식에 더 큰 감동을 느낀다.
특별히 단동 샘복지병원이 현지 ‘중국노동조합원을 위한 건강검진병원’으로 지정되는 일도 있었다. 이것은 비록 작지만 매일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우리 동족들에게 공급해 달라고 꾸준하게 드려진 후원자님들의 기도와 주님의 응답이다. 이와 같이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사역지(동족들)에 우리 쪽에서 위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준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동족)사이를 연결해 주는 일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 속에는 우리뿐 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평화와 동족의 생명을 돌보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비밀이 매일 숨어있음을,,,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에도 조급하지 않고 충분히 견딜 수가 있게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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