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 신학대학원 구약 조교수 및 현장학습 디렉터 방승호 교수
(Photo : ) 센트럴 신학대학원 구약 조교수 및 현장학습 디렉터 방승호 교수

신앙의 여정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삶은 우리가 기대한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믿음 또한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한때 확실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흔들리기도 하고, 우리가 의지하던 계획과 능력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신앙의 실패라기보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깊은 질문을 드러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공동체였습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되었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 모세가 예상보다 오래 산에 머무르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였지만, 그들의 내면에서는 불안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라고 기록합니다(출 32:1). 이 짧은 표현은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기다림 속에서 방향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불확실성은 불안으로 이어졌고, 그 불안은 행동을 촉발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라는 요청이 바로 그 결과였습니다(출 32:1).

금송아지 사건은 단순한 우상숭배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불확실함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려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눈에 보이고 통제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려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을 통해 안정감을 확보하려 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의 신뢰 부족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시내산은 여전히 구름으로 덮여 있었습니다(참조: 출 24:15–18). 하나님의 임재의 징표는 여전히 나타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마치 하나님이 떠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는 신앙의 현실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삶이 불확실해질 때 비슷한 선택을 합니다. 우리는 더 확실해 보이는 것들, 더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의지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계획, 재정, 익숙한 방식, 혹은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궁극적인 신뢰의 대상이 될 때 문제는 시작됩니다.

더 나아가, 삶이 안정적으로 느껴질 때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삶이 순조로울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덜 의식하게 되고, 점점 더 자기 의존적인 태도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불확실함과 안정됨이라는 서로 다른 상황이 동일한 결과—하나님 대신 자신을 의지하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송아지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을까요? 핵심은 단순하지만 깊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자리 곁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반면 백성들은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불안이 커졌습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 곁에 머무르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시간이 아니라, 신뢰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점점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오늘날 우리는 빠른 결과와 즉각적인 확실성을 요구하는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해서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기보다,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도록 초대하십니다. 불확실함은 제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훈련하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금송아지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실패가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불확실한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붙들 것인가? 눈에 보이는 확실함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인가?

신앙은 언제나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결정들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선택 앞에 서 있습니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 곁에 머무르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길을 잃지 않았으며, 소망 없이 버려진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앞길이 분명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 임재만으로 충분합니다.

*이 원고의 내용은 전적으로 저자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