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는 ‘다크나이트’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어느 정도 흥행을 예상은 했지만 그 흥행이 타이타닉의 아성을 흔들 정도라면 그야말로 이변에 가까운 흥행성적이다. 그리고 그 대이변의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배트맨이 아닌 최악의 악당 조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8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히스 레져가 자신의 생을 불태우며 연기한 조커, 이 악당에게는 매우 특별한 점이 있다.

조커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저지르는 범죄의 목적이다. 그 범죄의 목적은 조커의 살해 대상과 방식을 조심스럽게 파헤치면 드러나기 시작한다. 조커의 살해 대상은 경찰청장, 판사, 검사, 고담시 시장 등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들이다. 조커는 이들을 상식 밖의 장소와 방법으로 살해해 나감으로 고담시를 일대 혼란에 빠뜨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조커는 굳이 애를 써가며 몇 가지 공통된 상황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살인자들은 막대한 돈이나 성적 불만, 명예를 얻기 위한 살인범죄자들이었다. 그러나 조커는 산더미처럼 쌓인 달러에 불을 댕기며 “난 다른 악당과는 달라”라고 차별성을 선언한다. 그리고 다른 악당들도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과 같아지길 강요한다.

왜 조커는 살인을 하는데 굳이 공통된 상황을 연출해야만 했을까? 조커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화상으로 얼굴 반쪽이 문드러진 하비 검사에게 답한다. “아무리 큰 사건이 일어나도 그것이 예상 가능한 장소,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면 그건 사람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지 못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만이 사람들을 혼란속에 빠뜨리지.” 혼란이 조커가 진정 바라는 상황이라면 왜 혼란 속에 사람들을 빠뜨리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조커가 연출해 낸 살인극 유형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조커의 살인극 유형의 공식은 명확하다. 첫번째,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람들을 이용해 살인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경찰청장은 경찰서 안에서 살해당했고, 고담시 시장은 경찰들과 호위대의 삼엄한 경호 안에서 살해 직전의 위협을 받았고, 마피아 소송을 맡은 판사와 하비던트의 연인 레이첼 검사는 동료 경찰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선박을 타고 고담시로부터 대피하려는 사람들은 도강하는 도중 살해 위협에 직면한다. 조커는 사람들로부터 ‘어느 곳 하나 안전한 곳이 없다’며 불안함을 극도로 자극한다. 이때 경찰, 시민들의 반응은 이성적인 판단의 정지다. 그들은 일대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 불안에 떨며 분노와 살인 충동질을 받는다.

이러한 혼란, 분노, 살인 충동질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갈 때쯤 조커는 곧바로 두번째 상황을 연출해 나간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죽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딜레마다. 하비던트 검사와 레이첼 검사는 연인 관계다. 하지만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비극적 딜레마에 빠진다. 선박을 통해 고담시를 탈출하려는 비범죄자와 범죄자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조커는 무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살인을 하도록 조장을 하고 설사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이 죄책감의 파괴력 범위와 정도는 대단하다. 조커는 철저히 공식화된 계획 안에서 고담시의 백기사라 불리는 하비 검사를 파괴시킨다.

고담시의 열혈검사 하비는 고담시의 마피아와 그 마피아에 협조하는 검찰·경찰 세력들을 뿌리뽑으려 하는 선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배트맨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배트맨의 누명을 쓰는 정의의 사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인 레이첼 검사가 마피아에 매수된 경찰들에 의해 죽음의 상황에 내몰리고 자신이 살아남는 대신 레이첼이 죽임을 당하자 자신을 향한 죄책감과 외부-마피아에 매수된 경찰, 레이첼을 먼저 구출하지 않은 배트맨, 마피아에 매수된 경찰들을 색출하지 못한 고든 경찰청장-를 향해 끓어넘치는 분노로 악에 감염된다. 결국 하비 검사는 레이첼을 죽임으로 몰고간 장본인들을 하나하나 살해해 나가며 결국에는 또 하나의 조커가 되어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희대의 살인마였지만 조커는 영리했다. 한 사람을 파괴하기 위해서 육체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 이 둘 중 어느 것을 파괴시켜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커는 선을 지향하고 악에 대항하는 영혼의 무한한 가치와, 이를 파괴하는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굳이 어려운 상황극을 연출해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분노와 두려움, 살인 충동에 시달리게 만들어 결국 다른 사람들을 살인하게 만드는 길로 인도한 것이다. 이렇듯 히스레져의 조커가 지금까지의 모든 범죄자들과 차별화된 점은 지금까지의 범죄자는 단순히 사람들의 육체를 죽이려 했다면 조커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죽이려 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려는 조커 같은 악당이 더욱더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조커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육체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가치로운지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확립이 있을 때만이 우리 영혼을 파괴하려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다가오는 조커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