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캄보디아 프놈펜은 4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맹위를 부렸다. 그러나 백발의 선교학자의 사역 열정은 프놈펜의 더위도 무색하게 할 만큼 뜨거웠다. 피어선대학교와 고신대학교 학장, 한국복음주의선교학회,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초대 총무, 예장고신교단 총무 등 국내외에서 20년 이상을 선교학자이자 교육자, 교계 지도자로 쉼 없이 달려온 전호진 박사(68)가 지난달 25일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총장으로 부임했다. 7월 중순부터 약 50여일 간 캄보디아에서 머물다 2주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온 전 박사를 만나 캄보디아 기독교의 현주소와 과제, 활동 계획 등을 물어보았다.
전호진 박사는 “캄보디아는 불교국가이나 훈센 총리가 개혁개방을 표방하며 기독교 활동에도 제한적 자유를 허용했다”며 “지난 10여년 간 기독교가 계속 성장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슬람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독교가 캄보디아 사회에 뿌리내리느냐가 관건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주류 미전도종족 및 하층 서민들 만큼 주류 미전도종족과 사회 지식층 선교에도 관심을 쏟아 기독교의 영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교를 실적과 물량 위주로 평가하면서 선교사들이 사역에 내실을 기하지 못하는 상황도 지적했다. 전 박사는 “캄보디아에서 교회를 건축했지만 지도자와 교인이 없어 결국 문을 닫는 것을 보았다”며 “외형적 교회와 교인 수보다도 헌신적인 현지 지도자들을 양육하여 이들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 동남아 국가 주류 종족에 파고들지 못해
1380만 인구의 85%가 불교인인 캄보디아에서 기독교인은 약 2.5%(33만 7천여 명)에 불과하다. 1974년 당시 9백만 인구 중 기독교인이 0.1%(1만여 명)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성장을 이뤘지만 여전히 소수 종교이다. 또 이들의 대부분은 소수 미전도종족, 하층 서민 등 소외계층이고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주종족 크메르족에서 기독교인은 극히 소수다. 전 박사는 “과거 서구 국가들이 동남아 국가들을 지배할 때 소수 종족을 이용하여 통치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며 “서구 국가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소외된 소수 종족들 중에는 기독교인으로서 반정부, 반체제 성향을 보여 주류 사회에까지 기독교가 확산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위가 아니더라도 소수 민족이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주종족이 믿는 불교, 흰두교가 아닌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반정부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캄보디아 역시 크메르족인 사회 지식층과 상류층, 중산층 등을 위한 기독교 선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크메르족의 불심이 깊고 사회가 폐쇄적인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도 감안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다. 전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도 잘하는 인재들은 외국계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며 “한국 선교사들이 대학생들에게 기숙사까지 제공하며 교회로 인도하지만 대다수가 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교회도 떠나고 만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종교성 대표가 무슬림이라 그런지 기독교 관련 서류들도 잘 승인해주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선교사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선교사 자신의 선행을 쌓는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한다든지 통일교, 여호와의증인, 신천지 같은 이단들의 활발한 진출 등도 캄보디아 선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전 박사는 말했다.
캄보디아 선교 전환기 맞이해
캄보디아 기독교는 경제 발전 등을 목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편 훈센 총리가 90년대 초부터 기독교 선교에 대해 규제완화 정책을 펴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여전히 기독교 서적 반입을 금지하고 정부의 허락 없이 교회를 세울 수 없지만 기독교 노방전도가 합법화되면서 교회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작년 교회 수는 2470개였고 올해는 140여 곳 정도 증가해 2610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선교를 일부 허용한 것과 함께 캄보디아인들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은 한국교회의 캄보디아 선교에 큰 플러스 요인이다. 한국 기업들이 캄보디아에 좋은 이미지를 많이 주어서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도시마다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경제 교류도 활발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훈센 총리의 경제 자문인 것을 비롯하여 수도 프놈펜에서 가장 높은 지상 42층 규모로 들어서는 최신 빌딩을 한일건설이 맡았다. 국내 은행도 신한은행, 한국산업은행 등 5개 은행이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수십만 명이고 한인교민들도 8천여 명에 달한다.
이처럼 캄보디아가 한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한국인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고 있지만 사역은 조심스럽게 이뤄진다. 전 박사는 “언제까지나 좋은 시기일 수 없을 것”이라며 “선교사들도 항상 불교 세력이 저항할 것을 각오하고 사역 환경이 악화되면 떠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현지 지도자 적극 유치할 계획
1993년부터 한국과 미주 장로교회에서 캄보디아로 파송된 선교사들은 2003년 7월 7개 장로교단(합동, 통합, 고신, 대신, 고려, 개혁, 합신) 연합으로 ‘캄보디아장로교공의회’를 발족했다. 공의회 첫 사역으로 2004년 10월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를 설립해 4년이 지난 지난달 25일 11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9월 1일에는 신학생 40명과 처음 모집한 신대원생 12명의 입학식이 열렸다. 신대원생의 절반이 학부 졸업생이었다.
