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의사, 추적하는 형사
낮엔 응급치료, 밤에는 안락사
안락사 사업화 협박 받고 위기

낙태를 전면 허용하자는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주도로 발의되는 등 우리 사회에서 생명 경시 풍조가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안락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8월 방영을 시작해 우려를 사고 있다.

8월 1일부터 MBC에서 방영하는 금·토 드라마 '메리 킬즈 피플(Mary Kills People)'은 현대의학으로 치료 불가능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죽여 주는' 의사와 이들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MBC 홈페이지에서는 "메리킬즈피플은 한마디로 '삶과 죽음, 옳고 그름' 의 경계를 넘나드는 메디컬 스릴러 드라마"라며 "사람을 살리는 직업인 의사가 아이러니하게 환자를 위해 죽음으로 인도하는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라고 드라마 제작 의도를 소개하고 있다.

주인공인 우소정(이보영)은 종합병원 베테랑 응급의학과 의사로, 어린 시절 희귀병에 걸린 어머니의 자살을 도왔다고 설정돼 있다. 등장인물 소개에 의하면 우소정은 이러한 죄책감을 극복하고자 의사들이 기피하는 응급의학과에 지망했지만, 정해진 결말 앞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던 중 젊은 말기 암 환자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신념은 변하게 된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환자들에게는 연명치료가 아니라 '안식'이라는 치료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소정은, 특정 환자들을 선별해 비밀리에 안락사를 제공하는 이중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안락사를 사업화하려는 탐욕스러운 마약 딜러의 협박과 부패 경찰의 함정수사로 소정은 위기에 처한다고 한다. 여기에 우소정의 동료 전직 의사 최대현(강기영), 시한부 말기암 환자인 조현우(이민기) 등이 출연한다.

'죽음을 돕는 의사'가 주인공인 만큼, 생명 경시 문화를 조장하고 사실상 안락사(조력 사망)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안락사 대신 본질을 흐리고 죄책감을 회피하기 위한 '조력사망·존엄사' 등의 용어 선택도 문제다.

제작진 발언은 일단 중립적이다. 7월 31일 제작발표회에서 박준우 감독은 "저희 전체 이야기도 상황마다 '안락사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이런 케이스가 있으니 안락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은 아니"라며 "반대하기도 하고, 우소정도 굉장히 갈등한다. 때로는 최대현을 말리기도 하고, 대현이 소정을 말리기도 하고, 그런 갈등의 연속이 있다. 심지어 이민기 배우 캐릭터조차 혼란스러운 모습들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박준우 감독은 "안락사에 대해서는 각자 개인들만의 입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존엄사라고 표현하는데, 안락사 전 단계라 생각한다. 죽음의 선택에 있어, 소수자의 어떤 선택 아닌가 싶다"며 "모든 사람에게 다 좋으니까 대중적으로 해야 한다기보다, 유럽이나 캐나다에서도 죽음을 앞둔 사람 3-5%가 한다더라. 행복한 죽음을 보장하는 지름길이나,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드리진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캐나다 원작 드라마 썸네일 화면. ⓒPrime Video
▲캐나다 원작 드라마 썸네일 화면. ⓒPrime Video 

캐나다 원작, 안락사법 통과 후 방영

'메리 킬즈 피플'은 2017년 캐나다 Global TV에서 방영된 캐나다 드라마 'Mary Kills People'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2019년까지 세 시즌 18편의 에피소드가 제작됐고, 이후 미국 Lifetime에서도 시즌 1-2가 방송됐다.

캐롤라인 다베르나스(Caroline Dhavernas)가 연기한 주인공 메리 해리스(Dr. Mary Harris)도 한국판 주인공 우소정처럼 낮에는 '응급실 의사'로 일하고, 밤에는 '죽음의 천사'로 불리며 불법 안락사를 도왔다

캐나다는 방영 전 해인 2016년 MAiD(Medical Assistance in Dying), 즉 안락사를 합법화했고, 이 드라마에는 사회적 논의를 선도하는 드라마라는 평가와 함께, 윤리적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이후 신체적 장애나 만성 질환, 심지어 경제적 이유로 MAiD를 신청하는 사례가 급증, 현지에서는 "이제 치료가 아니라 죽음이 의료의 선택지가 되는가"라는 근본적 회의도 제기됐다.

국내 안락사 법적 금지돼 있지만
안규백 의원 존엄사 허용법 발의
의사협회 명확한 반대 입장 천명

국내에서는 현재 조력자살 및 적극적 안락사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안규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조력존엄사 허용을 골자로 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지난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지난해 발의한 상태여서, 드라마 방영 후 내용에 따라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의료계는 '안락사 반대 방침'이 명확하다. 대한의사협회는 2017년 개정한 의사윤리지침 제36조 1-2항(아래)에서 안락사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다.

