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할렐루야대회(9.19–21)는 올해 ‘세대를 잇고 교회 울타리를 넘어’라는 주제의식을 강단 전체에 녹여냈다. 강사로 선 1.5세 목회자 3인은 미국 동·서·남동부에서 현장을 뛰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현실과 예배의 본질, 다음 세대의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성경 본문과 본인의 삶의 이야기로 정면 돌파했다. 메시지의 공통분모는 명확했다. 시험과 광야를 통과하는 동안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 여기’의 교회와 가정에서 찾으시는 한 사람(한 세대)은 누구인가였다.
첫날 김한요 목사(어바인 베델한인교회)는 약 1:1–4를 통해 “시험 후 내게 정말 남는 것”을 점검하게 했고, 둘째 날 마크 최 목사(뉴저지 온누리교회)는 시 63편으로 광야에서도 예배가 기쁨을 회복하는 과정을 증언했다. 마지막 날 이해진 목사(아틀란타 벧엘교회)는 행 13:22·시 89:20을 본문으로 “하나님이 지금도 찾으시는 한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다음은 첫날 김한요 목사의 ‘시험 후 내게 남아 있는 것이 있는가?’에 대한 설교 요약이다.
저는 이민자라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국을 떠날 때 김포에서 출발했고, 그때 친구들이 보내던 부러운 눈빛을 잊지 못한다. 당시 가장 좋은 선물은 파카 볼펜이었고, 노란 메이드 인 USA 연필을 쓰는 일은 마치 특권처럼 느껴졌다. 미국에 와서는 JFK로 입국해 필라델피아로 가던 길에 길을 잃어 할렘가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부터 내가 왜 이 무서운 나라에 왔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민 초기의 두려움을 깊이 겪었다.
야고보서를 읽으며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무난한다는 첫 문장을 보게 된다. 흩어져 있다는 말은 디아스포라를 뜻하고, 곧 이민자다.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 오늘의 우리다. 이 편지는 이민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야고보는 예수의 형제였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다. 사도행전을 보면 교리 문제와 이방 선교의 여러 이슈를 조정하고 결론 내리던 인물이다. 그래서 더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예수와 함께 자랐고 한동안 믿지 않기도 했지만 가장 가까이서 가르침을 듣고 기적을 보았던 그 야고보가 지금의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야고보는 이민자의 삶을 너무 잘 안다. 첫머리부터 여러 가지 시험을 말한다.
이민 초기가 떠올라 마음이 자주 울컥한다. 아버지는 성악가였다. 무대 위에서 턱시도를 입고 노래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침에는 아버지의 발성 연습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하셨다. 그런 집에서 자라다가 부모님을 따라 필라델피아로 이민을 왔고, 내가 처음 출석한 교회는 영생교회였다. 두 분은 한국에서 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는데, 노래 말고는 생업 기술이 마땅치 않았다. 먹고살아야 하기에 봉제공장에서 일을 시작하셨다. 손재주가 늘면 건별 수당을 받지만, 아버지는 평생 시급만 받으셨다. 몇 년을 모아 주변 환경이 좋지 않은 동네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인수했다. 한겨울이었다. 아버지는 새벽 여섯 시에 문을 열고 밤 아홉 시에 닫자고 했다. 나는 아침 여섯 시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은 없다고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열심을 택했다.
퍼서 주는 방식의 가게였고 맛 종류가 백 가지에 달했다. 이름을 다 외울 수 없어 결국 예순 가지 남짓으로 줄였다. 아이스크림은 쇼케이스 온도가 중요하다. 너무 차가우면 퍼지지 않아 손목이 아프고, 조금 따뜻하면 퍽퍽해 남는 게 없다. 겉은 동글고 속은 비게 뜨는 것이 요령이고 그게 이익이었다. 나는 그 일을 제법 잘했다. 그러나 겨울 하루 매상은 스무 달러 남짓이었다. 전기료도 못 댔다. 그러다 신년이 되던 날,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문을 열었다.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은 날이었기에 동네 사람들이 우유와 식빵, 따뜻한 커피를 찾았다. 겨울에도 아이스크림을 파인트나 쿼트 단위로 사 가는 손님이 있었다. 그날 처음 매상이 백 달러를 넘었다. 가족이 함께 모여 밤늦게 가정예배를 드렸다. 백 달러 초과 달성 기념 예배였다. 다섯 식구가 어떻게 우리가 백 달러를 넘겼나 하며 기뻐했다. 그 날의 기쁨은 오래 남았다.
그런 때가 이민자에게 있다. 가게 문 닫고 늦은 수요예배에 나아가거나, 새벽기도에 앉아 있으면 눈물이 그냥 흐른다. 오늘도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이끌어 주셨고, 고난 속에서도 함께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우는 것이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예배당으로 발이 잘 향하지 않는다. 우리 집은 고생스러울 때 가정예배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그러다 손님들이 찾는 것이 많아져 가게가 소매점으로 커졌다. 매상은 이백, 삼백으로 오르더니, 어느새 가정예배는 매일에서 주 삼일, 다시 이틀로 줄었다. 조금만 편해져도 영적인 일은 등한해지기 쉽다는 사실을 배웠다.
야고보는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한다. 위로의 말이 먼저 올 줄 기대했을 것이다. 흩어진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기쁘게 여기라니, 예상 밖이다. 우리는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장벽, 다음 세대 문제를 안고 산다. 1.5세가 교회의 허리가 된 시대다. 설교는 한국어로 듣고 나눔은 영어로 하는 현실이 낯설지 않다.
