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Photo :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헨리 나우웬은 《열린 손으로》(With Open Hands)라는 책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기도할 때, 두 손을 펴라. 열린 손으로 기도하라.” 그렇다면 열린 손으로 드리는 기도란 어떤 기도일까요?

첫째, 열린 손은 집착을 내려놓는 기도입니다. 두 손을 편다는 것은 움켜진 손을 푸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주먹을 쥔 손으로 기도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움켜쥔 손은 소유하려는 욕심, 지배하려는 의지, 숨기려는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두 손을 편다는 것은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집착을 버리면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그렇게 붙잡았던 것이 얼마나 덧없었는지를 깨닫습니다. 오히려 집착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둘째, 열린 손은 침묵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기도는 구함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멈추어야 합니다. 고요히 침묵하며 묵상할 때, 우리는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열린 손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립니다. 열린 귀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열린 손으로 기도할 때 마음도 열립니다. 침묵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침묵은 말씀이 거하는 집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공간이다.”라고 말합니다.

기도란 당신을 ‘사랑받는 자“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 음성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에 들으셨던 음성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우리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 자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세상과 마귀가 들려주는 거짓된 음성과 유혹 때문입니다. 세상과 마귀는 우리가 사랑받는 자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뭔가를 보여 달라고 유혹했습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권력을 잡으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증거를 보일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체성도 예수님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입니다. 아침 마다 제일 먼저 들어야 할 음성은 바로 이 음성입니다. “너는 나의 사랑 받는 아들이다. 너는 나의 사랑받는 딸이다.”

셋째, 열린 손은 안식 기도입니다. 주먹을 움켜쥐면 긴장하게 됩니다. 무엇인가에 집착하면 긴장이 깊어지고, 때로는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주먹을 움켜쥔 손은 잘못하면 폭력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두 손을 펴면 하나님의 안식 속으로 들어갑니다. 긴장이 완화되고 평안이 임합니다. 저는 어느 날 제가 무척 긴장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두 손을 펴고 힘을 뺀 후에 고요히 호흡하는 것은 복된 영성 훈련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힘이 들어가면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힘을 빼는 데 평생이 걸렸습니다. 아직도 힘을 빼는 중입니다. 힘을 빼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합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잠시 멈추어 안식하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쉼표에 있듯, 삶의 리듬은 쉼에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안식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곳에서 영혼은 회복됩니다.

넷째, 열린 손은 내어 드림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내어 드린 다는 것은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움켜쥔 손으로는 아무 것도 드릴 수 없습니다. 어떤 것도 맡길 수 없습니다. 두 손을 펼 때 우리는 하나님께 무거운 짐을 맡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과 사람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하늘에 쌓아둔 것이 가장 영원합니다(마 6:19-21). 아브라함은 노년에 낳은 아들 이삭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랑은 애착을 넘어 집착이 되었습니다. 집착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노심초사를 낳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다 이삭에 집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순간, 그는 참된 자유를 누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긴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우리가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다섯째 열린 손은 받아들임의 기도입니다. 주먹을 쥔 손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손을 펼 때 하나님은 빈손 위에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풍성한 복을 부어 주십니다. 비움이 있을 때 채움이 있고, 채움이 있을 때 나눔이 있습니다. 비움-채움-나눔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순환의 법칙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받는 것이 주는 것 보다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고, 사랑과 능력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할 때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받는 만큼만 나눌 수 있고, 베풀 수 있습니다. 기도는 받는 만큼 나누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사역의 근원이자 영혼의 보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받아들임은 곧 수용이며, 수용은 순종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그녀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리라 전했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정혼한 처녀가 아들을 잉태하면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상). 마리아는 두 손을 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구속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두 손을 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기도를 드립시다. 그 두 손 위에 하나님은 오늘도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목양실에서 강 준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