① 의사는 감내할 수 없고 치료와 조절이 불가능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사망을 목적으로 물질을 투여하는 등 인위적, 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연적인 경과보다 앞서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
②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

또 지난해 협회 공식 정책과 입장인 KMA POLICY에서도 의사 조력자살에 대해 "자살을 돕는 범법 행위"라며 명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의사의 전문직 윤리와 직업적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 의사 조력 자살(PAS, Physician-Assisted Suicide)에 반대한다"며 △의사 조력 자살은 의사가 환자의 자살에 관여하는 행위로 생명을 살리는 치료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의사의 전문직 윤리와 직업적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다 △의사는 의사조력자살을 시행하거나 자살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의사조력자살을 요청하는 것은 환자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경우 의사는 환자의 고통에 관련된 요인을 찾아내어 의사조력자살이 아닌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하나 의사조력자살은 생명을 중단하는 행위로 자기결정권의 경계를 벗어난다 등을 규정했다.

▲응급의학과 의사 우소정이 환자를 베개로 덮어 죽이려 하는 모습. ⓒMBC
▲응급의학과 의사 우소정이 환자를 베개로 덮어 죽이려 하는 모습. ⓒMBC 

전문가들 "생명 존엄성 훼손, 사회적 부작용 우려"

기독 의료계 전문가들도 일제히 드라마의 악영향에 대해 우려했다. 의료윤리연구회 문지호 회장은 "아직 드라마 내용은 모르지만, 조력자살과 안락사를 미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죽어가는 사람과 가족들이 후련한 표정으로 '편안함, 감동, 감사' 등의 단어로 화면을 꾸밀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지호 회장은 "안락사를 이미 시행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불법과 그 이후 남은 가족들의 고소와 아픔 등이 외면될 수 있다"며 "생명은 죽음 앞에 닥쳐오는 고통을 의미 있게 다룰 수 있는 데서 고귀한 것이다. 고통을 없애는 도구로 안락사가 사용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이명진 공동대표도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생명 존엄성 훼손과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우려다. 인간의 존엄성은 기능과 능력 정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며 "인류는 생명 존중을 절대선으로 여기고 살인과 자살을 금기로 정해 놓았다. 생명은 개인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의 가치다. 자살이나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것은 사회적 윤리와 공공선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이명진 공동대표는 "의사의 본질적 사명은 생명을 보호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인데, 의사 조력자살은 의사가 환자의 죽음에 직접 관여하게 해 '치료자'라는 의사의 정체성과 전문직 윤리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의사 개인 인권도 침해한다"며 "조력자살 대상이 초기 말기 환자에서 점차 정신질환자, 미성년자 등으로 확대되는 '미끄러운 경사길' 현상이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안전장치 없이 도입된다면 부작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구 10만 명당 27.3명(2023년 기준)이라는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을 거론하면서 "법으로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것은 사회적 상처와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라며 "세계 자살률 1위 국가에서 의사 조력자살을 미화하고 조장하면 안 된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해외 통계에 따르면 안락사를 도입한 국가들에서 자살률도 함께 상승하고 있다. 미국은 안락사를 도입한 일부 주들에서 전체 자살률이 약 6.3% 증가했고, 특히 65세 이상은 약 14.5%나 늘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스위스 등 안락사와 의사 조력자살 도입 국가에서도 자살률은 증가했다. 안락사 도입이 자살을 대체하지 못했고, 오히려 생명 경시 현상을 확산시켰다는 것.

드라마가 먼저 방영됐던 캐나다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2016년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18세 이상 성인이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의사 조력자살을 합법화한 캐나다는 2021년 법률을 개정해 말기 질환뿐 아니라 만성 질환자들까지 대상을 확대시켰다.

그러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2023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사회복지 서비스와 의료 지원 추가를 요청하자, '의사 조력자살'을 제안받았다고 폭로한 것. 이는 의료진이나 사회복지사가 환자에게 의도치 않게 자살을 유도하거나, 지원이 아닌 죽음을 선택하도록 압박을 가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후 2024년부터 정신질환자들도 의사 조력자살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려다, 시행이 연기됐다.

2023년 기준 캐나다에서 의사 조력자살에 의한 사망자는 1만 5,343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약 4.7%에 달했다. 2016년 합법화 이후 2023년까지 7년간 총 6만 301명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삶을 끝냈다.

▲드라마 소개 배너. ⓒMBC
▲드라마 소개 배너. ⓒMBC 

생명 존중과 완화의료가 우선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설 확대
성숙한 시민의식 위한 교육도

이 드라마가 제기하는 회복 불가능한 환자들의 고통과 연명치료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조력자살 논의에 앞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등 존엄한 돌봄 체계 확립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 완화의료 수혜 대상이 아직 제한적이므로, 예산 확대와 시설 확충이 요구된다는 것.

문지호 회장은 "불치병 환자들을 위해 호스피스 기관 이용을 확대하고, 완화치료를 통해 자연사 때까지 편안하게 환자들을 지켜줘야 한다"며 "그것이 현대 의학과 가족들이 해야 할 일이고, 정부는 해당 시설 사용 확대를 위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명진 공동대표도 "우리나라는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매우 적기에, 필요하다면 예산을 늘려서라도 관련 시설과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며 "국가는 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민들을 예우해야 한다. 출생부터 자연사하는 순간까지 옆에서 돌봐주고 힘이 돼 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생명의 소중함을 어릴 때부터 전파하고, 후손들에게 '죽음의 문화'와 '생명의 문화' 중 어떤 것을 남겨야 하는지 교육해야 한다"며 "정치인들부터 생명 존중 사상을 지지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