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욕망의 차이를 아십니까 ? 욕망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목표와 목적이 자기 자신을 위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래의 계획과 목표를 가졌다고 해서 비전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비전은 적어도 초점이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욕망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루어 진다고 해도 그 후는 아픔과 상처뿐이고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그러나 비전은 ‘하나 됨’을 이루어가며 회복을 함께 나눕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비전은 인간적으로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비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신뢰하는 믿음에서 이루어 집니다.

요즘 가는 곳마다 탄식이 강을 이룹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상황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 한국을 걱정하는 날 보고 혹자는 미국이 더 심각한데 왜 지금 한국을 걱정하고 있느냐고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정권도 바뀌고 경제 대통령이 세워졌으니 뭔가 달라질 거란 기대감이 높다고 합니다. 그를 찍었던 안 찍었던 좋아질 거란 기대감이 80%를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도 올 11월 대선이 끝나면 좋아질거라 합니다. 과연 통치자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좋아 질까요? 물론 전혀 영향이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통치자와 함께 백성들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치자가 바뀌어도 그 근간인 백성이 달라지지 않으면 상황이 더 좋아지는 것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다윗 왕이 가장 찬란한 왕조를 이루고 국가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의 왕국에 근간이 되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에 실패하고, 사람에 상처입고, 정권에 소외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윗이 사울과 블레셋에 쫓겨 광야 아둘람 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듭니다. 거기 모인 상처투성이 400명은 위대한 역사의 이스라엘을 만들어 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동굴 속에서 다윗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험난한 삶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하는지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오합지졸 상처 입은 군중으로 모였지만‘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새벽을 깨우겠다’는 다윗의 비전 앞에 하나가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400여 군중은 이제 더 이상 군중이 아니라 하나의 비전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 곳에 모인 군중 개개인이 자신의 상처와 실의, 빈궁함에 빠져 매몰되어 있었다면 그들은 그들 스스로도 일어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새벽을 깨우자’는 그 비전 앞에 고난도 낙심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조를 만들어 내었고 자신들의 삶도 부흥의 역사를 맛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교회의 부흥이나 개인의 부흥, 국가의 부흥은 누구 한 사람에 의해서 성취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부흥이라 할 찌라도 비전공동체 속에서 이루어 집니다.
올 한해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자신의 영광을 위해 심어 주신 비전이 있습니다. 이 비전을 붙들고 함께 나아가기로 작정합시다. 그것이 조금 어려워 보이고, 힘들어 보인다고 할 찌라도 함께 하기로 작정하면 그럴 때 우리 교회 뿐 아니라 여러분의 개인의 삶에도 진정한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글/손기성 목사, 은혜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