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장에서 솔로몬은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찾고자 했는가? 지혜를 궁구함으로서다. 그가 지혜를 얻었는가? 많이 얻었다.

전 1:16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지혜와 지식에 대해서 자신은 만족할 만큼 얻었다고 말했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고 했다.

1장에서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을 많이 얻었지만 그것으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했다. 지적인 추구로 인해 인생의 성취감을 얻지 못한 솔로몬은 이제 2장에서 쾌락으로 나아가고 있다.

2: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지혜와 지식으로는 인생의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솔로몬은 1장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무식하면 근심할 일도 별로 없는데, 너무 많이 알다보니 근심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와 지식을 많이 얻은들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이 헛되다는 것이 1장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쾌락으로 나아갔다. ‘즐겁게 살아보자’고 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혼(마음)에게 ‘너를 즐겁게 해줄 테니 너는 낙을 한 번 누려보라, 즐겁게 살아보라’ 하면서 쾌락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결론은 이것도 헛되다는 것이다.

2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낙을 누린다는 것은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가? 웃음, 희락이다. 인생의 기쁨, 웃을 일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 즐거움을 많이 창조해 내자고 하는 것이 쾌락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쾌락을 추구해보았는데 마음껏 쾌락을 누려보니 그것도 헛되더라는 것이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솔로몬은 웃음에 대하여 논하기를 ‘미친 짓’이라고 했다. 많이 웃으며 사는 인생이 가치있고 행복하겠는가? 전도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요즘에도 많이 웃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웃는 것으로 인생이 즐겁게 되는가? 솔로몬의 경험에 의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많이 웃어봤자 별 것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빌리 그래함이라는 목사님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울증 환자는 보통 저녁에 증상이 심한데 이 환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아침에 잠에서 깨기만 하면 마음이 산란하고 우울하고 날이 갈수록 더 악화돼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병원을 찾았다.

그 환자를 진찰한 정신과 의사는 아무리 상담해도 길이 없어 그 지방의 한 극장에서 공연하는 쇼를 추천해 줬다. 그 쇼의 주인공이 이태리 사람인데 너무나 재미있어서 밤마다 관객들을 요절복통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런 쇼를 가서 볼 것을 추천해 줬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면 당신의 우울한 고통을 감소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환자는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중얼거리기를 ‘내가 바로 그 이태리 광대입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우울증 환자인 광대는 남을 웃길 수는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에게 ‘웃는 것이 좋은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아마 솔로몬처럼 ‘웃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말할 것이다. 인생의 웃음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솔로몬의 말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도 인기 연예인들의 자살이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쾌락을 선물하였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그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부터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자들이 많다고 한다. 이는 참으로 주님이 없는 웃음과 쾌락이 헛됨을 증명한다.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희락은 무엇인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희락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즐거움이 이루는 것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즐거움이 무언가 의미있는 가치를 생산해내는 것이 아닐진대 사람은 깊은 속에서 그 웃음과 즐거움이 헛되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사람은 하나님을 얻고 누릴 때만이 참 즐거움이 있게 되는 존재이다. 그 외의 즐거움은 다 헛되다는 말이다.

3 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그 다음에 솔로몬이 생각한 것은 좋은 술로 마음을 즐겁게 해보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에서 가장 육신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술 외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지만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하려다 자칫 인생을 망치는 수가 있다. 잘못하면 술에 인 박이거나 중독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술의 다스림과 제재를 받지 않는 비결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솔로몬은 그 적절한 한도 내에서 좋은 술을 마시면서 쾌락을 추구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솔로몬 왕은 즐거운 것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웃음에서 술로 나아갔다. 미주가(美酒家), 즉 많이 마셔도 뒤끝이 깨끗하고 산뜻하고 좋은 술을 마셔가면서 기분 좋게 쾌락을 추구해보았다는 것이다.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솔로몬은 지혜로운 방식으로 술을 마셔보았지만 이제는 꼭 지혜로운 방식만이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약간 어리석은 방식 비슷한 것을 취하여 쾌락을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음을 취해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일까 생각하다 보니 4절로 넘어간다.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술 같은 것은 일시적인 것이므로 오랫동안 즐겁게 살려면 사업 같은 일을 벌여서 즐겁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멋있는 집을 잘 지어서 살면 즐겁지 않겠는가?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이러한 일을 좋아하는 부녀들이 많이 있다.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살지 않고 단독주택에 살면서 정원도 만들고 화원도 만들고 각종 과목도 심는 것이다.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정원도 가꾸고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도 주고, 못을 파서 잉어나 물고기도 기르면서 살면 상당히 큰 즐거움과 쾌락이 있을 것이 아닌가? 솔로몬은 돈이 많은 왕이니 못할 일이 있었겠는가? 그가 이렇게 다 해 보았다는 것이다.

