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화 시대에 대비한 실무형 인재와 건전한 사회를 이끌어갈 인성을 갖춘 인재양성을 목표로 1995년 설립된 한동대학교는 현재 한국 유수 명문대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16일 트라이밸리장로교회(이명섭 목사)를 찾은 한동대 김영길 총장 사모 김영애 권사의 간증에는 한동대가 하나님 대학으로 서기까지 말 못할 아픔과 눈물의 씨앗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별간증집회에서 김영애 권사(본국 온누리교회)는 "그동안 제가 걸어온 길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매우 험난한 길이었다. 그러나 길목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지켜보면서 그분의 손에 이끌려 길을 떠난 사람은 그 길이 아무리 흑암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가장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영애 권사는 '흑암 중의 보화'라는 제목으로 한동대 설립 초부터 흑암 중에 동행 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차분한 어투로 증거해 나갔다.

김 권사는 "한동대를 시작하기 전에는 흑암을 모르고 살았다"고 말하며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미래가 보장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크리스천 과학자인 남편에게 카이스트 교수직을 그만두고 한동대 총장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정중히 사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도하시는 장로님인 줄 알았는데 어찌 기도도 안하고 거절하느냐'는 말에 마음의 소리를 들은 부부는 "한 통의 전화가 하나님 Calling 인지 인간의 초청인지를 분별하려고 노력했으며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르심과 순종'이라는 주일예배 말씀을 듣고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듯 우리에게 늘 떠나라 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자유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김 권사는 "막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기로 다짐했지만 한동대를 시작하면서 이 길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수 많은 흔들림과 고뇌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순수한 하나님의 대학인 한동대의 출범에 아무런 장애 없는 탄탄대로가 펼쳐지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장애는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아무 건물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200억원의 빚을 안고 시작한 학교에게 ‘가난’과 지역언론의 ‘핍박’이 그것이었다. 특정종교를 표방한 선교사 대학이라는 지역신문들의 보도가 목을 조여왔고 시립대학으로 가라는 압력이 가중되면서 개교는 화려했으나 곧 학교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고 한다.

김 권사는 “수없는 고난이 닥쳐오자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침묵이 가장 큰 위기”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가? 대충 믿을 것을 지나치게 믿는 것이 아닌가라는 신앙의 회의까지 몰려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권사는 힘들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다. 그러나 김영길 장로는 45번의 고소 고발 가운데 한번도 대응을 하지 않았고 지금 그렇게 무섭게 공격하던 이들도 다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김 권사는 이어 한동대 첫 학생을 받은 입학식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김영길 장로는 교육부에 찾아가 학교를 개교하니 상위 25%의 학생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지방대학으로 당연히 미달 될 것이다"라고 관계자가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장로와 김애경 권사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관계자를 다른 곳으로 전근 시키셨다고 말했다. 결국 후임자가 "자신이 있으시면 총장님의 소신대로 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승락을 받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400명 정원에 4000명이상의 학생들이 지원을 해 하나님께서 훌륭한 학생들을 보내주셨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어찌 보면 촌스러울 수 있는 한동대학교라는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대학 설립시 김영길 장로는 ‘창조대학’ 제안했으나 대학관계자 이름에 얽힌 사연 소개했던 것이다.

학교 설립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지역에 공모했고 이사장에게 좋은 이름이 최종 5개가 올라왔다. 그런데 하필 이사장 가장 밑에 있는 촌스러운 한동대학(한국의 동쪽 지혜의 요람)이란 이름 골랐다는 것이다. 학교측은 바로 당선자에게 전화를 하니 아이가 전화를 받았고 부모님은 교회에 기도하러 가셨다고 말했다. 후에 알고 보니 당선자는 개척교회 목사로 교회 돈이 없어 이름 공모하고 하나님께 당선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름부터 하나님의 종이 지으신 대학"이라고 한동대를 소개했다.

김영애 권사는 마지막으로 김영길 장로가 감옥에 간 이야기를 소개했다. 2001년 5월 김영길장로는 학교에 지원된 정부보조금을 임금이 밀린 교직원에게 줬다는 등 5개의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김권사는 하나님께 너무 섭섭해서 삐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지인이 전화를 해 "하나님께서 김장로를 얼마나 신뢰하셨으면 감옥에 까지 가게 하셨을까요"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스승의날, 5대의 버스를 타고 김영길장로가 있는 교도소로 면회를 가기로 했던 버스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29대로 늘어났으며 1800여명이 버스를 나누어 타고 면회를 가게 됐다. 버스에는 "이 시대 이런 스승을 보셨습니까" 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교도소 앞에서 학생들은 스승의 은혜'를 계속 불렀다. 모든 학생들이 눈물이 범벅이 되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언론은 충격을 받았고 한다. 그날 저녁 신문에 '총장 물러가라'하는 요즘 시대에 총장이 부정했다면 학생들이 먼저 알 것이라며 이 재판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한동대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각계각층에서 후원이 더해서 총 46억원의 후원기금이 모여 졌고 김영길 장로는 결국 무죄로 석방됐다.

그는 또 어느날 김영길장로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어 줬던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학생이 김 총장을 따라와 쪽지를 줬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총장님 빨간 티셔츠를 입으니 20살은 젊어 보이십니다. 총장님이 쓰다듬어 주신 머리로 주님을 위해서 쓰겠습니다" 라는 이 학생의 고백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우리들의 자녀들이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느냐”라고 질문하며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이 되길 원한다는 대답이 나와야 한다.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이민생활 가운데 작은 일에 속상해 하지 말고 너그럽고 관대한 주님의 마음을 자녀와 남편과 아내와 목사님을 세워져서 이 땅에 여러분을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우리가 되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