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파트너스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러 집에서 훈련시킨 가신 318명을 선출해서 가잖아요. 이들은 자유의 투사요 구원의 용사들 입니다. 제가 탈북자들을 돕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 들어간 형법이 ‘제 318조 타인비법 월경죄’ 였어요. 출소하고 나서, 비록 318조로 잡혀 들어갔지만, 역으로 318명의 용사가 되어 탈북 여성을 구출해내는 사역을 해야겠다는 영감을 주셨습니다.”

지난 주말, 조지아 제 10기 아버지학교 간증자로 애틀랜타를 찾은 ‘318 파트너스’ 스티브 김 대표를 만났다. 그는 4년의 옥고를 치른 사람답지 않게 활기차고 건강해 보였다. 중국에서 탈북자 사역을 했다기에 당연히 ‘목사님’이라고 호칭했더니, 김 대표는 손사래를 친다.

“저는 감옥에서 목사님도 해보고 선교사님도 해봤지만, 집사가 제일 좋데요.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초대교회 빌립 집사 같은 ‘집사’ 자리가 제겐 딱 인 것 같습니다.”

이민생활 30년, 가구 사업을 하며 장성한 두 아들에 남 부러울 것 없이 안정된 생활을 하던 스티브 김 집사는 뉴욕 헌팅턴주에 거주하는 평범한 신앙인이었다. 교회 섬김에도 열심이던 그가, 1987년 중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만나게 된 탈북자들이 그의 인생을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업을 하며 중국 심천에서 섬기던 교회에서 한국인 전도를 위해 광고를 몇 번 냈어요. 그 광고를 보고 탈북자들이 일주일에 한 두 명씩 꾸준하게 찾아왔어요. 유일한 미국 시민권자였던 저는 ‘설마 미국사람에게 어떻게 할까’ 싶어 탈북자들을 재워주고 입혀주면서 돌봐줬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한국에 가면 시민권도 나오고 정착지원금도 나온다고 하면서요.”

우연한 기회에 탈북자들을 돕기 시작해, 쉰들러선교회를 결성해 한 개, 두 개 한국으로 향하는 루트를 개발하면서 넓혀갔다. 또, 북경 아버지학교 1기를 수료해 중국에서 새로 개설되는 아버지학교마다 봉사하면서 알게 된 아버지 형제들을 통해 연결되는 탈북자들도 적지 않았다. 2001년에 시작된 사역이 2003년이 되면서 총 100여명을 한국으로 보내는 열매도 맺게 됐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를 수상히 여긴 공안은 탈북자로 위장해 잠입해 들어왔고, 2003년 9월 26일 중국 광동성 동관시에서 탈북자 9명을 한국으로 보내려다 붙잡혀, 중국 형법 제 318조로 5년 형을 선고 받았다.

“처음에는 미국 사람이니까 곧 풀려날 거라고 예상했어요. 거기에 워싱턴 D.C.에 샘 브라운백 상원 위원과 힐러리 클린턴 위원 등 상, 하원에서 후진타오 주석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의 강력한 재스쳐도 있었고요. 그런데 제가 ‘본보기’로 잡힌 거라 중국도 쉽게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4년간 수감돼 가장의 자리를 비운 사이, 남편인 스티브 김 집사를 대신해 사업과 집안을 모두 맡았던 헬렌 김 집사. 그녀는 이 기간 힘듦도 많았지만, 새벽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기간이 됐다고 고백했다.
체포 이후 42시간 걸려 보내진 곳은 연길 감옥. 입소하며 다 뺏기고, 달랑 죄수복 하나 입고 보낸 다음날 아침 그의 머리맡에는 ‘천금 같은’ 성경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탈북자 한 명이 한 사형수의 성경책을 보관하고 있다, 그가 선교사임을 알아보고 살짝 갖다 준 것이다.

