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의 항해: 신약 성경의 바다를 항해하다
- 7회: 성경의 양자 역학:
내 지식과 무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평행우주 (6)
오늘은 지난 호에 이어서 우리 한글 성경 번역 역사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 역사에서 최초 번역은 "로스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스역"이라는 이름은 한글로 성경 번역을 주도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중국 선교사 존 로스 (John Ross)의 이름에서 붙여졌다 할 수 있습니다. 로스역은 1882년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라는 이름의 누가복음이 먼저 번역되었고 이어서 요한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등이 번역되었습니다. 로스 선교사는 만주 지방에서 조선인 동역자들과 함께 한글 성경을 번역하였는데, 그때는 조선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도착하기 이전이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로스역 번역에 참여한 조선인들은 주로 평안도 의주 출신이었고 따라서 이때 사용된 한글은 표준어가 아니라 주로 서북 방언으로서 오늘날로 말하자면 평안도 사투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오마니"로 썼습니다. 로스역은 중국어 성경을 대상으로 번역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호칭을 "상제"나 "신"으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사용했다는 점, 성경 본문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옮기기보다 한국어 관용표현에 맞게 번역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로스역이 평안도 방언 중심 문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최초 한글 성경으로 공인 받지는 못합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 한글 성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학창 시절 우리 근대 역사를 공부하면서 "신사 유람단"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신사 유람단은 1881년 고종이 일본의 근대 문물을 비밀리에 시찰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한 조사단입니다. 19세기 개화파 지식인이었던 이수정은 이때 신사 유람단 일원으로 일본에 갔고, 이후 일본의 농학자였던 츠다센의 영향을 받고 1883년 침례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미국 성서공회 일본지부의 권유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해서 1884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을 국한문 병용으로 번역했고, 이어 1885년 마가복음 단독본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출간했습니다.
로스역이 한글만 사용했던 것에 반해 이수정의 번역본은 국한문 병행체로 당시 지식인층에 접근이 용이하게 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수정의 번역 역시 조선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도착하기 전이었고, 조선의 최초 개신교 선교사였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이수정이 번역했던 성경을 조선에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수정이 번역했던 성경도 최초 한글 성경으로 공인 받지 못하는데 이는 한글이 아니라 국한문 병행체로서 한문 위에 한글 언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880년대 로스역과 이수정의 번역본을 참고해서 1890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의 선교사들이 성경의 원어인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기반으로 한글 성경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서 1900년 신약 임시본과 1904년 신약 공인역이 나왔고, 이어 최종적으로 1906년 "신약젼서"가 완성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4년 후인 1910년 번역이 완료되었고 1911년에 신구약 성경 합본인 "성경젼서"가 출간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대대적인 개정이 이루어졌고 1938년 "성경개역"이 출간되었습니다. 그 후에 한글 맞춤법 통일에 따라 1952년, 1956년에 수정되었고 1961년에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이 나왔습니다. 1977년에 공동번역, 1993년 개역개정과 새번역이 완성되기도 하였습니다.
성경 번역의 역사를 통해 성경 번역은 단순히 언어의 번역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즉, 교리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이라는 명칭과 방언 사용의 한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어 성경이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기록된 성경이었다는 점도 생각해 볼만합니다. 즉, 구한말 지식인들은 한글이 아니라 한문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일반 대중 80% 이상은 한문은 고사하고 한글도 읽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초기 한국 개신교가 주로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한문으로 성경을 번역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식인들, 즉 이른바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기 한국 개신교는 비록 속도는 느리고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일반 대중이 비교적 쉽게 배우고 읽을 수 있는 한글 성경을 선택하였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한국 교회가 돌아보아야 할 점이 아닌가 합니다.
- 달라스 생명샘 교회 안광문 목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