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또다시 국가보안법 폐지를 들고 나왔다. 국가보안법 폐지 발의안은 진보진영 집권 시마다 꺼내드는 단골 이슈 중 하나다. 하지만 이 폐지에 반대해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동의 시작 불과 나흘 만에 15만 5천 명을 넘겨 상임위원회 심사 요건을 충족하는 등 국민적 반발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에 무소속 의원까지 범여권 국회의원 31명이 모여 발의했다. 이들은 국보법이 '사상의 자유'을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평화통일과 인권, 국민주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이 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보법은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특별 형법에 속한다. 진보진영, 특히 종북 인사들은 이 법이 남북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줄곧 폐지를 추진해 왔다. 국보법 폐지론자들의 주장에 배경이 된 사건이 있다. 과거 북한 김일성이 '고려 연방제 통일 방안'을 거론할 당시남한에 제시한 조건에 국보법 폐지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은 주한미군 철수, 공산당 활동 합법화와 함께 국보법 폐지를 3대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처럼 북한이 극도로 싫어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한민국의 법체계가 바로 국보법이란 걸 알아야 할 것이다.

국보법은 지난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직후 좌익 공산 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내란과 폭동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국민의 생존과 자유,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북한이 보낸 간첩이나 지령을 받고 반국가활동을 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법이니 북한에겐 눈엣가시 같을 수밖에 없다.

법의 폐기를 주장하는 논리 중에 이 법이 77년 전 만들어진 케케묵은 과거 법이란 것도 있다. 시대정신에 한참 뒤떨어진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사실과 차이가 있다. 국보법은 시대가 변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거나 수정되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 대폭 개정되었다. 변하지 않은 내용이라면 반 국가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자, 이런 단체로부터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특정 행위를 했을 때 처벌한다는 조항뿐이다.

국보법 폐지론자들은 제7조 찬양 고무에 관한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군부독재 시절엔 이 조항을 근거로 정권 비판을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 정부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걸 예상해 이 법의 폐지에 목을 맨 건 아닐 것이다. 공무원의 개인 카톡을 검열하고 청소년의 SNS까지 금지시키겠다고 큰 소리 치는 정당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운운하는 건 누워 침 뱉기다.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며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건 이 법안 발의자가 현 국보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폐지를 위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국보법은 민주화 이후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아예 삭제되거나 단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폭 수정돼 이걸 간첩 행위 등 반국가활동을 하지 않는 한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위헌성 검토를 통해 7조2항, 8조 2항과 4항, 9조 5항 등을 아예 삭제했고, 10조 불고지죄와 관련해서도 그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것으로 인권 침해 요소를 줄였다. 국민의 기본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거나 침해해선 안 된다는 방향성에 맞춰졌다.

그런데도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이유로 반복적으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그럴 때마다 헌재는 합헌 결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건 현 국보법이 판례에 따라 아주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고, 반면에 이 법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북한 김정은을 찬양해도 국보법으로 처벌받을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읽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세상이 됐는데 국보법 폐지 주장에 '표현의 자유' 침해를 갖다 붙이는 건 억지다.

민주당은 최근 '반중 혐오표현 금지법'을 비롯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방송법 개정안' 등 온갖 규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그토록 중시하는 절대 다수당이 발의하는 법안 마다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을 하다 송치된 사람이 최근 5년간 150명이 넘는다. 매년 30명 안팎이고 이중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수집하거나 넘긴 혐의 로 재판에 넘겨진 사람만 15명이다. 국보법이 있어도 이렇게 많은 간첩이 암약하고 있는데 이 법을 폐지하자는 건 홍수가 범람하는데 둑을 허물자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북한이라는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하게 호전적이고 위험한 공산주의 세력과 마주하고 있다. 북한은 안으론 핵무장을 강화하고 밖으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간첩 공작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걸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국가보안법이란 건 국민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이 법을 없애려 안달인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국민의 대표인지, 북한 대변인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법이 없어지면 좋아할 사람은 북한 김정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