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 땅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미 있던 것이 그 후에 다시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는 촛불집회 등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좀 어렵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이 옛날에는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6·10항쟁 때나 박종철·이한열 같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있었던 일들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이 근세에만 있는가? 아니다. 통치 형태가 달라서 그렇지 왕정 시대 때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 이괄의 난, 전봉준의 난 등이 다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이 봉기를 하는 것은 미화시켜서 그렇지 다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다 이미 있었던 것이 후에 다시 있는 것이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다. 즉 조선 시대에도 있었다. 아니 고려 시대나 삼국 시대에도 있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고조선 시대에도 이미 있었을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 있는 일 가운데 새로운 일이란 없는 것이다. 3500년 전에 쓰여진 모세오경 시대나 그 이후 열왕 시대나 연구해 보면 다 오늘날과 진배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세월이 흐르고 나면 기억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공허한 것이냐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 교회도 예배당을 계약해놓고 너무나 좋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무엇인가? 그 일은 그저 작은 일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돼 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가운데서는 ‘이래서 가슴이 아프고, 저래서 마음이 아프다’는 일이 있지만 그것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세대에 살면서 있었던 많은 일들은 다 잊혀지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하기는 했는가?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다 없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공허한가? 그래서 이 전도서를 다 읽고 해석하고 나면 ‘그냥 실컷 울어버릴까? 우리는 왜 이런 공허한 인생을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여러 가지를 살펴보니 인생들이 수고하는 모든 것이 괴롭다는 것이다. 자신이 궁구하고 살피며 ‘인생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결국 보니까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수고를 주신 것뿐이라는 것이다.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여기서는 ‘해 아래서 행하는’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해 아래서의 모든 일이 바람을 잡는 것 같다고 했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참 허무한 일 중 하나는 정말 고쳐졌으면 좋겠는데 안 고쳐지는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집사님을 볼 때 ‘이 집사님은 어떤 성격을 좀 고치셨으면 좋겠는데…’라고 많은 사람이 너무나 뻔히 알고 있는데 정작 고치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살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가 나이가 드셔서 골다공증이 있으셨는데 어느날 힘이 없어 넘어졌다가 뼈가 부러지셨다. 그러면 그 뼈를 제대로 맞추어야 하는데 그만 굽게 맞춰졌다. 손목이 구부러진 것이다. 병원에 가서 다시 제대로 맞추려면 아프니까 안 하고 계시길래, ‘어머니 이걸 반듯하게 고치셔야죠’하니까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련다’ 하시더니 진짜 그렇게 가셨다. 많은 사람들의 성품이 구부러졌다. 그런데 그런 성격을 죽어도 못 고친다. 많은 사람들이 못된 성격인 줄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16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미친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또 ‘미련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저 사람들은 이렇게 미련할까?’에 대해서 생각했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매우 지혜롭다. 그런데 이 땅에는 미련한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련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그러한 것을 연구하고 생각했던가? 다 공허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지혜가 많은 것도 소용이 없고 번뇌가 있을 뿐이다. 지식이 많아지니까 근심만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를 읽어보면 지혜도 있을 필요가 없고 지식도 있을 필요가 없고 수고도 할 필요가 없으며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염세주의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전도서가 성경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나님 안에서 살펴볼 때 이것이 인간적인 실패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러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포함돼야 한다. 욥기에도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많은 말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욥기가 왜 성경에 들어가야 하는가? 사람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이것밖에 안 된다. 하나님 없이 살면 이렇게 공허한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지혜는 이렇게 무익한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이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많이 누리고 지혜를 얻었던 솔로몬 왕은 결국 모든 것을 누려본 후에 좋았는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애를 쓰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가? 잘 살아보려고 그러는 것이다. 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는가? 지혜와 지식을 더 얻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남들이 칭송하는 명성을 얻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솔로몬보다 더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솔로몬만큼 지혜를 얻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처럼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지혜를 얻었던 왕이 인생 말미에 가서 보니까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이다.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 것이다. 여러분은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알았는가? 다 살아본 후에 헛되다고 한다면 당신은 전도서의 도움, 성경의 도움을 얻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전도서를 읽을 때에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는가? 모든 것을 다 경험을 해 보아야 그것이 헛됨을 아는 것은 아니다. 소위 ‘간접 경험’이라는 것이 있다. 책이란 그런 것이다. 나도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내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 내 책을 읽을 때 여러분이 유익한 것은 내 견해 속에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실패한 경험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젊은이들이 나의 그런 경험을 통해서 도움을 얻으므로 꼭 그런 실패를 거치지 않아도 그 결과를 알게 하여 똑같은 실패의 길을 가지 않도록 해주려는 것이다. 한 가지 한 가지를 직접 겪으면 큰 피해를 당하고 상처를 많이 당할 일도 이러한 ‘간접 경험’을 통해서 잘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결혼식에서 주례를 했었는데 내 친구 중에 이혼한 친구 한 명이 주례 설교를 다 듣고 난 후에 ‘내가 결혼 초기에 친구의 이런 설교를 들었다면 나는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전도서의 모든 말씀들은 인생을 살아보니 허무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솔로몬은 왜 전도서를 기록했는가? 그는 너무나 허무하게 인생을 산 것이다. 온갖 체험을 다 해보고 나서 결국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서를 읽을 때 우리는 ‘아, 부귀를 누려도 인생의 마지막에 헛되다고 하는구나, 영화를 누려도 헛되다고 하는구나’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된다. 이를 먼저 깨달은 선각자가 말해 줄 때에 ‘아, 인생이란 별것이 아니구나, 다 지나가는 바람을 잡는 것과 같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젊었을 때부터 안다면 그런 헛된 일에 정열을 쏟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전도서의 다음 책은 아가서이다. 전도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사랑하는 길, 그것만이 우리에게 만족과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안내해 주는 책인 것이다.
