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기독교가 폄훼되고 기독교계가 여기에 반짝 대응을 한 후 지금 이 문제는 유야무야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신학대학교는 많지만 타 종교, 특히 이슬람 연구는 심히 우려할 정도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이슬람 연구는 신학대학교가 아닌 한국외대, 명지대, 조선대, 부산외대 등 아랍어과가 있는 일반 종합대학교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기독교 신학과 이슬람 신학 둘 다 공부한 학자들은 찾아 보기 힘들다. 기독교와 이슬람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신학대의 연구소나 학과가 없어 아직 이슬람학이 정립되지 않았다. 심지어 신학대 교수들도 이슬람 문제가 나오면 매우 극단적인 견해를 취할 때가 있다. 최근 들은 한국의 상황 중에 “이슬람에 대해 강경 노선과 사랑으로 감싸자는 두 극단에서 교인들이 상당히 당황해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말은 한 달 전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도 들은 바 있다.
테러를 하는 사람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국에서는 그동안 이슬람 지역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분들이 있으면서도 여론에 밀려 그 진위를 바르게 파악하기 전에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간 공영방송들이 이슬람에 대한 편파적인 방송을 내보내 이슬람의 진실과 참 모습은 더더욱 다른 색으로 윤색된 뒤여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한국의 인터넷 악플로 인하여 바른 말을 하려는 사람들이 도매급으로 매도 당하기 싫어 아무나 섣불리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기를 꺼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간단하다. 테러를 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이슬람 국가에서도 무슬림들은 테러를 증오한다고 자주 발표한다. 지난달 시리아 수도 공항로에서 일어난 테러 때도 시리아 국영방송은 며칠간 시리아 정부가 테러를 행한 자들을 비난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사실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기독교인들이 양극을 달리는 의견들로 나뉘고 있는가? 각각의 주장이 타당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슬람의 영향이 여론과 함께 기독교인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기독교인 일부가 피랍되는 등 일련의 이슬람 지역에서의 한국인의 폐해가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두 극단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없는가? 답은 가까이에 있다. 우리 안에 이슬람 전문가들이 없어서 그렇다. 건강한 의견들이 수렴되고 이를 소화해 낼 만큼 이슬람에 대한 축적된 연구 결과가 있었어야 했다.
한국서의 이슬람 이해는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
최근 시리아 텔레비전 방송에서 카타르의 유수프 무함마드 교수는 이슬람의 문화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언어, 교육들을 총망라하는 개념이라고 하였고 서구의 민주주의를 중동에 심으면 실패할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오늘날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개념 간의 차이가 있다. 그는 과거 무슬림 여성들은 이슬람 종교와 전통 간의 긴장으로 학교를 못 갔으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또 카타르가 온건 이슬람을 표방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강경 무슬림들도 있다는 말을 암시하고 있다. 무슬림의 주장을 균형적으로 바라보려면 그들과 함께 살아보면서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맞물릴 때 정확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이슬람 이해가 자꾸만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이슬람 국가에서 멀리 떨어진 이유도 있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연구가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아서 그렇다. 더구나 기독교 기관들이 무슬림들을 강사로 모시는 것도 그만큼 인재 양성에 등한시 한 것이라 하겠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불러서 기독교를 배우는 대학이 없다. 무슬림들을 유럽으로 보내 기독교대학에서 학위를 받게 한 뒤 이슬람 국가에 돌아와 기독교에 대한 변증을 한다. 차제에 한국의 기독교 기관들이 무슬림들을 강사로 세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들의 말이 균형을 잃어 이제는 무슬림들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를 보내는 기독교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연구하려면 이슬람 국가나 영국, 미국 등 해외로 나가야 하고 무슬림들에게만 연구 논문을 지도 받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무슬림들이 연구한 내용들 중 실제 이슬람 국가의 현실에 맞지 않고 오류와 편협한 시각들로 인해 오늘의 한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한 건강한 이해를 막기도 하였다.
해법은 신학교에 이슬람 관련 연구 활발히 일어나야
이슬람 연구는 중동을 한 번 두루 여행한다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최근의 모 공영방송이 이미 기사 내용을 써 놓고 이슬람 국가를 한번 돌아다니면서 원고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 취재를 한 것과 같다.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 수준이 곧 한국 국민의 이슬람 수준일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에서 듣고 배우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한국의 무슬림들이 제시하는 내용이 주가 되어 이슬람학의 건강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실제 아랍어 코란을 읽고 주석할 수 없는 한국인 학자들의 부정확한 말들이 한국 언론에 대서 특필되는 것을 보면 가히 한국의 이슬람학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겠다.
결국 해법은 아랍어와 이슬람 연구가 기독교를 표방하는 일반 대학교와 더불어 최소한 국내 한 신학대학교에서도 활발하게 연구될 수 있도록 기독교-이슬람관계학과, 아랍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이슬람 지역학과들이 개설되고 이와 관련된 강좌들이 몇몇 대학에 개설되어야 할 것이다.
