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인권정보센터(이하 NKDB)는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 보고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에 대한 초국가적 억압과 착취」를 9월 22일 발간했다. 이날 NKDB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북러 관계 변화와 러시아 파견 북한 노동자 인권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NKDB는 보고서에서 약 1만 5천 명의 북한 출신 노동자들이 러시아에서 열악한 환경 속에 노동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초국가적 억압"으로 규정했다. 또 네덜란드 정부가 제재 준수와 모니터링을 지속하면서 단순 금지보다는 국제 규범 내에서 노동자를 관리하는 정책을 제안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제재 회피와 착취 구조
NKDB 김유니크 조사분석원에 따르면, 2025년 중반 기준 약 1만 5천 명의 북한 출신 인력이 학생 비자(일부는 관광 비자 포함)를 이용해 러시아에서 노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0년 러시아 연방법 개정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무허가 취업이 가능해진 데 따른 결과이며, 북한의 국내 법제화와 맞물려 제재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제이주센터 등 중개 기관들은 제재 회피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중개 수수료와 학교 등록금 등이 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되면서 인권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보고서는 현행 안보 중심 제재가 북한의 해외 노동력 수출 체계를 효과적으로 해체하지 못했고, 오히려 착취 구조를 고착화했다고 지적했다.
강제 노동 실태
세미나 증언자로 나선 전 러시아 파견 노동자 이은평 씨는 북한 131원자력지도국 소속으로 군 복무 중 러시아 건설 현장에 파견된 경험을 밝혔다. 그는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강요받았으며, 외부 접촉과 이동은 철저히 통제됐다고 증언했다. 업무 성과가 부족하면 숙소 복귀조차 제한됐고, 점심시간은 10~20분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며 씻을 물조차 부족했다. 임금의 최대 90%가 공제돼 실제로는 월 200~300달러만 배정됐지만, 직접 사용할 수 없고 장부상 기록으로만 남았다. 생활비가 필요할 경우 소액만 지급돼 사실상 통제 수단으로 이용됐다.
정책 논의와 국제적 시각
NKDB 송한나 센터장이 좌장을 맡은 토론에서는 해외 노동 전면 금지의 실효성과 부작용이 논의됐다. 이광백 국민통일방송 대표는 외부 정보 노출이 인식 변화를 촉진할 수 있지만, 동시에 북한 정권의 자금줄이 될 수 있다며 정교한 보호 장치 마련을 강조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서울사무소 제임스 히난 소장은 북한 해외 노동이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 노동 기준에 부합하며, 일부 사례는 반인도 범죄인 '노예화'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톤 소콜린 Korea Risk Group 데이터 전문 기자는 러시아 기업들의 제재 준수 의지 부족과 현지 감시 체계의 미비를 비판했다.
향후 전망과 정책 제언
보고서는 인권과 안보의 상호 연계성을 고려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며, 러시아 정부, 북한 당국, 현지 기업, 국제사회가 공동 책임을 지는 '원칙적 관여'를 제안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해외 파견 노동자 규모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제재 회피를 통한 외화 획득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강제 노동 구조를 은폐·확대해 이미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의 인권 피해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는 2003년 설립된 북한 인권 전문기관으로, 증언 기반 데이터베이스 구축, 조사·연구, 피해자 심리사회적 지원, 국제 옹호 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UN ECOSOC 특별협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NKDB 홈페이지(https://nkdb.org/researchreport) 및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