7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노비다. 여러분은 노예, 종들을 부려본 적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종들을 두고 섬김을 받아보면 그것이 굉장히 누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 인도에서 선교를 하던 선교사들이 있었는데, 인도에서는 돈을 조금만 주면 하녀들과 종들을 많이 둘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이 모든 일을 다 알아서 해주는데, 그럴 때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양반, 상놈이 아직 있을 때였는데, 우리 아버님 같은 분들은 어떤 집을 방문하게 되면 조심스럽게 ‘누구 계십니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문밖에 서서 뒷짐을 지고 서서 ‘이리 오너라’ 하고 큰 소리를 지르셨다.

사람들이 존경받고 섬김을 받다 보면 그 맛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솔로몬이 노비를 사 보기도 하고 데려다가 섬기게 해 보니까 종종 말썽을 부리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예 노비를 집에서 나도록 한 것이다. 출생할 때부터 아예 노예가 되도록 해서 그 섬김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한 노비들은 매우 충성스럽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그리고 소떼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다. 당시에는 이러한 것이 부(富)의 표시였다. 소떼가 많고 양떼가 많은 것이 부의 축적에 대한 바로미터였던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은행 잔고가 수백억, 수천억이 되는 사람이 은행에 가면 지점장이 달려나와 마중 나오는 격이다. 그런데 그때는 양떼와 소떼가 부의 표시였다. 열지어 서 있는 붉은 소들과 양들로 인해서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자신의 소유를 많게 했다.

8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여러 나라 왕들로부터 오는 보물들, 금은 보화를 가져다가 진열장 같은 곳에 진열해 놓았다. 각 지방의 특산물과 보물들을 다 가져다 놓았다.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노래 잘하는 사람을 다 뽑아서 오늘은 부드러운 불란서 샹송, 내일은 멋있는 이태리 칸초네를 부르도록 한 것이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귀에 쏙 들어온다. 또 아름다운 여자라는 여자는 다 데려다가 처첩을 삼았는데, 부인이 700명이고 첩이 300명으로 도합 1000명이었다. 캄보디아에 갔더니 시아누크 전 국왕은 한 도에 시찰을 가면 가장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을 부인으로 데려온다고 했다. 그는 지금 시대에도 그렇게 많은 후궁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솔로몬은 1000명이나 되는 처첩을 거느렸으니 그런 왕들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유동근 목사는

대전고, 충남대·대학원
Pacific Theological Seminary(Th.M, D.D)
온누리선교교회 담임목사, 美 퍼시픽 신학교 교수
국제선교신학원(IMC) 학장
現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연합총회 총회장
Fuller Theological Seminary D.Min GM Course
저서: 모세오경, 마태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서신서, 요한계시록 등 강해서(총 20권)

저자는 1991년부터 몇몇 동역자들과 함께 몽골,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네팔, 미얀마, 에디오피아, 잠비아, 이태리,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선교를 주로 해온 선교사이며 복음전도자다. 위에서 소개되는 선교일기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지금도 매년 저자와 그 일행은 일년에 한 번 이상 세워진 교회들을 순방하며 진리의 말씀을 공급하고, 교회들을 굳게 세우며 전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