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나는 유대인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에 관심이 많다. 그는 20세기 문학의 흐름을 바꾼 작가이자, 인간의 ‘불안-죄책-소외’를 가장 날카롭게 포착한 인물이다. 카프카는 유대교적 배경을 가진 종교적 작가이지만, 우리와 같은 기독교 신앙인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없는 인간이 얼마나 불안해질 수 있는지를 끝까지 정직하게 보여준 증인이지만, 그 대안인 하나님과 복음을 제시하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쉬움을 남긴 작가였다.

[2] 그가 40세였을 당시 한 소녀에게 행했던 행동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여기 소개한다.
어느 날 카프카는 베를린의 한 공원을 산책하다가, 가장 아끼던 인형을 잃어버려 울고 있는 한 어린 소녀를 만났다. 카프카는 소녀와 함께 인형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는 소녀에게 다음 날 다시 만나 함께 인형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다음 날에도 인형은 나타나지 않았다.

[3] 그때 카프카는 소녀에게 인형이 쓴 것처럼 꾸민 한 통의 ‘편지’를 건넸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울지 말아줘. 나는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단다. 나의 모험에 대해 계속 편지를 쓸게.”
그날 이후, 카프카의 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카프카가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인형의 편지를 읽었다.

[4] 그 편지들에는 여행 이야기와 대화들이 담겨 있었고, 소녀는 그것들을 무척 사랑했다.
마침내 어느 날, 카프카는 새로 산 인형 하나를 가져와 ‘베를린으로 돌아온 인형’이라며 소녀에게 건넸다.
그러자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내가 잃어버린 인형이 아니에요.”

[5] 그때 카프카는 또 하나의 편지를 내밀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행은 나를 변화시켰단다.”
소녀는 그 말을 믿고 새 인형을 꼭 안은 채,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1년 후, 카프카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여러 해가 흐른 뒤, 어른이 된 그 소녀는 인형 안에서 한 통의 작은 편지를 발견했다.

[6] 그 편지에는 카프카의 서명이 있었고, 이렇게 적혀 있었다.
“Everything you love is likely to be lost, but in the end, love will return in a different way.”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아마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결국,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7]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카프카는 편지를 통해 상실을 견디게 했지만, 하나님은 편지가 아니라 아들을 직접 보내셨다.
카프카는 “사랑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말했지만, 복음은 이렇게 선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인형만이 아니다.

[8] 우리는 관계를 잃고, 건강을 잃고, 젊음을 잃고, 때로는 소망과 믿음마저 잃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덤 앞에서 울던 막달라 마리아처럼, “내가 사랑하던 그분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다”라고 말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울지 말라”(요 20:13).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9] 복음의 회복은 동일한 모습의 반환이 아니라 더 영광스러운 변형이다. 십자가에서 잃은 예수님은 부활의 몸으로 다시 돌아오셨다.상실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새 일을 위한 발판이 된다.
카프카는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아쉽게도 그 자신은 끝내 절대자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10]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랑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우리가 잠시 잃은 것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서 새롭게 되어 다시 돌아올 믿을 수 없는 은혜였다.”

[11]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을 잃었는가? 평생 모은 재산을 잃었는가? 출세 성공에 기틀이 되는 인간관계를 잃었는가? 하지만 낙심하지 말라.
사랑하는 것을 잃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그분은 말씀하신다. “사랑은 반드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상상할 수 없이 축복된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