이민자는 무엇보다 생존이 급하다. 그 다음이 언어 장벽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건너와 사전을 들고 대학을 다녔다. 시험 때마다 위장병이 도졌다. 부모님이 항공권 때문에 전화해 달라고 부탁하면 제일 난감했다. 계정번호를 묻는데 처음에는 숫자를 세라는 말로 알아들어 어리둥절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언어의 장벽은 몸에도 온다. 불면증, 만성 피로, 소화불량 같은 증세가 늘 도사린다. 야고보서를 받던 당시의 신자들은 신앙 때문에 박해까지 받았다. 우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들은 믿음 때문에 자리도 잃고 하고 싶은 일을 접어야 했다.
그런데 야고보는 그 모든 현실을 아는 사람처럼 말한다. 여러 시험을 만나지만 그것을 기쁨으로 계산하라고 한다. 영어역으로는 count it all joy라 한다. 일부만이 아니라 전부다. 이유는 분명하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여기 시련은 도자기를 빚어 가마에 넣어 구운 뒤 쓰임을 허락하는 인정의 과정을 뜻한다. 쓰임 받을 그릇은 반드시 불을 통과한다. 편하고 순탄한 길만으로는 도장이 찍히지 않는다.
세상은 변수가 생기면 운이 없다고 하고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신자는 다르게 계산한다. 이민 와서 더 들들 볶이니 오히려 합격 도장을 빨리 받을 기회로 본다. 한국에 있었다면 겪지 않았을 연단을 통해 하나님 앞에 더 붙들리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사도행전의 바울과 실라는 복음 전하다 감옥에 갇혔다. 그곳에서도 찬양했다. 옥문이 열렸지만 달아나지 않았다. 간수와 죄수들에게 밤새 복음을 전했고, 결국 빌립보 교회가 태어났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신다. 기쁨으로 계산하라는 명령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다.
안경을 처음 썼을 때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력이 안 좋아 칠판 글씨가 흐렸는데, 안경을 쓰는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고난도 그렇다. 어느 날 하나님이 고난의 목적을 보게 하실 때가 온다. 그때는 비로소 아 그래서였구나 하고 보인다. 전우애가 피와 땀을 함께 흘린 자리에서 생기듯, 고난은 동지애를 낳는다.
내가 아내와 결혼을 결심한 데에도 그런 연결이 있었다. 각자 가게에서 권총 강도를 두 번씩 겪었다. 아내는 그 경험 때문에 지금도 바바리코트를 입은 큰 체격의 손님이 들어오면 순간 놀란다. 우리 아버지는 강도가 들었을 때 절대로 일어나지 말고 엎드려 있으라고 당부하셨다. 그 이야기를 나누며 묘한 연대감이 생겼고, 결국 결혼까지 갔다. 돌아보면 그 아픈 경험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 고리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조금씩 보여 주시며 우리를 견디게 하신다.
야고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덧붙인다. 온전하고 구비되어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부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고난이 낳는 효과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역도선수 장미란이 마지막 몇 초를 버티면 금메달을 거는 것과 같다. 관계가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그 몇 초를 버티면 하나님이 새 길을 여신다. 나는 이혼 위기의 성도들과 상담할 때 결정을 미루고 일주일 금식기도를 권한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새로운 형국을 보여 주시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금식도 없이 서두르지 말라고 늘 당부한다.
우리 주님도 앞에 놓인 기쁨을 보시며 십자가를 견디셨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그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다고 기록한다. 우리 구원이라는 기쁨을 바라보셨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성화처럼 가려진 장면이 아니다. 모든 수치가 드러난 자리였다. 그럼에도 주님은 인내하셨다.
C. S. 루이스는 하나님이 우리 집을 두들겨 부수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당황하지만 하나님은 원두막을 헐고 궁전을 짓고 계신다. 작은 방 하나 잃는 것처럼 느껴져도, 사실은 하나님이 함께 거하실 궁전을 세우는 공사다. 시공의 설계도를 믿으면 통증 속에서도 의미가 보인다. 의미가 보이면 버틸 힘이 생긴다. 의미 발견이 인내의 에너지다.
고난은 덤처럼 느껴지지만 은혜와 섭리도 덤으로 따라온다. 이민교회에는 문화와 언어를 가로지르는 DNA가 있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많이 배워도 막상 입이 잘 떨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위급한 순간에도 자연스레 영어 인사가 튀어나온다. 이미 선교적 쓰임을 받도록 훈련된 공동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듬어 준비된 자로 세우신다.
나는 대학생이던 1984년에 뉴욕 할렐루야대회에 참석한 기억이 있다. 장소는 퀸즈칼리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사는 신현균 목사였다. 유머에 깔깔 웃고, 성도들이 꽉 모여 예배드리는 현장 자체가 감격이었다. 그날의 기쁨만으로도 영적 스트레스가 풀렸다. 그로부터 사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강사로 서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나님이 왜 이 전통의 집회를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는지, 왜 지금은 1.5세와 다음 세대를 향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시는지 묻게 된다. 디아스포라 교회를 선교적 목적으로 쓰시기 위해 우리를 지금까지 다듬고 깎아 오셨다고 믿는다. 시험을 기쁨으로 계산하라는 야고보의 권면을 붙들고, 오늘의 고난을 통과해 궁전으로 지어져 가는 길을 끝까지 걸어가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