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에 걸려 온 전화는 개미 목소리로 남편의 별세소식을 전해 주는 친구의 아내였다. 장례식을 이역 만리서 끝낸 후 몇 일간 밀린 잠을 자고 이제 가까운 친구들에게 전한다는 소식이다. 그녀는 곁들여서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하듯 남편의 긴 투병 생활을 같이 하다보니 너무도 지쳐서 때때로 신경질을 내기도 했고 또 회복이 안될 것이라고 하니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떠나도 괜찮지 하는 생각을 핸 적도 있는데 지금은 미안하고 죄의식이 앞선다"는 고백도 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한 후 그 친구와의 50여 년 전의 춥고 배 고팠던 시절에 얽히고 설킨 사건들을 엮어 가다 보니 잠잘 시간을 넘겨 뜬 눈으로 긴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무엇을 죽음이라고 하나? 의사가 심장과 맥박을 체크하고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죽었다고 하면 그렇게 믿는 것이 정석인가! 세상에 공평한 것 중 하나가 사람은 누구나 꼭 죽는다는 것이다. 묘하게도 다가오는 죽음을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
첫째는 죽음을 무서워 하는 형이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주위에서 죽는다는 것에 노예가 되어 어떤 일도 못하고 불안해 하며 한 평생 사는 사람을 보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그런 형의 사람이 되지 말라는 보낸 편지가 있다.(참고 히2:15) .그런 사람은 장례식에 가는 것도 꺼리고 공동 묘지 옆을 지나가는 것까지도 싫어한다. 그러면서 남들은 다 죽어도 자기만은 절대로 안죽는다고 믿는다.
두 번째 형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린다. 생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죽음을 거부 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며 운명으로 받아드린다. 세계적인 소설가 로망 롤랑의 말 처럼 "인생에게는 왕복 기차표를 팔지 않았다"는 명언과 같이 한 번 가면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드린다. 오히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임금님은 매일 아침 신하가 왕에게 드리는 인사에 꼭 이 말을 하게했다." 왕이시여 언제인가는 세상을 떠나셔야 합니다."라고. 이유는 왕의 건강도 권력도 돈도 명예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왕으로 있는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것이었다. 이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자기가 죽은 후에 입을 옷과 관, 묘지, 심지어 묘비에 새겨질 글까지도 준비해서 자녀들에게 부탁한다. 물론 있는 재산도 어떻게 쓰라고 지정한다.
세 번째는 기독교적인 신조다. 창조주께서는 처음 인간에게 영생을 주셨다. 아름다운 동산에서 기한이 없이 오래 오래 살게 하셨다. 그런데 시조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신의 영을 배반하여 죄를 짓게 된다. 여기에 인간에 비극이 시작된다. 즉 영과 혼과 육체가 같이 죽게 된다. 그들의 후손도 죄인의 멍에를 지고 태어나고 사는 기간도 단축 되고 또 한정됐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타락한 인간들의 죄를 속죄 하기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죄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 드릴 때에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다시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죽는다는 것은 천국으로 들어 가는 관문으로 생각한다.
바울은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어느 한 쪽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양면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에 focus를 두었다. 즉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했다. '사는 것도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예수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예수님과 같이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사는 가치는 예수님의 남은 일을 하기 위해서 라고. 그에게는 죽으나 사나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참고,빌20-24)
1969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입원한 월트리드 미육군 병원을 친구이자 성직자인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찾아가서 한 인간으로서의 마무리를 준비시키는 30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목사님이 떠나려 하자 아이젠하워는 좀 더 같이 있어 주기를 요구했다. 하나님 만날 준비가 안되었으니 좀 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빌리는 예수님의 구속사업을 잘설명하고는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아이젠하워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하며 평안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눈을 영원히 감았다.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죽음의 터널을 지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과정으로 믿고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만물을 사랑하며 멋지게 사는 것이 지혜자의 길이다.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한 후 그 친구와의 50여 년 전의 춥고 배 고팠던 시절에 얽히고 설킨 사건들을 엮어 가다 보니 잠잘 시간을 넘겨 뜬 눈으로 긴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무엇을 죽음이라고 하나? 의사가 심장과 맥박을 체크하고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죽었다고 하면 그렇게 믿는 것이 정석인가! 세상에 공평한 것 중 하나가 사람은 누구나 꼭 죽는다는 것이다. 묘하게도 다가오는 죽음을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
첫째는 죽음을 무서워 하는 형이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주위에서 죽는다는 것에 노예가 되어 어떤 일도 못하고 불안해 하며 한 평생 사는 사람을 보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그런 형의 사람이 되지 말라는 보낸 편지가 있다.(참고 히2:15) .그런 사람은 장례식에 가는 것도 꺼리고 공동 묘지 옆을 지나가는 것까지도 싫어한다. 그러면서 남들은 다 죽어도 자기만은 절대로 안죽는다고 믿는다.
두 번째 형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린다. 생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죽음을 거부 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며 운명으로 받아드린다. 세계적인 소설가 로망 롤랑의 말 처럼 "인생에게는 왕복 기차표를 팔지 않았다"는 명언과 같이 한 번 가면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드린다. 오히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임금님은 매일 아침 신하가 왕에게 드리는 인사에 꼭 이 말을 하게했다." 왕이시여 언제인가는 세상을 떠나셔야 합니다."라고. 이유는 왕의 건강도 권력도 돈도 명예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왕으로 있는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것이었다. 이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자기가 죽은 후에 입을 옷과 관, 묘지, 심지어 묘비에 새겨질 글까지도 준비해서 자녀들에게 부탁한다. 물론 있는 재산도 어떻게 쓰라고 지정한다.
세 번째는 기독교적인 신조다. 창조주께서는 처음 인간에게 영생을 주셨다. 아름다운 동산에서 기한이 없이 오래 오래 살게 하셨다. 그런데 시조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신의 영을 배반하여 죄를 짓게 된다. 여기에 인간에 비극이 시작된다. 즉 영과 혼과 육체가 같이 죽게 된다. 그들의 후손도 죄인의 멍에를 지고 태어나고 사는 기간도 단축 되고 또 한정됐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타락한 인간들의 죄를 속죄 하기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죄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 드릴 때에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다시 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죽는다는 것은 천국으로 들어 가는 관문으로 생각한다.
바울은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어느 한 쪽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양면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에 focus를 두었다. 즉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했다. '사는 것도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예수 위해서'라는 것이다. 자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예수님과 같이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사는 가치는 예수님의 남은 일을 하기 위해서 라고. 그에게는 죽으나 사나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참고,빌20-24)
1969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입원한 월트리드 미육군 병원을 친구이자 성직자인 빌리그레함 목사님이 찾아가서 한 인간으로서의 마무리를 준비시키는 30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목사님이 떠나려 하자 아이젠하워는 좀 더 같이 있어 주기를 요구했다. 하나님 만날 준비가 안되었으니 좀 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빌리는 예수님의 구속사업을 잘설명하고는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아이젠하워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하며 평안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눈을 영원히 감았다.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죽음의 터널을 지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과정으로 믿고 또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만물을 사랑하며 멋지게 사는 것이 지혜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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