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저녁 8시 30분에 교회에서 기도회 모임이 있었다. 나는 매주 금요 기도회에 꼭 참석했다. 일을 마친 후 피자 가게에 들러 피자 한 쪽을 사 들고 먹으면서 전철역까지 갔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역에서 내려 25분 정도를 걸어서 교회에 도착하면 보통 10시쯤 된다. 10시부터는 개인 기도 시간이었다. 나는 두 시간 정도 주님 앞에 많은 기도 제목을 놓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가족과 온 교인과 미국과 한국 교회와 세계 선교사들, 그리고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다음날 새벽 6시 새벽 예배를 마치면 이백호 전도사님이 가게까지 데려다 주셨다. 오가는 길이 1시간 반이나 걸리는데도 매주 수고해 주셨다.
토요일 저녁에도 일을 마친 후에는 교회로 갔다. 토요일 저녁에는 전철이 자주 다니지 않아 교회에 도착하면 12시가 훨씬 넘었다. 나는 교육관 소파에서 잠을 자고, 주일 아침에는 새벽 예배 후에 예배당과 교육관 청소를 하고 밴 트럭 두 대를 청소했다. 또 예배 시간에 맞추어 밴으로 교인들을 태워 왔다. 예배가 끝나면 교인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도 내 몫이었다. 나는 정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며 봉사했다.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한 대로 당신의 일에 도구로 사용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늘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게 해주셨다. 전도사님을 비롯하여 문 장로님, 박태수, 김용목, 박창서, 유강한, 안우철 집사님들이 나와 함께 청소 선교회를 설립하여 교회의 청소를 도맡아 했다. 청소가 끝난 뒤에는 함께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는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이 교회의 지원금과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선교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선교회 회원들은 모두 나의 신앙의 동지들이며 이민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저녁 시간에는 구역 예배에 참석하고 늦은 시각 가게로 돌아와야 했는데 항상 문병덕 장로님이 수고해 주셨다. 문 장로님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이셨다. 그분은 나를 위해 예비해 주신 또 한 분의 천사이셨다. 어려운 형편을 잘 아시는지라 각별히 배려해 주심으로 더더욱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느 날인가 사장님 댁에 한국에서 장모님이 오셨다. 부산 삼일교회 권사님으로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분이었다. 성격이 매우 활달해서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영어를 못하시는 데도 이웃에 있는 미국 사람들과도 잘 사귀셨다. 권사님은 집이 가게 가까이에 있어서 어린 손녀를 데리고 자주 들르셨다. 나는 권사님을 만나 뵌 후로 함께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권사님도 미국에 오셔서 예배 생활을 제대로 못한다면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마침 여기서 사귄 친구들도 예수를 믿는 분들이셨다. 한 번은 가게에 오셨길래 나와 함께 삼일 예배를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다. 권사님은 기뻐하면서 선뜻 승낙해 주셨다. 수요일 저녁 가게 문을 닫고 지하실 골방 침대 위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권사님의 친구분도 동참하셔서 모두 세 사람이 예배를 드렸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라라. //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95장)
이 찬양이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 좁은 골방 안에도 우리 주님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은혜가 넘치게 해주셨다. 권사님이 기도하신 후에 내가 준비한 말씀을 증거하니 성령이 친히 역사해 주셔서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그러고 나서 각자 기도 제목을 내어놓고 통성으로 합심하여 기도한 뒤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니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쳐났다. 비록 세 사람이지만 시작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지 내 평생 잊지 못할 예배 시간이었다. 가게 일을 그만두고 교회로 부름을 받는 그날까지 삼일 예배를 계속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토요일 저녁에도 일을 마친 후에는 교회로 갔다. 토요일 저녁에는 전철이 자주 다니지 않아 교회에 도착하면 12시가 훨씬 넘었다. 나는 교육관 소파에서 잠을 자고, 주일 아침에는 새벽 예배 후에 예배당과 교육관 청소를 하고 밴 트럭 두 대를 청소했다. 또 예배 시간에 맞추어 밴으로 교인들을 태워 왔다. 예배가 끝나면 교인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도 내 몫이었다. 나는 정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며 봉사했다.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한 대로 당신의 일에 도구로 사용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늘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게 해주셨다. 전도사님을 비롯하여 문 장로님, 박태수, 김용목, 박창서, 유강한, 안우철 집사님들이 나와 함께 청소 선교회를 설립하여 교회의 청소를 도맡아 했다. 청소가 끝난 뒤에는 함께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는 경건의 시간을 가졌다. 이 교회의 지원금과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선교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선교회 회원들은 모두 나의 신앙의 동지들이며 이민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저녁 시간에는 구역 예배에 참석하고 늦은 시각 가게로 돌아와야 했는데 항상 문병덕 장로님이 수고해 주셨다. 문 장로님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이셨다. 그분은 나를 위해 예비해 주신 또 한 분의 천사이셨다. 어려운 형편을 잘 아시는지라 각별히 배려해 주심으로 더더욱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느 날인가 사장님 댁에 한국에서 장모님이 오셨다. 부산 삼일교회 권사님으로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분이었다. 성격이 매우 활달해서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영어를 못하시는 데도 이웃에 있는 미국 사람들과도 잘 사귀셨다. 권사님은 집이 가게 가까이에 있어서 어린 손녀를 데리고 자주 들르셨다. 나는 권사님을 만나 뵌 후로 함께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권사님도 미국에 오셔서 예배 생활을 제대로 못한다면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마침 여기서 사귄 친구들도 예수를 믿는 분들이셨다. 한 번은 가게에 오셨길래 나와 함께 삼일 예배를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다. 권사님은 기뻐하면서 선뜻 승낙해 주셨다. 수요일 저녁 가게 문을 닫고 지하실 골방 침대 위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권사님의 친구분도 동참하셔서 모두 세 사람이 예배를 드렸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라라. //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95장)
이 찬양이 얼마나 은혜가 되던지 좁은 골방 안에도 우리 주님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은혜가 넘치게 해주셨다. 권사님이 기도하신 후에 내가 준비한 말씀을 증거하니 성령이 친히 역사해 주셔서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그러고 나서 각자 기도 제목을 내어놓고 통성으로 합심하여 기도한 뒤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니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쳐났다. 비록 세 사람이지만 시작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지 내 평생 잊지 못할 예배 시간이었다. 가게 일을 그만두고 교회로 부름을 받는 그날까지 삼일 예배를 계속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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