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R.C 스프로울의 기고글인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What was the cause of the Protestant Reformation?)를 2일 게재했다.
R.C. 스프로울은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설립자이자, 플로리다주 샌퍼드에 위치한 세인트 앤드류스 채플(Saint Andrew's Chapel)의 첫 번째 설교 및 교육 사역 목사, 리포메이션 성경대학(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 총장, 그리고 테이블톡(Tabletalk) 매거진의 편집 주간으로 활동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종교개혁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교회 역사 속에서 성경적 기독교 신앙이 회복된 최고의 시기, 곧 신앙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문제는 종교개혁 자체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교회 역사상 가장 큰 분열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종교개혁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라고 물을 때, 여기서 '문제(matter)'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너한테 무슨 일이야(What's the matter with you)?"라고 묻는다면, 보통은 뭔가 잘못되었거나 결함이 있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필자가 묻는 것은 "종교개혁의 본질, 곧 그 실질적 요인은 무엇이었는가?"이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물질적 원인(material cause)"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렇게도 물을 수 있다. "16세기에 그토록 큰 결과를 초래한 이 거대한 분열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는가?"
역사학자들은 종교개혁의 원인을 논할 때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을 따른다. 그는 어떤 사건의 형식적 원인(formal cause)과 물질적 원인(material cause)을 구별했다. 형식적 원인이란, 지적·사상적 배경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최종 권위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주제 아래 다루어진다. 반면 물질적 원인, 즉 실제 논쟁의 핵심은 '칭의(justification)' 교리였다. 종교개혁의 입장은 이를 간결한 라틴어 표현 'Sola Fide'(오직 믿음) 로 요약한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솔라'(Five Solas) 가운데 첫 번째이다: ▲Sola Fide (오직 믿음): 칭의는 믿음으로만 주어진다 ▲Sola Gratia (오직 은혜): 구원은 은혜로만 주어진다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신자의 양심을 구속하는 유일한 권위는 성경이다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속한다. 이 중 Sola Fide, 곧 '오직 믿음'이야말로 종교개혁의 중심 주제, 물질적 원인이었다.
개혁자들은 인간의 칭의가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선언했다.이 교리를 이해하려면, 당시 로마 가톨릭이 이해한 '칭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이 논쟁은 결코 "바늘 끝 위에서 천사가 몇 명 설 수 있는가?" 같은 사소한 신학 논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심장을 겨냥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칭의의 본질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설 수 있는가?"
오늘날 '칭의 교리'는 그 중요성이 심각하게 폄하되어 있다. 과거에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방식에 대한 교리적 차이가 교회를 나눌 정도로 중대했지만, 지금은 거의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오늘의 시대는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의 시대다. 사람들은 절대 진리가 없다고 말하며, 다양한 진리관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교리는 우리를 나누어선 안 된다,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사도적 가르침 속에서 올바른 교리에 대한 깊은 우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는 이 점을 잃어버렸고, 우리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매주 교회에 출석하고, 복음을 듣고, 교인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께 헌신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들은 외형상 신자이지만,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지옥의 심판 아래에 있다.
시편 130편 3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묻는다: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신다면, 주여, 누가 서리이까?" 답은 분명하다. 아무도 설 수 없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완전한 의 앞에 심판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의롭지 못한 자는 멸망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이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복음을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개혁 시대 교회는 심판의 날,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공의, 지옥의 실재를 믿었다. 그래서 당시의 중심 질문은 단 하나였다 "나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구원을 '이 세상의 문제 해결'로 생각한다. 나쁜 습관, 중독, 사회적 실패, 심리적 결핍, 인간관계 문제에서 구원받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성경적 구원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핵심 질문은 이렇다: "죄인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죄인은 어떻게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가?" 놀라운 사실은, 로마 가톨릭 교회 역시 '믿음', '은혜', '그리스도'를 통한 칭의를 믿었다는 것이다. 16세기 당시에도, 지금도 로마 가톨릭은 칭의가 믿음과 은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오직'(alone) 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가톨릭은 '믿음 + 행위', '은혜 + 공로', '그리스도 + 우리의 내재적 의'가 함께 칭의를 이룬다고 보았다. 반면 개혁자들은 "우리의 어떤 행위나 공로도 칭의에 아무 역할이 없다"고 선언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다.
찬송가 작가 어거스터스 톱레이디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 손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아니하고, 주의 십자가만 붙듭니다." 로마 가톨릭은 세례(baptism) 를 칭의의 도구적 원인(instrumental cause)이라 가르친다. 즉, 세례를 통해 '칭의의 은혜'가 영혼에 주입(infusion)된다고 본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단호히 말했다. 칭의의 도구는 세례나 고해(참회)가 아니라 '믿음'이다. 믿음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며,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한다는 것이다.
결론
종교개혁은 단순한 교회 분열이 아니라 "어떻게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수 있는가"라는 신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 대답이 바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