비록 미국인이지만, 그의 수감생활은 쉽지 않았다. 6시 기상해, 하루 8시간은 앉아서 38개조를 외워야 했고, 혹여 예배라도 드릴라치면 난리가 났다. 8시간은 인조 꽃 만드는 노동도 해야 했다. 그러나 생 지옥에서 주님을 만났다. 스티브 김 집사는 간수의 눈을 피해 4시에 일어나 새벽제단을 쌓고, 성경을 암송했고, 틈틈이 예배 드리고 전도하는 일에 헌신했다. 장춘 감옥으로 이송될 때, 역시 탈북자 사역으로 잡혀 들어온 최봉일 목사에게 ‘그곳에 가면 루디아를 만날 것’이라는 기도를 받고 파송됐다. 장춘 감옥에서 만난 간수의 영어강사로 드나들며, 아버지학교에서 배운 ‘아내를 사랑하는 20가지 이유’를 적어오라는 숙제에 간수의 아내가 감동해 온 가족이 전도되는 역사도 체험했다. 이후 그 간수는 루디아가 되어 성경 40권을 들여오고, 외부와 통화도 눈감아줬다.

핍박과 고난이 끊이지 않았지만, 아내가 넣어준 250여권의 책과 성경을 보며 매 주일 전할 말씀을 준비했고, 15분, 20분의 짧은 시간이라도 모이면 예배 드리는 ‘전천후 예배꾼’으로 활약하며, 많은 이들을 전도해 파송했다.

강제노동으로 점수를 쌓아 1년을 감형 받아 출소한 이후에도 탈북자를 향한 그의 관심과 애정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중국에서 추방당한 그가 탈북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기도하는 가운데 탈북여성연대 대표를 만나 손잡게 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사역이 바로 ‘318 파트너스’다.

“탈북자 가운데 70%는 여성으로 중국 내에 연고가 없는 탈북자들은 거의 다 인신매매됐어요. 이 여성들이 지금 여러 모습으로 핍박을 당하고, 어떤 사람들은 씨받이로 팔려가는 등 열악한 상황에 있습니다. 318명의 후원자들을 각 도시에서 모아 한 달에 20불씩만 후원하면 한 달에 5-6명을 구출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100불씩 10교회만 후원해주시면 1명의 탈북자를 구출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 3국에 안가를 구축해, 탈출시킨 탈북자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한국으로 가도록 인도하고 있어요. 318 명, 318 교회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현재, ‘318 파트너스’는 시작단계다. 스티브 김 집사는 특히, ‘미주에도 탈북자를 돕는 선교단체가 많지만 보안 때문에 실질적인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318 파트너스’는 탈북자 탈출을 위해 재정을 지원하는 사역이기 때문에, 매달 정확한 회계보고와 결과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버지학교를 통해 가족의 관계가 회복되고, 깊어진 것이 수감생활 가운데 큰 위기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는 스티브, 헬렌 김 부부.
마지막으로 4년의 수감생활 가운데 아내인 헬렌 김 집사와 자녀들은 어떠했는지 물었다. 헬렌 김 집사는 “뭐 원래 제가 사업도 하던 사람이고 해서 별 어려움은 없었는데…”라면서 겸손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녀가 기다린 4년의 세월은 분명 눈물과 수많은 가슴앓이였을 것이다.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던 탈북자 사역을 하다가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랬지만, 두 달이면 풀린다는 미국 영사의 말을 믿고 기다렸죠. 4년 동안 남편이 벌여놓은 사업을 맡고, 빼내보려고 88번 비행기를 탔어요. 면회를 갈 때마다 사역에 쓰라고 책이며, 먹을 것을 보따리 보따리 싸가지고 가서 넣어주기도 했고요. 다행히 아버지학교를 수료하면서 가족과의 관계가 회복됐고, 아들 둘은 장성해서 가정의 위기까지 오진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이 기간 저를 새벽제단으로 불러내셔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져서 감사하죠(웃음).”

스티브 김 집사는 “2001년도 북경 1기로 수료한 아버지학교는 제 인생에 최고의 선택 가운데 하나였어요. 무엇보다 수감 생활 4년 동안 가족을 지켜준 힘이 되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탈북여성 구출사역을 위한 미주 한인교계와 개인의 적극적인 후원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318 파트너스’의 구원의 용사가 되기 원하는 개인이나 교회는 전화 (631) 560-3059, 이메일 318partners@gmail.com, 웹사이트 www.318partners.com(영어), www.318partners.org(한글)로 문의 하면 브로셔 등의 자료를 보내준다. 또한, 탈북자 사역에 관심이 있거나, 평신도 사역에 대한 간증을 원하는 단체나 교회의 경우 간증집회 요청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