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에서 공부할 때 동료목사님 한 분이 목회학 박사 학위 논문을 쓴 것 가운데 The Ministry Between Miracles (기적 사이에서의 목회)라는 논문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chaplain으로 말기 암환자들을 주로 섬기면서 과학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 가운데 기도로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그들을 기도해주며 섬기던 목사님의 논문이었습니다.

환자 중에는 하나님의 치유가 기적적으로 나타나 쾌유되신 분도 있지만 끝내 치유가 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 또한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은 환자들을 어떻게 섬기고 그들을 위로할 것인가에 대한 사례들을 모아 전인치유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우리들은 기적이 상식이 되어 나타날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하지만 그러한 이적과 표적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 경우 (between miracles)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 기적은 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능력이 부족하다고 이해할 것인가?

평생을 치유사역에 종사했던 John Wimber 목사님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Wimber 목사님의 친구 목사님이 영국에 Vinyard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던 중, 암에 걸려서 치유불가라는 진단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에 John Wimber 목사님은 애나하임에 있는 교회의 치유 팀을 이끌고 런던으로 가서 그분의 치유를 위해 거의 한 달을 체류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분은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임종의 자리에서 그 목사님은 Wimber 목사님의 손을 꼭 잡고 유언을 합니다. “Don't stop your healing ministry. God still heals!" (치유사역을 중단하지 말게. 하나님은 치유하신다네!)

때로 기적은 기적처럼 다가오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정유선 박사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 교육 대학원 연구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녀는 조지 메이슨 대학과 코넬 대학원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 후, 보조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4년 졸업 당시에는 조지 메이슨 교육 대학원 교수들이 뽑는 '올해의 교육학 박사'로 뽑혔고 2006년 8월에는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 의사소통 보조기기 학회에서 에세이 상을 수상하며 직접 에세이를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두 살이 지나서도 걸음마를 떼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녀가 신생아 황달로 뇌성마비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울릉도 트위스트’로 유명했던 “이 시스터즈”의 멤버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연예계를 은퇴하고 딸을 전적으로 뒷바라지합니다.

학창 시절 공부가 전부라고 생각한 그녀가 대학 입시 실패하고는 커다란 충격에 빠져 상심했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유학의 길을 오릅니다. 그녀에게 낯선 외국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안간힘을 쓸수록 일그러지는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어 아예 입을 닫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치유하신다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합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그녀에게 세상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세상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곳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곳으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남에 따라 정 유선 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장애를 솔직히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어머니의 장애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 때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갔을 때 기적이 기적이 아닌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왔습니다. 기적은 기적처럼 다가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