4년 간 총장이 없이 교장 체제로 온 신학교에 첫 총장으로 취임한 전 박사는 ”7개 장로교단이 연합하여 세운 선교지 최고의 신학교인데 아직 임대건물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학교 부지로 4.2헥타르를 확보해 놓았으며 차차 본관과 학생회관, 기숙사를 갖춘 단독건물을 건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학교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캄보디아어로 신학 강의가 가능한 교수 요원과 좋은 학생들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는 “한국 선교계에서 캄보디아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며 “가장 좋은 방법은 신대원 졸업생 중에서 현지인 교수 요원들을 빨리 배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목회자 수는 교회 수의 절반 정도밖에 안돼 목회자 양성 또한 신학교의 중요한 과제다. 전 박사는 “이번 신학교 졸업생 중에 1~2명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에서 활동하는 전도사들”이라며 “현지 교단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훈련 받으러 올 수 있도록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도 교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국 선교사가 아닌 현지인들을 통해 캄보디아에 부흥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선교의 현주소와 과제는
캄보디아에 기독교가 뿌리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선교사들은 주류, 비주류 미전도종족을 가리지 않고 주일학교 어린이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 어린이 성경공부교재 등을 개발해야 한다고 전 박사는 말했다. 파송 교회와 후원자들은 외형적 교회와 교인 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헌신적인 현지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신학적 소프트웨어를 현지어로 완벽히 전달할 수 있는 선교사 및 현지인 교수 발굴이 필수다. 현지인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공격적인 단기여행도 자제해야 하며 되도록이면 단기여행을 줄이는 것이 선교사들이 ‘가이드’가 아닌 본 사역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전략은 캄보디아뿐 아니라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대학생 강사에게 캄보디아어를 배우느라 고생했다는 그는 “평생 학생으로 공부할 팔자인가 보다”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투아이즈네트워크 대표로 한국에서 근본주의 이슬람의 확산을 경계해 온 그는 캄보디아에서도 말레이시아 무슬림을 통하여 이슬람이 확장되고 있다며 기독교의 저변 확대가 시급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리고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신한크메르은행 763-000-016555 전호진)가 캄보디아에 기독교 정착에 기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국교회에 관심과 응원을 요청했다.
전호진 박사는 “캄보디아는 불교국가이나 훈센 총리가 개혁개방을 표방하며 기독교 활동에도 제한적 자유를 허용했다”며 “지난 10여년 간 기독교가 계속 성장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슬람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독교가 캄보디아 사회에 뿌리내리느냐가 관건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주류 미전도종족 및 하층 서민들 만큼 주류 미전도종족과 사회 지식층 선교에도 관심을 쏟아 기독교의 영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교를 실적과 물량 위주로 평가하면서 선교사들이 사역에 내실을 기하지 못하는 상황도 지적했다. 전 박사는 “캄보디아에서 교회를 건축했지만 지도자와 교인이 없어 결국 문을 닫는 것을 보았다”며 “외형적 교회와 교인 수보다도 헌신적인 현지 지도자들을 양육하여 이들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 동남아 국가 주류 종족에 파고들지 못해
1380만 인구의 85%가 불교인인 캄보디아에서 기독교인은 약 2.5%(33만 7천여 명)에 불과하다. 1974년 당시 9백만 인구 중 기독교인이 0.1%(1만여 명)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성장을 이뤘지만 여전히 소수 종교이다. 또 이들의 대부분은 소수 미전도종족, 하층 서민 등 소외계층이고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주종족 크메르족에서 기독교인은 극히 소수다. 전 박사는 “과거 서구 국가들이 동남아 국가들을 지배할 때 소수 종족을 이용하여 통치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며 “서구 국가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소외된 소수 종족들 중에는 기독교인으로서 반정부, 반체제 성향을 보여 주류 사회에까지 기독교가 확산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위가 아니더라도 소수 민족이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주종족이 믿는 불교, 흰두교가 아닌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반정부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캄보디아 역시 크메르족인 사회 지식층과 상류층, 중산층 등을 위한 기독교 선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크메르족의 불심이 깊고 사회가 폐쇄적인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도 감안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다. 전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도 잘하는 인재들은 외국계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며 “한국 선교사들이 대학생들에게 기숙사까지 제공하며 교회로 인도하지만 대다수가 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교회도 떠나고 만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종교성 대표가 무슬림이라 그런지 기독교 관련 서류들도 잘 승인해주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선교사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선교사 자신의 선행을 쌓는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한다든지 통일교, 여호와의증인, 신천지 같은 이단들의 활발한 진출 등도 캄보디아 선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전 박사는 말했다.
