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 2시경 한국에 계신 아버님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시간에 걸려올 전화면 분명 성도님 가정에 무슨 긴급한 사고가 생긴 것으로 짐작하며,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할아버님께서 위독하셔서 병원에 입원하셨고,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할아버님은 100세가 넘을 정도로 장수하시고 건강하신 편이었습니다. 올해 제가 안식년을 가지면, 한국에 꼭 가서 그 동안 듣지 못했던 살아오신 이야기도 듣고, 장차 가시게 될 천국 이야기도 많이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도착해서 구원의 확신도 다시 심어드리고, 임종도 지켜드리며 마지막 떠나시는 길에 축복의 기도를 꼭 해드리고 싶은 소원을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할아버님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회상되어 집니다. 저를 늘 장손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귀여워 해 주시고, 미국 유학 와서 공부할 때까지 매달 학비를 보내주시며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본인은 얼마나 검소하신지, 그 흔한 택시나 자가용 한 번을 안타시고, 평생토록 버스만 타고 다니신 분이십니다. 이북에서 6.25 동란 때 피난 나오신 후 무일푼에서 시작하셔서 70여명의 자손들을 공부 시키고 자립시킨 전형적인 의지의 한국인으로 제 가슴속에는 자리 잡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친지나 이웃들이 있으면 한 번도 도움을 거절한 적이 없으셨을 정도로, 남에게는 관대하시고 자신에게는 무척이나 엄격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방학 때는 시골 할아버님 집에 내려가서 지내곤 했는데, 그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담긴 시간들은 성장하면서 자연에 대한 깊은 감수성과 영혼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람은 인생을 마감할 때가 되어야 그 사람에 대한 참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축복을 받고 태어났는가 보다는 얼마나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았는지가 더 중요하고, 인생을 얼마나 잘 살았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을 어떻게 마쳤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끝은 영원한 인생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나그네의 삶과 같다고 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본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적어도 두 가지를 잘하고 떠나야 합니다. 첫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는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서 주님 앞에 갔을 때 칭찬 받고 큰 상급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잘하면, 이 땅에서도 행복한 삶을 사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에도, 기쁜 마음으로 떠나고, 기쁜 마음으로 환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