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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장을 숫자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오늘날 일상에서 흔하게 들린다. 수치와 통계는 어떤 주장을 더욱 신뢰하게 만드는 도구처럼 여겨지며, 명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사람은 더 큰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숫자만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철학자인 무라카미 야스히코는 저서 『객관성의 함정』에서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객관성과 수치화가 지나치게 중시되면서, 오히려 인간 개개인의 생생한 경험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수치는 진실을 가리는 가면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무라카미는 수치나 객관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무조건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개인의 경험이나 맥락이 무시되는 사회의 분위기를 경계한다. 그는 지금의 사회를 "객관화된 사회"라고 부르며, 그 안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객관성과 효율성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시대에 인간의 감정과 이야기, 삶의 복잡한 결은 쉽게 삭제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객관성"이라는 개념 역시 역사 속에서 변해 왔다는 사실이다. 무라카미는 17세기 데카르트의 철학을 인용하며, 당시 'realitas objectiva(객관적 실재)'라는 개념이 오늘날과는 다른 의미였다고 설명한다. 당시의 객관은 오히려 주관적인 내면의 반영, 즉 "마음속에 그려진 실재"를 의미했다. 오늘날 우리가 절대적인 기준처럼 여기는 객관성조차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개념이라는 점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무라카미는 특히 교육, 복지, 돌봄의 영역에서 객관성과 수치화의 논리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오사카 니시나리구의 사례를 예로 든다. 이 지역은 통계와 수치보다는 아동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삶의 상황을 중심에 두고 돌봄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아이의 상태를 숫자가 아닌, 이야기와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접근 방식이다. 

그는 말한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객관성과 수치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개별적인 생생한 경험이 잊히기 쉬워졌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상이한 개별 경험을 그 사람의 시점에서 존중하는 일은, 곤란한 지경에 빠져 틈새로 내몰린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과 같다." 다시 말해, 사람을 숫자로 환산하는 방식이 아닌, 그 존재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객관성의 함정』은 데이터와 통계에 무비판적으로 의존하는 오늘날 사회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숫자는 유용한 도구지만, 결코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결이 있고, 정량화할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목소리보다 숫자를 먼저 믿고 있는가? 그리고 숫자를 따르다 놓쳐온 삶의 이야기들은 무엇이었는가? 무라카미는 그 질문들 앞에서, 우리 각자의 경험과 목소리를 다시 꺼내 들라고 조용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