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부활절을 마지하면서 각 교회에서는 행사준비가 한창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절에 관해서는 알고 있지만 자신이 죽고 또 부활 한다는데 대해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안다는 것과 믿는 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려 피와 물을 다 쏟은 후 죽어 무덤에 장사되어 3일간 있었다. 물론 썩어 냄새가 무덤에 꽉 찼다. 그런데 3 일째 되는 이른 아침에 죽었던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나서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랑하던 제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다. 그 후에도 40일 동안 10 여 차례 다른 장소에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도 있고 반신반의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초대교회도 부활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 때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누구나 한 번 죽고 또 한 번 부활을 한다. 그것을 안 믿는 다고해서 있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 한다는 것은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바울은 좀 더 나아가 사람은 죽었다가 부활해서 하나님 앞에서 상벌의 심판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부활 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또 예수의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것이고 소망도 전도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고로 부활을 부인 하거나 의심 하지 말라는 것이다.(고전 15장 참고).
부활을 말하면서 꼭 잊을 수 없는 것은 살아서 부활하는 일이다. 즉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도 부활이지만 산 사람이 옛날의 나쁜 습관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또한 부활 이라고 한다. 전에는 자기의 욕망에 노예가 되어 먹고 마시고 방탕하기위해 어떤 방법도 개의치 않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는 관심이 없다가 그런 악습에서 탈피해서 남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 나누고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동참하는 자세로 바뀌는 것이 부활이다.
전에는 나를 중심으로 나의 만족을 위해 살았다고 하면 새로 부활한 후에는 나의 욕망은 가능한 축소하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면을 내가 메꾸어 주고 또한 창조주가 원 하는 법도를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흔히 '거듭난다' '중생한다'( born again)라고 한다.(요한복음 3장 참고)
이런 문제에 대해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는 “부활” 이라는 책을 통해 잘 나타내고 있다. 주인공 ‘네프류토프라’는 귀공자는 먹고 마시고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사회의 악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 회개하는 기회가 왔다. 자기의 방종으로 인해 카츄샤라는 나약한 여자가 한 평생 세상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죄악의 뒷골목에서 남자들의 성적 노예로 또는 악당들의 하수인으로 전락되고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무서운 형을 받고 추운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죄수가 된 것을 보면서 참회를 한다. 그리고 시베리아 까지 따라가서 그 여자에게 용서를 빌고 결국 결혼 까지 하게 된다. 그런 이를 보고 살아서 부활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익두 청년을 대표로 들 수 있다. 그는 원래 농촌에서 태어난 거인인데 얼마나 힘이 센지 몇 사람의 일을 해 내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한잔 술이 들어가면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뒤집어엎고 잡히는 대로 두들겨 팼다.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그가 꼭 나타나 시장을 완전히 아수라장을 만들고 살아졌다. 그래서 시장 갈 때에는 오늘 김익두 안 만나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 할 정도였다. 그는 그 지역의 괴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미국 선교사를 통하여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되고 과거의 그 나쁜 습관을 청산하고 목사가 되었다. 포악한 사자 같은 사람이 양 같은 전도자가 된 것이다. 그에게 치유의 은사가 뒤따랐다. 그가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어 한국 교회 부흥의 큰 핵을 그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6.25 사변이 일어난 후 인민군들이 후퇴 할 때에 교회에서 기도하는 김익두 목사를 쏴 죽였다. 순교 한 것이다.
부활절을 마지하면서 깨닫는 바 크다. 언제인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해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 받도록 해야겠다는 생각과 또 살아 있을 때에 거듭 난 사람으로 멋진 크리스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다.
연락처) 650-610-9303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도 있고 반신반의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초대교회도 부활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 때에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누구나 한 번 죽고 또 한 번 부활을 한다. 그것을 안 믿는 다고해서 있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묘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 한다는 것은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바울은 좀 더 나아가 사람은 죽었다가 부활해서 하나님 앞에서 상벌의 심판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부활 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또 예수의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것이고 소망도 전도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고로 부활을 부인 하거나 의심 하지 말라는 것이다.(고전 15장 참고).
부활을 말하면서 꼭 잊을 수 없는 것은 살아서 부활하는 일이다. 즉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도 부활이지만 산 사람이 옛날의 나쁜 습관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또한 부활 이라고 한다. 전에는 자기의 욕망에 노예가 되어 먹고 마시고 방탕하기위해 어떤 방법도 개의치 않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는 관심이 없다가 그런 악습에서 탈피해서 남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 나누고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동참하는 자세로 바뀌는 것이 부활이다.
전에는 나를 중심으로 나의 만족을 위해 살았다고 하면 새로 부활한 후에는 나의 욕망은 가능한 축소하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면을 내가 메꾸어 주고 또한 창조주가 원 하는 법도를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흔히 '거듭난다' '중생한다'( born again)라고 한다.(요한복음 3장 참고)
이런 문제에 대해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는 “부활” 이라는 책을 통해 잘 나타내고 있다. 주인공 ‘네프류토프라’는 귀공자는 먹고 마시고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사회의 악의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 회개하는 기회가 왔다. 자기의 방종으로 인해 카츄샤라는 나약한 여자가 한 평생 세상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죄악의 뒷골목에서 남자들의 성적 노예로 또는 악당들의 하수인으로 전락되고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무서운 형을 받고 추운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죄수가 된 것을 보면서 참회를 한다. 그리고 시베리아 까지 따라가서 그 여자에게 용서를 빌고 결국 결혼 까지 하게 된다. 그런 이를 보고 살아서 부활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김익두 청년을 대표로 들 수 있다. 그는 원래 농촌에서 태어난 거인인데 얼마나 힘이 센지 몇 사람의 일을 해 내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한잔 술이 들어가면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뒤집어엎고 잡히는 대로 두들겨 팼다.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그가 꼭 나타나 시장을 완전히 아수라장을 만들고 살아졌다. 그래서 시장 갈 때에는 오늘 김익두 안 만나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 할 정도였다. 그는 그 지역의 괴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미국 선교사를 통하여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되고 과거의 그 나쁜 습관을 청산하고 목사가 되었다. 포악한 사자 같은 사람이 양 같은 전도자가 된 것이다. 그에게 치유의 은사가 뒤따랐다. 그가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어 한국 교회 부흥의 큰 핵을 그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6.25 사변이 일어난 후 인민군들이 후퇴 할 때에 교회에서 기도하는 김익두 목사를 쏴 죽였다. 순교 한 것이다.
부활절을 마지하면서 깨닫는 바 크다. 언제인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해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 받도록 해야겠다는 생각과 또 살아 있을 때에 거듭 난 사람으로 멋진 크리스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다.
연락처) 650-610-9303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