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말처럼 모든 만물이 칭찬으로 살아간다. 꽃에 물을 주면서“나는 너를 사랑 한다”고 매일 반복하면 싱싱하게 잘 자라고 꽃도 아름답게 핀다. 고양이나 개도 자주 쓰다듬어 주고 귀여워하면 훨씬 건강하게 잘 자란다. 그래서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축사에다 스피커를 달아놓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이유도 알만하다.
근래는 심지어 물도 칭찬을 하면 좋은 반응을 일으켜서 사람에게 좋은 식수가 된다는 연구 발표가 자주 나온다. 하물며 인간이랴! 칭찬이 생명이다. 어려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애들이 그렇지 못한 애들 보다 건강하고 정서면 에서도 안정되고 큰일을 해내고 나가서는 다른 사람을 칭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른이나 애들 모두 칭찬에 인색하다. 하루는 복동이가 집으로 빨리 뛰어 들어 오면서 “엄마 엄마 나 100점 받았어”하며 시험지를 엄마 코밑에 갔다 댔다. 엄마 왈 “야 네 친구 영남이는 몇 점인데 걔도 100점이야?” 엄마는 한수 더 떠서 “시험이 쉬웠나보다” 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 하셨다. 복동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방에 들어가 오래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다시 100점을 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교육에는 채찍과 당근이 병행한다. 그런데 공부의 열정도 당근이고 심지어 학생의 잘못된 태도를 바로 잡아 주는 것도 채찍보다는 당근이 절대적으로 효과가 있다. 다른 실례를 들어본다. 오래간만에 새 차를 산 김 씨는 기분 좋게 집 앞에 세웠다. 이웃에 사는 미국 친구들이 와 보고는 “우와 멋지다 뉴 모델이다. 색갈이 너무 좋다. 마일리지는 얼마나 되는데? 동네가 환해지네.” 하고 웃긴다.
다음날 김 씨는 그 차를 몰고 신나게 한국의 고등학교 출신의 동창회에 갔다. 그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야 너 돈 벌었구나! 얼마 주었니? 얼마다운 하고 얼마씩 매달 내는데? 네 수입에 괜찮으냐? 일본차가 더 좋은가?” 등. 두 그룹의 반응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한편은 주로 차에 대한 칭찬이고 다른 편에서는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다. 어떤 그룹이 더 건전하고 인간관계가 원만할까!?
차에 관해서만이 아니다. 다른 문제에 관해서도 가능한 긍정적이고 칭찬하는 문화와 남의 사생활을 알고는 이러쿵 저러쿵 평하는 풍토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한국 사람은 오랜 전통 중의 하나가 가능한 자기의 감정을 자제하는 편이다.
자주 이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의 말이 울타리를 벗어나 없어졌다.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자 주인은 덤덤히 받아 드렸다. 얼마 후에 나갔던 말이 다른 말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참 좋겠다고 격려해도 주인은 여전히 좋아하는 기색이 없다. 시간이 흐른 후에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남들이 찾아와 위로하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덤덤하다. 얼마 후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젊은 사람들이 군인으로 나가 죽었다. 남들은 와서 다리 부러진 아들이 효자라고 해도 별로 희비애락의 표시가 없었다.
그런 태도가 군자의 바른 마음가짐이라는 전통이다. 그렇게 감정표시를 억제하는 오랜 전통은 남에게 칭찬 하는 것 까지도 아첨으로 생각 하고 속으로만 알고 있으면 되지 말로 표현 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근래 많이 서구화되어 감정 표시를 하지만 아직 멀었다.
예수님은 칭찬을 많이 하셨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인정하면서 칭찬하셨다. 한 실례로 12사도의 맏형 격인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두면이 있는 것을 보셨다. 단순하고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면이 있고 다른 면으로는 즉흥적이고 말에 실수가 많고 인내심이 부족한 것을. 예수님은 좋은 면을 더욱 크게 보셨다. 그래서 그에게 “너는 지금까지 고기 잡는 어부지만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하시며 제자를 삼으셨다. 그는 그 칭찬에 홀딱 반해서 “예” 하고 바로 제자가 되었다.
또 다른 실례를 보자. 부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질투의 대상도 된다. 더욱이 세금장이의 최고 책임자인 삭개오는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수전노 또는 점령군 로마에 충성한다고 매국노로 상대를 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마음 한 모퉁이에 구세주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고 나가서는 남들을 구제하려는 뜻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의 집에 가셔서 식사를 하시며 그를 변화 시켰다. 변화의 무기는 칭찬이었다.
