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정성껏 벼 종자를 골라서 잘 준비된 모판에 뿌린다. 몇 주일이 지나면 푸른 새싹이 앞을 다투며 물위로 올라온다. 올라오는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모판을 완전히 푸르게 덮는다 그때는 앞뒤 양 옆 뻗어나갈 틈이 없고 또 숨쉴 자리도 없이 된다.

그때 농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모를 뽑는다. 모 뿌리에 붙어있는 흙을 인정 사정 없이 흰 뿌리가 보이도록 털어낸다. 뽑혀진 모는 소나 기계에 실려 다른 논으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모는 사람의 손으로 또는 기계에 의해 5~ 6가지씩 찢겨져 새 땅에 심겨진다.

그 때부터 모는 심하게 앓키 시작한다. 그 아픔은 외형으로 도 알 수 있는데 그 씽씽하던 푸른 색깔은 간데없고 점점 노랑색으로, 또는 죽어가는 누런색으로 바뀌어간다. 어떤 모는 채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뽑혀서 바람에 밀려 한쪽 구석에서 말라 죽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는 몇 주간의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낸다. 다 말라빠졌던 모에서 파란색이 감돌기 시작한다.

시간을 다투며 옛 푸른 색깔을 되 찾는다. 농부는 두 손을 번쩍 하늘로 쳐 들고 환송을 지른다." 와! 이제는 살았구나" 라며 그때 농부는 시련을 이긴 모를 위해 전력을 쏟아 붓는다. 김을 매고 거름을 준다. 이제부터는 모가 아니고 벼다. 앞뒤 양 옆으로 가지를 뻗치고 넓히며 또 위로 올라간다. 힘껏 자란 벼에는 꽃이 피고 수 십배, 수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그동안 애간장 태우며 되 살아나는 기적을 기다린 농부는 이제 황금 물결치는, 고개 숙인 벼를 보며 행복에 젖는다. 이 원리는 한 포기의 꽃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심거나 또 한 그루의 나무를 다른 땅으로 이식 했을 때도 비슷하다. 새 땅에 적응 하기 위한 심한 통증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이기고 새로운 땅에 잘 적응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어내며 또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한 예를 들어보자. 성경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을 뽑아 보라면 예수님외에 아브라함을 들 수 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그는 선민의 조상이 되어 그의 믿음을 본받아 예수안에서 그가 받았던 만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은 생각해 본다. 왜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처음으로 시킨 일이 이민일까? 하는 것이다.

다음 물음은 "이민을 시킬 때에 너무 가혹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생을 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즉 고향을 떠날 때에 부모 형제 친척과 같이 가지 말고 오직 혼자 가라는 것이다 .더욱 어디를 가는지 목적지도 모르고 무조건 떠나라는 것이다. 후일에 한 성경저자는 그 상황 설명을 하면서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예측 한대로 아브라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다. 조카와의 재산싸움, 조카의 피랍과 되찾아오는 전쟁, 가족간의 갈등, 원주민들에게 아내를 빼았기는 사건, 나아가서는 자기 손으로 100살에 낳은 외아들의 목을 갈로 베어야 할 상황 왜 하나님은 그런 잔인한 시련을 겪게 하셨을까.

오랜 훗날에 좋은 대답을 듣게 된다. 쓰리고 쓰라린 이민생활을 겪으면서 아브라함은 조용한 고향에서는 배우거나 체험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고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신앙 안에서 해결 할 수 있는 열쇠를 후손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손자, 증손자, 그리고 그 후손들까지 고향을 떠나 이민자가되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증손자는 소년 때 고향의 부모 형제 친척을 떠나 멀리 외국에 노예로 팔려 강제로 이민을 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출세를 해서 총리까지 이르렀다. 이스라엘 역사는 이민의 역사다. 오늘도 그 민족은 이민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이민을 통하여 많은 시련을 겪고 있으나 그 와중에서 강한 정신력과 신앙을 연단시켜 세계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사는 미국은 처음부터 이민으로 시작된 나라다. 먼저 온 사람들이 눈물의 수고로 세계적인 강국을 건설하고 부요한 나라를 만들었다. 우리는 좀 늦게 동참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에 뿌리를 내리는데 전력을 쏟아야 할 뿐이다. 그래야 꽃도 피우고 열대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에게 비록 말 할 수 없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희망찬 미래를 위한 피치 못할 대가를 지출한다고 생각하면 능히 감당할만하다. 한 송이의 국화를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울었다는 한 시인의 말처럼 새로운 낯선 곳에서 큰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현재의 아픔은 너무도 당연하다. 오늘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어깨를 펴고 두 손을 불끈 쥐고 힘 차게 문을 나서는 이민자 머리 위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선명하게 높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