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로마서 13장 10절
오늘날 가장 큰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 중에 “자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전염병처럼 자살이라는 행위가 퍼져 많은 사람을 슬픔에 빠뜨리고는 하죠. 누군가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이유로는 외로움, 절망감, 우울감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남기는 편지를 보면 거의 다 “이제 그만 편해지고 싶어요…”라는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물론, 각자의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삶이라는 것이 살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죠.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자살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 “어려운 상황을 마주한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선택”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자살이라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우리가 구분하면 좋겠습니다. “자살은 죄다”라는 분명한 사실과,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라는 사실은 구분하자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이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 왕은 지옥에 갔을까요, 아니면 천국에 갔을까요? 많은 사람이 사울 왕은 자살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어서 이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살과 살인 중에 어떤 죄가 더 나쁜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살인 아닐까요? 왜냐하면 자살은 자기 생명을 자기 선택으로 끊는 것이지만, 살인은 자신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빼앗기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 왕 중에는 누가 더 추악한 죄를 지었습니까? 사울 왕은 자살했지만, 다윗 왕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적어도 사울 왕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이지도 않았고, 부하의 아내를 강간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두 가지 악독한 죄를 전부 다 저질렀죠.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다윗은 천국에 갔을까요? 여전히 사울은 지옥에 갔다고 생각하시나요?
언젠가 이런 질문을 하는 신학생에게 한 교수님이 우문현답(愚問賢答)으로 아주 좋은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 교수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그런데, .꼭 지옥에 보내야만 하겠어요…?” 저 또한 사울이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단지 제가 아는 것은, 율법의 정신이 사랑이며, 율법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의 딸이 자살했는데, 꼭 그 자리에 가서 “자살했으니, 천국에 가지 못한다”라는 소리를 해야겠습니까? “자살했으니 장례 예배를 드려 주지 못하겠다”라고 해야 할까요? 자살한 사람의 장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자살한 사람을 위해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황망한 마음을 가지고 슬퍼하는 가족들과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함께 예배드리는 거죠. 또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를 선용하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서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서, 또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자살이 죄다, 아니다”를 증명해 내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물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살이 죄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주권과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가르쳐 줘야 하죠. 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 때문에 가족들이 황망해하는 중에 그러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절대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가령, 어느 날 사랑하는 딸이 임신해 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그 전에는 교육하고, 가르치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그 딸을 내어 쫓는 것이 정답일까요? 너는 이제 내 딸이 아니라고 쫓아내거나 방에 가두는 것이 계명을 주신 이유일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생각할 때는 항상 예수님의 마음으로 계명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며(롬 13:10),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은 이웃을 살리고, 사랑하고, 세우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죄냐 아니냐를 가지고 다투는 일을 멈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옳으냐를 증명하는 신앙생활은 이미 바리새인들이 실패했던 신앙생활의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러한 죄로 인해서 멸망 받을 뻔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해서, 우리 각 공동체에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자들이 없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