황 집사는 감사와 칭찬의 달인이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감사와 칭찬이 전부다. 심지어 농담을 해도 상대방을 추켜세워 웃긴다. 그분은 남들을 즐겁게 하고 분위기를 띄운다. 칭찬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있으면 된다.
연락처) 650-610-9303
근래는 심지어 물도 칭찬을 하면 좋은 반응을 일으켜서 사람에게 좋은 식수가 된다는 연구 발표가 자주 나온다. 하물며 인간이랴! 칭찬이 생명이다. 어려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애들이 그렇지 못한 애들 보다 건강하고 정서면 에서도 안정되고 큰일을 해내고 나가서는 다른 사람을 칭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른이나 애들 모두 칭찬에 인색하다. 하루는 복동이가 집으로 빨리 뛰어 들어 오면서 “엄마 엄마 나 100점 받았어”하며 시험지를 엄마 코밑에 갔다 댔다. 엄마 왈 “야 네 친구 영남이는 몇 점인데 걔도 100점이야?” 엄마는 한수 더 떠서 “시험이 쉬웠나보다” 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 하셨다. 복동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방에 들어가 오래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다시 100점을 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교육에는 채찍과 당근이 병행한다. 그런데 공부의 열정도 당근이고 심지어 학생의 잘못된 태도를 바로 잡아 주는 것도 채찍보다는 당근이 절대적으로 효과가 있다. 다른 실례를 들어본다. 오래간만에 새 차를 산 김 씨는 기분 좋게 집 앞에 세웠다. 이웃에 사는 미국 친구들이 와 보고는 “우와 멋지다 뉴 모델이다. 색갈이 너무 좋다. 마일리지는 얼마나 되는데? 동네가 환해지네.” 하고 웃긴다.
다음날 김 씨는 그 차를 몰고 신나게 한국의 고등학교 출신의 동창회에 갔다. 그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야 너 돈 벌었구나! 얼마 주었니? 얼마다운 하고 얼마씩 매달 내는데? 네 수입에 괜찮으냐? 일본차가 더 좋은가?” 등. 두 그룹의 반응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한편은 주로 차에 대한 칭찬이고 다른 편에서는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다. 어떤 그룹이 더 건전하고 인간관계가 원만할까!?
차에 관해서만이 아니다. 다른 문제에 관해서도 가능한 긍정적이고 칭찬하는 문화와 남의 사생활을 알고는 이러쿵 저러쿵 평하는 풍토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한국 사람은 오랜 전통 중의 하나가 가능한 자기의 감정을 자제하는 편이다.
자주 이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한 농부의 말이 울타리를 벗어나 없어졌다.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자 주인은 덤덤히 받아 드렸다. 얼마 후에 나갔던 말이 다른 말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참 좋겠다고 격려해도 주인은 여전히 좋아하는 기색이 없다. 시간이 흐른 후에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남들이 찾아와 위로하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덤덤하다. 얼마 후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젊은 사람들이 군인으로 나가 죽었다. 남들은 와서 다리 부러진 아들이 효자라고 해도 별로 희비애락의 표시가 없었다.
그런 태도가 군자의 바른 마음가짐이라는 전통이다. 그렇게 감정표시를 억제하는 오랜 전통은 남에게 칭찬 하는 것 까지도 아첨으로 생각 하고 속으로만 알고 있으면 되지 말로 표현 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근래 많이 서구화되어 감정 표시를 하지만 아직 멀었다.
예수님은 칭찬을 많이 하셨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인정하면서 칭찬하셨다. 한 실례로 12사도의 맏형 격인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두면이 있는 것을 보셨다. 단순하고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면이 있고 다른 면으로는 즉흥적이고 말에 실수가 많고 인내심이 부족한 것을. 예수님은 좋은 면을 더욱 크게 보셨다. 그래서 그에게 “너는 지금까지 고기 잡는 어부지만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하시며 제자를 삼으셨다. 그는 그 칭찬에 홀딱 반해서 “예” 하고 바로 제자가 되었다.
또 다른 실례를 보자. 부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질투의 대상도 된다. 더욱이 세금장이의 최고 책임자인 삭개오는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수전노 또는 점령군 로마에 충성한다고 매국노로 상대를 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마음 한 모퉁이에 구세주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고 나가서는 남들을 구제하려는 뜻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의 집에 가셔서 식사를 하시며 그를 변화 시켰다. 변화의 무기는 칭찬이었다.
황 집사는 감사와 칭찬의 달인이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감사와 칭찬이 전부다. 심지어 농담을 해도 상대방을 추켜세워 웃긴다. 그분은 남들을 즐겁게 하고 분위기를 띄운다. 칭찬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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