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정부는 2018년부터 이른바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를 금지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여기서 전환 치료는 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바꾸거나 억제하려는 시도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다.
최근에는 노동당 정부가 '전환 치료 금지 법안 초안'(Draft Conversion Practices Ban Bill)을 공개하며 입법 절차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BBC에 따르면, 이전 정부에서도 입법이 추진됐지만 트랜스젠더를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할 것인지와 부모·교사·상담사 등 아동을 돌보는 이들에게 미칠 영향 등을 둘러싼 논란으로 무산됐다.
이번 법안이 통과될 경우 그 적용 지역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한정된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관련 입법 권한을 각각 보유하고 있어 별도의 절차를 밟게 된다.
법안 초안은 전환 행위를 다른 사람이 성적 지향이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지게 하거나 가지지 않게 하려는 행위' 또는 '가지고 있다고 믿게 하거나 가지지 않는다고 믿게 하려는 행위'로 정의한다. 특히 경제적 압박과 심리적·정서적 압박을 이용한 학대적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명시했으며, 유죄가 인정될 경우 벌금이나 최대 5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법안 해설서를 통해 폭행이나 강제력 등 신체적 폭력은 이미 현행법으로 처벌되고 있으며, 이번 법안은 지금까지 처벌하기 어려웠던 언어적·비폭력적 학대 행위를 규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법안은 종교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명시했다.
그러나 기독교 단체 리빙아웃의 사역 책임자인 에드 쇼 목사는 그 법안의 핵심 개념인 '정서적·심리적 압박'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 역시 '성적 지향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식의 전환 치료는 분명히 반대하지만, 그 법안은 오히려 성과 신앙에 관한 진지한 목회 상담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법안이 통과되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자체를 주저하게 될 것"이라며 "상대방이 훗날 그 대화를 전환 치료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비슷한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도 도움을 제공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일조차 망설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최대 복음주의 연합체인 복음주의연맹(Evangelical Alliance, EA)도 비슷한 우려를 제기했다. EA의 공공정책 책임자 대니 웹스터는 "학대는 이미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면서도 "법에 보완이 필요하다면 조항은 매우 명확하고 제한적으로 작성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현의 자유는 물론 교회와 가정에서 이뤄지는 일상적인 대화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웹스터는 특히 부모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자녀가 자신의 성별이나 젠더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부모가 이에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것조차 정서적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안은 의료인이 진료 과정에서 수행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지만,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전문적 기준에 현저히 미달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료인협회(Christian Medical Fellowship, CMF)는 이 조항 역시 충분한 보호 장치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CMF의 공공정책 담당자 리처드 이브스는 "영국 공공의료체계(NHS)에서 일하는 의료인은 기존 전문지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법안의 예외 규정이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기독교상담및관련전문직협회(Association of Christians in Counselling and Linked Professions, ACC)는 다른 견해를 보였다. ACC 이사회 의장 수 몬치턴-리켓은 "상담사의 역할은 내담자를 특정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법안이 상담 윤리 원칙과 대체로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미국에서도 전환 치료를 둘러싼 법적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 3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차일스 대 살라자르'(Chiles v. Salazar) 사건에서 8대1로 "콜로라도주의 미성년자 대상 전환 치료 금지법을 기독교 상담사의 대화 중심 상담(talk therapy)에 적용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하급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신체적·강압적 전환 치료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상담 대화에 대한 국가 규제는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더욱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법안이 앞으로 상·하원 합동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수정·보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복음주의연맹도 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법안이 교회와 목회 상담, 종교의 자유에 미칠 영향을 적극 제기할 계획이다.
쇼 목사는 "이 법안은 진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성과 젠더에 대해 성인들이 안전하게 대화하기 어려웠던 시대로 사회를 되돌릴 위험이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퇴행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