여러분은 전도서 1장을 통해 인생 자체는 허무한 것이기에 주님이 없는 인생은 헛된 것이며, 주님 없이 수고하는 모든 수고는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우리의 만족으로 주어지신 분인 것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과 함께 사는 여러분이 되기 바란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전도서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얻습니다. 사랑하는 주여,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고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헛된 인생 가운데 만유이시고 모든 것 되시고 생명이시고 진리이시고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얻게 하시고 사귀어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감사와 찬미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유동근 목사는
대전고, 충남대·대학원
Pacific Theological Seminary(Th.M, D.D)
온누리선교교회 담임목사, 美 퍼시픽 신학교 교수
국제선교신학원(IMC) 학장
現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연합총회 총회장
Fuller Theological Seminary D.Min GM Course
저서: 모세오경, 마태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서신서, 요한계시록 등 강해서(총 20권)
저자는 1991년부터 몇몇 동역자들과 함께 몽골,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네팔, 미얀마, 에디오피아, 잠비아, 이태리,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선교를 주로 해온 선교사이며 복음전도자다. 위에서 소개되는 선교일기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지금도 매년 저자와 그 일행은 일년에 한 번 이상 세워진 교회들을 순방하며 진리의 말씀을 공급하고, 교회들을 굳게 세우며 전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땅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미 있던 것이 그 후에 다시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는 촛불집회 등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좀 어렵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이 옛날에는 없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6·10항쟁 때나 박종철·이한열 같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있었던 일들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이 근세에만 있는가? 아니다. 통치 형태가 달라서 그렇지 왕정 시대 때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 이괄의 난, 전봉준의 난 등이 다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이 봉기를 하는 것은 미화시켜서 그렇지 다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사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다 이미 있었던 것이 후에 다시 있는 것이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다. 즉 조선 시대에도 있었다. 아니 고려 시대나 삼국 시대에도 있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고조선 시대에도 이미 있었을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 있는 일 가운데 새로운 일이란 없는 것이다. 3500년 전에 쓰여진 모세오경 시대나 그 이후 열왕 시대나 연구해 보면 다 오늘날과 진배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세월이 흐르고 나면 기억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공허한 것이냐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 교회도 예배당을 계약해놓고 너무나 좋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무엇인가? 그 일은 그저 작은 일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돼 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가운데서는 ‘이래서 가슴이 아프고, 저래서 마음이 아프다’는 일이 있지만 그것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세대에 살면서 있었던 많은 일들은 다 잊혀지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하기는 했는가?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다 없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공허한가? 그래서 이 전도서를 다 읽고 해석하고 나면 ‘그냥 실컷 울어버릴까? 우리는 왜 이런 공허한 인생을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여러 가지를 살펴보니 인생들이 수고하는 모든 것이 괴롭다는 것이다. 자신이 궁구하고 살피며 ‘인생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결국 보니까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수고를 주신 것뿐이라는 것이다.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여기서는 ‘해 아래서 행하는’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해 아래서의 모든 일이 바람을 잡는 것 같다고 했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참 허무한 일 중 하나는 정말 고쳐졌으면 좋겠는데 안 고쳐지는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집사님을 볼 때 ‘이 집사님은 어떤 성격을 좀 고치셨으면 좋겠는데…’라고 많은 사람이 너무나 뻔히 알고 있는데 정작 고치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살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가 나이가 드셔서 골다공증이 있으셨는데 어느날 힘이 없어 넘어졌다가 뼈가 부러지셨다. 그러면 그 뼈를 제대로 맞추어야 하는데 그만 굽게 맞춰졌다. 손목이 구부러진 것이다. 병원에 가서 다시 제대로 맞추려면 아프니까 안 하고 계시길래, ‘어머니 이걸 반듯하게 고치셔야죠’하니까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련다’ 하시더니 진짜 그렇게 가셨다. 많은 사람들의 성품이 구부러졌다. 그런데 그런 성격을 죽어도 못 고친다. 많은 사람들이 못된 성격인 줄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16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미친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또 ‘미련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저 사람들은 이렇게 미련할까?’에 대해서 생각했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매우 지혜롭다. 그런데 이 땅에는 미련한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련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그러한 것을 연구하고 생각했던가? 