캄보디아 선교 전환기 맞이해
캄보디아 기독교는 경제 발전 등을 목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편 훈센 총리가 90년대 초부터 기독교 선교에 대해 규제완화 정책을 펴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여전히 기독교 서적 반입을 금지하고 정부의 허락 없이 교회를 세울 수 없지만 기독교 노방전도가 합법화되면서 교회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작년 교회 수는 2470개였고 올해는 140여 곳 정도 증가해 2610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선교를 일부 허용한 것과 함께 캄보디아인들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은 한국교회의 캄보디아 선교에 큰 플러스 요인이다. 한국 기업들이 캄보디아에 좋은 이미지를 많이 주어서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도시마다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경제 교류도 활발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훈센 총리의 경제 자문인 것을 비롯하여 수도 프놈펜에서 가장 높은 지상 42층 규모로 들어서는 최신 빌딩을 한일건설이 맡았다. 국내 은행도 신한은행, 한국산업은행 등 5개 은행이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수십만 명이고 한인교민들도 8천여 명에 달한다.
이처럼 캄보디아가 한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한국인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고 있지만 사역은 조심스럽게 이뤄진다. 전 박사는 “언제까지나 좋은 시기일 수 없을 것”이라며 “선교사들도 항상 불교 세력이 저항할 것을 각오하고 사역 환경이 악화되면 떠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현지 지도자 적극 유치할 계획
1993년부터 한국과 미주 장로교회에서 캄보디아로 파송된 선교사들은 2003년 7월 7개 장로교단(합동, 통합, 고신, 대신, 고려, 개혁, 합신) 연합으로 ‘캄보디아장로교공의회’를 발족했다. 공의회 첫 사역으로 2004년 10월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를 설립해 4년이 지난 지난달 25일 11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9월 1일에는 신학생 40명과 처음 모집한 신대원생 12명의 입학식이 열렸다. 신대원생의 절반이 학부 졸업생이었다.
4년 간 총장이 없이 교장 체제로 온 신학교에 첫 총장으로 취임한 전 박사는 ”7개 장로교단이 연합하여 세운 선교지 최고의 신학교인데 아직 임대건물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학교 부지로 4.2헥타르를 확보해 놓았으며 차차 본관과 학생회관, 기숙사를 갖춘 단독건물을 건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학교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캄보디아어로 신학 강의가 가능한 교수 요원과 좋은 학생들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는 “한국 선교계에서 캄보디아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며 “가장 좋은 방법은 신대원 졸업생 중에서 현지인 교수 요원들을 빨리 배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목회자 수는 교회 수의 절반 정도밖에 안돼 목회자 양성 또한 신학교의 중요한 과제다. 전 박사는 “이번 신학교 졸업생 중에 1~2명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에서 활동하는 전도사들”이라며 “현지 교단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훈련 받으러 올 수 있도록 현지 교회 지도자들과도 교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국 선교사가 아닌 현지인들을 통해 캄보디아에 부흥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선교의 현주소와 과제는
캄보디아에 기독교가 뿌리내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선교사들은 주류, 비주류 미전도종족을 가리지 않고 주일학교 어린이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 어린이 성경공부교재 등을 개발해야 한다고 전 박사는 말했다. 파송 교회와 후원자들은 외형적 교회와 교인 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헌신적인 현지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신학적 소프트웨어를 현지어로 완벽히 전달할 수 있는 선교사 및 현지인 교수 발굴이 필수다. 현지인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공격적인 단기여행도 자제해야 하며 되도록이면 단기여행을 줄이는 것이 선교사들이 ‘가이드’가 아닌 본 사역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전략은 캄보디아뿐 아니라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대학생 강사에게 캄보디아어를 배우느라 고생했다는 그는 “평생 학생으로 공부할 팔자인가 보다”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투아이즈네트워크 대표로 한국에서 근본주의 이슬람의 확산을 경계해 온 그는 캄보디아에서도 말레이시아 무슬림을 통하여 이슬람이 확장되고 있다며 기독교의 저변 확대가 시급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리고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신한크메르은행 763-000-016555 전호진)가 캄보디아에 기독교 정착에 기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한국교회에 관심과 응원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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