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미국 텍사스 주 의원들이 모든 공립학교 교실에 십계명을 다시 게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이는 곧바로 전국적인 관심과 동시에 법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지지자들은 이것이 미국이 세워질 때 기반이 되었던 도덕적 토대로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반대자들은 즉시 연방 법원에 달려가 이를 중단시키려 하고 있다. 단순한 도덕적 선언이었어야 할 일이 이제는 영적 대결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2] 이 법안은 모든 교실에 십계명 포스터를 의무적으로 게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도덕적 붕괴는 성경이 공적 영역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촉발되었다고 믿는 많은 기독교 가정들은 이를 열렬히 환영했다. 하지만 활동가 단체들은 “정교분리 위반”이라 주장하며 신속하게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법원이 집행을 막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명확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3] 텍사스는 하나님을 교실에 다시 모시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 문화는 하나님을 쫓아내고 맘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상황의 모순을 지적한다. 학교가 프라이드 깃발, 정치적 구호, 이념 중심의 포스터를 자유롭게 게시하면서도, 성경적 도덕 법전은 ‘헌법 위기’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립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적대’라고 그들은 말한다.
[4] 십계명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도덕의 닻’이다. “거짓말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간음하지 말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이 소중한 가치가 어째서 정치적 구호란 말인가?
그럼에도 오늘날의 분위기에서는 이런 가장 기본적인 진리조차 “위험하다”고 낙인찍힌다.
텍사스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미국이 직면한 더 깊은 질문을 드러낸다.
[5] ‘우리는 이 나라를 세운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와 도덕 질서를 조롱하는 문화에 아이들을 맡길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십계명 하나로 소송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반드시 성경적 가치관이 미국을 다시 회복시켜야 하는 이유임을 잘 보여준다.
[6] 텍사스가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성경적인 진리를 거스리려는 악한 영과 싸우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어떤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 임시의장을 맡은 이승만 박사가 회의 시작 전, 당시 의원이었던 이윤영 목사에게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부탁해서 실시한 적이 있다.
[7]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국회는 ‘동성애차별금지법 제정’과 ‘임신중지 약물(낙태약) 허용’은 물론 ‘수술뿐 아니라 약물에 의한 낙태도 가능케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을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인 다툼 사안으로 봐서는 안 된다. 정치 색깔이 다르다고 이런 사안들조차 두 패로 나누어진다면 대한민국은 소망이 없다. 이 모든 일 배후에는 사단 마귀의 역사가 존재함을 놓쳐선 안 된다.
[8] 우리나라도 학교에서 성경을 읽게 하고 기도 모임을 갖게 하고 십계명을 학급마다 적어서 붙여놓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교분리’는 국가가 성경대로 공의를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때에 국한해서 하는 말이다. 정교분리는 ‘성경적 가치에 기초한 공의와 정의를 배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잘못된 일을 하거나 악한 일을 행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용기 있게 외치고 경고해야 한다.
[9]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 세대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성경을 공적 영역에서 밀어내려는 흐름에 침묵한다면, 결국 그 빈자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치들이 채워지게 된다. 사회가 흔들리는 이유는 성경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교회가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이 나라의 올바른 영적 토대를 위해, 그 어떤 법보다 먼저 하나님의 진리가 이 땅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10] 정치가 아니라 '영적 전쟁'임을 놓치지 말라.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사단의 속임수와 싸우는 것이다(엡 6:12). 그렇기에 교회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시며, 그분의 말씀은 어느 시대에서도 꺾인 적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행동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고 진리를 지키려는 작은 순종이다.
“주의 말씀이 주의 종에게 비추어 주시는 빛이라”(시 119:130)
[11] 말씀이 다시 빛을 비출 때,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이다.
'십자가의 진리 위에 다시 대한민국을 세우는 것' 말이다.
그 길이 비록 좁아 보일지라도, 그 길이 생명의 길이며 다음 세대가 걸어갈 유일한 소망의 길임을 반드시 기억하고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