다 공허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지혜가 많은 것도 소용이 없고 번뇌가 있을 뿐이다. 지식이 많아지니까 근심만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를 읽어보면 지혜도 있을 필요가 없고 지식도 있을 필요가 없고 수고도 할 필요가 없으며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염세주의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전도서가 성경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나님 안에서 살펴볼 때 이것이 인간적인 실패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러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포함돼야 한다. 욥기에도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많은 말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욥기가 왜 성경에 들어가야 하는가? 사람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이것밖에 안 된다. 하나님 없이 살면 이렇게 공허한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지혜는 이렇게 무익한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이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많이 누리고 지혜를 얻었던 솔로몬 왕은 결국 모든 것을 누려본 후에 좋았는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애를 쓰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가? 잘 살아보려고 그러는 것이다. 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는가? 지혜와 지식을 더 얻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남들이 칭송하는 명성을 얻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솔로몬보다 더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솔로몬만큼 지혜를 얻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처럼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지혜를 얻었던 왕이 인생 말미에 가서 보니까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이다.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 것이다. 여러분은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알았는가? 다 살아본 후에 헛되다고 한다면 당신은 전도서의 도움, 성경의 도움을 얻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전도서를 읽을 때에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는가? 모든 것을 다 경험을 해 보아야 그것이 헛됨을 아는 것은 아니다. 소위 ‘간접 경험’이라는 것이 있다. 책이란 그런 것이다. 나도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이 내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란다. 내 책을 읽을 때 여러분이 유익한 것은 내 견해 속에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실패한 경험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젊은이들이 나의 그런 경험을 통해서 도움을 얻으므로 꼭 그런 실패를 거치지 않아도 그 결과를 알게 하여 똑같은 실패의 길을 가지 않도록 해주려는 것이다. 한 가지 한 가지를 직접 겪으면 큰 피해를 당하고 상처를 많이 당할 일도 이러한 ‘간접 경험’을 통해서 잘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결혼식에서 주례를 했었는데 내 친구 중에 이혼한 친구 한 명이 주례 설교를 다 듣고 난 후에 ‘내가 결혼 초기에 친구의 이런 설교를 들었다면 나는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전도서의 모든 말씀들은 인생을 살아보니 허무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솔로몬은 왜 전도서를 기록했는가? 그는 너무나 허무하게 인생을 산 것이다. 온갖 체험을 다 해보고 나서 결국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서를 읽을 때 우리는 ‘아, 부귀를 누려도 인생의 마지막에 헛되다고 하는구나, 영화를 누려도 헛되다고 하는구나’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된다. 이를 먼저 깨달은 선각자가 말해 줄 때에 ‘아, 인생이란 별것이 아니구나, 다 지나가는 바람을 잡는 것과 같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젊었을 때부터 안다면 그런 헛된 일에 정열을 쏟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전도서의 다음 책은 아가서이다. 전도서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고 사랑하는 길, 그것만이 우리에게 만족과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안내해 주는 책인 것이다.
여러분은 전도서 1장을 통해 인생 자체는 허무한 것이기에 주님이 없는 인생은 헛된 것이며, 주님 없이 수고하는 모든 수고는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우리의 만족으로 주어지신 분인 것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과 함께 사는 여러분이 되기 바란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전도서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얻습니다. 사랑하는 주여,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고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헛된 인생 가운데 만유이시고 모든 것 되시고 생명이시고 진리이시고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얻게 하시고 사귀어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감사와 찬미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유동근 목사는
대전고, 충남대·대학원
Pacific Theological Seminary(Th.M, D.D)
온누리선교교회 담임목사, 美 퍼시픽 신학교 교수
국제선교신학원(IMC) 학장
現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연합총회 총회장
Fuller Theological Seminary D.Min GM Course
저서: 모세오경, 마태복음, 요한복음, 로마서, 서신서, 요한계시록 등 강해서(총 20권)
저자는 1991년부터 몇몇 동역자들과 함께 몽골,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네팔, 미얀마, 에디오피아, 잠비아, 이태리,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선교를 주로 해온 선교사이며 복음전도자다. 위에서 소개되는 선교일기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지금도 매년 저자와 그 일행은 일년에 한 번 이상 세워진 교회들을 순방하며 진리의 말씀을 공급하고, 교회들을 굳게 세우며 전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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