중동 A국 주원
그러나 특별히 기독교 신학과 이슬람 신학 둘 다 공부한 학자들은 찾아 보기 힘들다. 기독교와 이슬람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신학대의 연구소나 학과가 없어 아직 이슬람학이 정립되지 않았다. 심지어 신학대 교수들도 이슬람 문제가 나오면 매우 극단적인 견해를 취할 때가 있다. 최근 들은 한국의 상황 중에 “이슬람에 대해 강경 노선과 사랑으로 감싸자는 두 극단에서 교인들이 상당히 당황해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말은 한 달 전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도 들은 바 있다.
테러를 하는 사람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국에서는 그동안 이슬람 지역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분들이 있으면서도 여론에 밀려 그 진위를 바르게 파악하기 전에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난 몇 년 간 공영방송들이 이슬람에 대한 편파적인 방송을 내보내 이슬람의 진실과 참 모습은 더더욱 다른 색으로 윤색된 뒤여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 한국의 인터넷 악플로 인하여 바른 말을 하려는 사람들이 도매급으로 매도 당하기 싫어 아무나 섣불리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기를 꺼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간단하다. 테러를 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이슬람 국가에서도 무슬림들은 테러를 증오한다고 자주 발표한다. 지난달 시리아 수도 공항로에서 일어난 테러 때도 시리아 국영방송은 며칠간 시리아 정부가 테러를 행한 자들을 비난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사실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기독교인들이 양극을 달리는 의견들로 나뉘고 있는가? 각각의 주장이 타당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슬람의 영향이 여론과 함께 기독교인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기독교인 일부가 피랍되는 등 일련의 이슬람 지역에서의 한국인의 폐해가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두 극단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없는가? 답은 가까이에 있다. 우리 안에 이슬람 전문가들이 없어서 그렇다. 건강한 의견들이 수렴되고 이를 소화해 낼 만큼 이슬람에 대한 축적된 연구 결과가 있었어야 했다.
한국서의 이슬람 이해는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
최근 시리아 텔레비전 방송에서 카타르의 유수프 무함마드 교수는 이슬람의 문화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언어, 교육들을 총망라하는 개념이라고 하였고 서구의 민주주의를 중동에 심으면 실패할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오늘날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개념 간의 차이가 있다. 그는 과거 무슬림 여성들은 이슬람 종교와 전통 간의 긴장으로 학교를 못 갔으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또 카타르가 온건 이슬람을 표방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강경 무슬림들도 있다는 말을 암시하고 있다. 무슬림의 주장을 균형적으로 바라보려면 그들과 함께 살아보면서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맞물릴 때 정확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의 이슬람 이해가 자꾸만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이슬람 국가에서 멀리 떨어진 이유도 있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연구가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아서 그렇다. 더구나 기독교 기관들이 무슬림들을 강사로 모시는 것도 그만큼 인재 양성에 등한시 한 것이라 하겠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불러서 기독교를 배우는 대학이 없다. 무슬림들을 유럽으로 보내 기독교대학에서 학위를 받게 한 뒤 이슬람 국가에 돌아와 기독교에 대한 변증을 한다. 차제에 한국의 기독교 기관들이 무슬림들을 강사로 세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들의 말이 균형을 잃어 이제는 무슬림들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를 보내는 기독교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을 연구하려면 이슬람 국가나 영국, 미국 등 해외로 나가야 하고 무슬림들에게만 연구 논문을 지도 받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무슬림들이 연구한 내용들 중 실제 이슬람 국가의 현실에 맞지 않고 오류와 편협한 시각들로 인해 오늘의 한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한 건강한 이해를 막기도 하였다.
해법은 신학교에 이슬람 관련 연구 활발히 일어나야
이슬람 연구는 중동을 한 번 두루 여행한다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최근의 모 공영방송이 이미 기사 내용을 써 놓고 이슬람 국가를 한번 돌아다니면서 원고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 취재를 한 것과 같다.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 수준이 곧 한국 국민의 이슬람 수준일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에서 듣고 배우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한국의 무슬림들이 제시하는 내용이 주가 되어 이슬람학의 건강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실제 아랍어 코란을 읽고 주석할 수 없는 한국인 학자들의 부정확한 말들이 한국 언론에 대서 특필되는 것을 보면 가히 한국의 이슬람학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겠다.
결국 해법은 아랍어와 이슬람 연구가 기독교를 표방하는 일반 대학교와 더불어 최소한 국내 한 신학대학교에서도 활발하게 연구될 수 있도록 기독교-이슬람관계학과, 아랍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이슬람 지역학과들이 개설되고 이와 관련된 강좌들이 몇몇 대학에 개설되어야 할 것이다.
중동 A국 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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