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 폴라 화이트 목사 주선해
金, "교계 도움과 자신 요청" 실토
방미 전 여의도순복음교회 찾아
'정교분리'를 강조해 온 현 정부의 김민석 국무총리가 미국과의 외교 현장에서 종교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김민석 총리는 미국 방문 중인 3월 13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Donald Trump)과 20여 분간 만나 미·북 대화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예정에 없던 이 만남은 백악관 신앙사무소(Faith Office) 고문이자 트럼프의 '영적 멘토(spiritual advisor)'로 불리는 폴라 화이트 목사(Paula White)가 주선했다고 한다. 김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과 직접 연결된 바로 옆 회의실을 사용하는 화이트 목사의 도움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 있었다.
김 총리는 만남 후 현지 특파원 간담회에서 "거의 1시간 정도 예정했던 약속 시간을 넘겨서 대화를 하던 중, 화이트 목사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일정을 알고 계셨던 것 같고, 중간에 저를 만나게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했는지 몇 번을 이렇게 왔다갔다하면서 회의 상황을 체크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회의가 끝나는 시점에 돌아가서 의사 확인을 하고, 저와의 면담을 성사시켰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총리는 화이트 목사와의 면담이 성사된 배경에 대해서도, 교계의 도움과 자신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언론들은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등 국내 교계 인사들과 화이트 목사의 친분도 거론하고 있다. 이영훈 목사는 3월 초 '한국전 참전용사 한미 추모사업회' 회의 참석 차 워싱턴 D.C.를 방문한 바 있다. 그리고 김 총리는 방미 직전인 지난 3월 11일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 준비기도회에서 축사했다.

▲(왼쪽부터) 김민석 총리가 3월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정교유착'이 '교계 도움'으로 돌변
'정교분리' 내세워 종교 비판해 와
李 "개신교 수사 가능성" 발언도
외교선 기독교 네트워크 적극 활용
교회, 외교 채널? 정교유착 근원?
정교분리, 선택적 적용돼선 안 돼
미국 정치권에서 종교 네트워크, 특히 기독교 복음주의 진영이 정치 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현 미국 지도부인 트럼프 대통령과 J. D. 밴스 부통령 등 주요 인사들은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을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외교 현장에서 이런 종교계 인맥이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외교적 통로를 찾아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김민석 총리뿐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가 이러한 관례를 '정교유착'이라며 강하게 비판해 왔다는 점이다.
당장 김 총리는 방미 직전인 3월 11일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해 "돌아보니 종교라는 이름으로 정치와 잘못 결합되거나 이득을 누리려 했던 사이비의 문제점도 발견되고 확인됐다"며 "정부는 정교분리 원칙 하에서 사이비와 이단 문제, 종교와 정치의 결탁과 유착에 대해 철저하게 바로잡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민석 총리가 3월 11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그가 11일 축사했던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인 이영훈 목사는 대표적 '미국통'인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와 함께 지난해 7월 특검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리고 손현보 목사(부산 세계로교회)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는 이례적으로 구속 수사를 당해, 무려 4개월 이상 부산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한술 더 떠,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신교 수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그는 "정교분리 원칙이 깨지는 이러한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엄정하게 처벌해야 하고, 이번 기회에 법률도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아직 섣부르기는 한데, 슬쩍슬쩍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심하게 제재해야 되지 않을까. 지금은 처벌 강도가 낮은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원래 일부 개신교도 수사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여러 가지 논란, 주장들이 있었는데, 일단 경계가 좀 불분명해서 지금은 놔두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수사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며 "문제는 지금 원래 밭갈이 할 때 큰 돌부터 집어내고, 자갈, 잔돌을 집어내야지, 한꺼번에 하려면 힘들어서 못한다. 일단은 큰 돌부터 집어내고, 나중에는 자갈도 집어내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처럼 집권 이후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를 향해 '정교분리' 카드로 전방위적 압박을 하던 현 정권 인사들이, '종교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모습은 여러 모로 아이러니하다.

▲3월 11일 여의도순복음교회 부활절연합예배 준비기도회에서 김민석 총리가 이영훈 목사와 인사하고 있다.
국내 정치에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종교계 발언이나 활동은 '정교유착'으로 규정해 강하게 비판하거나 심지어 공권력까지 동원해 왔으면서, 정작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거리낌 없이 종교계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면 '외교 채널'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교유착'이 된다면, 일관성 없는 국정 운영일 뿐 아니라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더구나 김 총리의 백악관 폴라 화이트 목사 면담 시점을 감안하면, 불과 3-4일 전 그가 여의도순복음교회을 방문했을 당시 이영훈 목사 등 목회자들과 미국 방문과 관련한 의견을 어떤 식으로든 교환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는 정교분리를 강조해 놓고, 뒤에서는 교계의 협조를 요청한 셈이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계의 정당한 목소리를 '정교유착' 프레임으로 몰아 꺾어보려던 시도는, 이번 사례만으로도 스스로 허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교분리는 특정 종교나 특정 정치 세력을 겨냥해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정치적 구호가 돼선 안 된다. 더구나 '정교분리' 자체가 종교계에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지 말라는 의미도 아니다. '정교분리 원조국' 미국 백악관 내에 김민석 총리가 방문한 곳이 '신앙 사무소'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폴라 화이트 목사를 비롯한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지난 3월 5일(현지시간) 이란과 전쟁 중인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페이스북
실제로 '신앙 사무소' 책임자인 화이트 목사는 백악관에서 김민석 총리를 만난 가운데 손현보 목사 사건에 대해 한국 선거법 구조와 위반 사항 등을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김 총리는 이에 대해 특파원들에게 "美 조야에서는 한국에 종교 탄압이나 보수 정치인, 종교에 대한 차별적 대우가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오해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결론적으로 굉장히 도움이 된 미팅이었다"고 해명해야 했다.
정교분리는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거나 종교활동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교회가 국가 정책을 도덕적·신학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국가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닌, 교회 고유의 예언자적 직무를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정교분리의 의미가 이것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현재 말하는 대로라면, 더 이상 헌법상 원칙을 위반하지 말고 정치권부터 원칙을 지켜 기독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와의 접촉을 철저히 삼가야 할 것이다.
결국 이번 김민석 총리의 미국 방문과 트럼프 접견은 결국 '정교분리'를 외쳐 온 현 집권 세력이, 실제 정치에서는 종교 네트워크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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