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이 멜리데(몰타) 섬에 난파하여 기적을 베푼 뒤 로마로 압송되며 기록이 마무리됩니다. 이제 사도행전 다음의 이야기를 우리가 기록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바울을 좇아 완도군의 소외된 낙도를 방문해 낙도행전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또한 일상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며 이 책의 원고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질문을 넘깁니다. 여러분의 사도행전 29장은 무엇으로 써내려가고 있으신가요?"
박정욱 원장(광주 탑팀재활의학과)은 책 <나는 미술관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에서 전공자 못지않은 미술에 관한 지식과 애정을 바탕으로, 특히 '크리스천 의사' 관점에서 서양 기독교 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섬세하게 조망하며, 작품들 속 신앙의 메시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
1편에서 이어지는 박정욱 원장의 이야기는 낙도 의료선교를 비롯해 청년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다. 저자는 조선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전임 교수를 지냈다. 낙도 선교 등의 공로로 2021년 대한재활의학회 재활의학 봉사상을 받았다. 이번 책 외에도 <낙도행전>, <비수술치료 재활의학이 답하다>, <우리 아이, 바른 자세로 크고 있나요?>, <슬기로운 시니어 홈트레이닝>, <슬기로운 코골이 재활운동>, <우당탕탕 박 원장> 등을 썼다.
나는 미술관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박정욱 | 생명의말씀사 | 208쪽 | 17,000원
섬으로, 시간 드려, 하나님께로
청산도, 하나님 만나러 가는 길
과거 한국 선교사들처럼 효율적
-낙도 의료선교도 꾸준히 하고 계시죠. 가시면 과거 한국에 오셨던 선교사님들 심정도 느껴지실 것 같아요.
"물론이죠. 내일은(6월 26일) 전남 완도군 청산도로 갑니다. 그나마 있던 의원도 폐업한 곳이에요. 제가 있는 광주에서 완도행 연안 여객선 터미널까지 안 막혀도 2시간 10분은 걸리거든요. 거기서 또 띄엄띄엄 있는 배를 1시간 타야 도착합니다. 그러니 청산도 주민이 아파서 광주에 있는 저희 병원까지 오시려면, 4시간 이상 걸리겠죠.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어마어마합니다. 오히려 광주에서 서울을 가는 게 더 빨라요. 이곳뿐 아니라 요즘 폐업 등으로 병원이 없는 지역들이 늘고 있다는데, 이런 섬 지역 의료 수준은 말할 것도 없겠죠.

그래서 저희가 찾아가면 젊은 분이든 나이 드신 분이든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초음파 기기를 가져가서 그 자리에서 진단하고 시술까지 해 드리기 때문에 많이 고마워하시죠. 그분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 뭍으로 나와도 받기 어려운 수준의 진료입니다. 그곳에서 해결하기 힘든 치료의 경우, 전국에 있는 크리스천 의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결받으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의료인 600여 명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 오신 선교사님들도 각각 다른 교단에서 오셨지만 철저히 지역을 나눠 맡아 효율적으로 선교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광주 제중원에서 출발한 광주기독병원에서 전공의를 했습니다. 유진벨부터 포사이드, 윌슨과 서서평 선교사님 등의 사진과 청진기, 묘지까지 보면서 자랐기에, 그분들의 이야기가 깊이 들어와 았어요. 당연히 그분들의 헌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분들의 후예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선교에도 전략과 기록 필요해
의료선교 방향성은 'SUN ARM'
지속 가능성, 시급성, 네트워크,
적절성, 조사와 기록, 소외성
-그래서인지 유튜브나 글에서 의료선교의 효율과 네트워크를 강조하시던데요.
"저는 의료선교도 정확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영어 약자로 'SUN ARM'으로 부릅니다.
S는 'Sustainability', 지속 가능성입니다. 한번 반짝 하고 마는 시혜적 선교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 찾아가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도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그냥 여관에 던져 놓고 끝난 게 아니잖아요. 돈을 주면서 치료해 달라고 하고, 나중에 비용이 들면 더 주겠다고 하면서 지속성을 보여 줬어요.
의료선교에는 이런 부분들이 필요해서, 같은 섬을 매달 찾아가는 등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단기선교를 보면 여름에 한번 반짝 가서 다 쏟아붓고는 돌아와서 잊어버려요. 이런 일회성 선교는 지양하고,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도와줘야 합니다.
U는 'Urgency', 시급성입니다. 정말 필요한 곳에서 의료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광주에서 1시간 거리 정도에 가서 의료선교를 하는 건 맞지 않아요. 무의촌(無醫村), 병원도 의원도 없는 곳을 찾아가자는 것이 제 소신이고, 그래서 4-5가구만 사는 곳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N은 'Network', 네트워크입니다. 저는 모든 의사들이 다 섬을 찾아갈 필요는 결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처럼 그런 곳에 환자들이 많은 근골격계나 내과 등의 의사들이 특공대처럼 가서 전체적으로 진료를 봐 드리면 됩니다.
그렇게 해결할 수 없는 산부인과나 치과 환자들은 아까 말씀들인 의료인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하거나 그런 분들을 모아놓으면 해당 전문가를 섬으로 모셔서 한꺼번에 치료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채팅방에 사연을 올리면, 적절한 분들이 해결해 주십니다.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박정욱 원장이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
A는 'Appropriateness', 적절성입니다. 가서 저 혼자만 기분 좋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는 일들이 자원부터 시간과 방향 등 제대로 적절하게 돌아가는지 평가해 봐야 합니다.
R은 'Research & Recording', 가장 중요한 조사와 기록입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사전조사를 하고 다녀와서는 반드시 기록을 남깁니다. 우리나라는 기록에 약해요. 그래서 선교사 한 명이 사역을 멈추면 이어서 선교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명이 그만두더라도 언제든지 다음 분이 시행착오 없이 노하우를 이어받아서 선교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겨야 해요.
제가 매달 의료선교를 다녀오면서 유튜브를 촬영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도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저를 이어서 낙도 의료선교를 할 때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직 제 뒤를 이어서 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빛과소금>에도 매달 투고하고 있어요.
저는 하나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뒤를 이어 누군가 또 낙도 의료선교를 하실 분들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M은 'Marginalized', 소외성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병원도 의원도 없는 섬, 의료 사각지대에 먼저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 소신입니다."
기회비용 지불하고 선교와 봉사
몇 배 채워 주시는 하나님 경험
상대적 박탈감, 절대적 이유인가
어려움 속 하나님과 만나게 돼
빠른 해결 또는 도피 능사 아냐
다윗도 고난 통해 성장, 왕까지
쉬움·빠름 추구 시대 역행해야
고통·희생 통해, 아름다운 결과
-이렇게 많은 일을 하시는데,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시나요.
"골프 안 치면 된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많이 쉬어요. 수요일 오후부터 목요일까지 쉬고 주 4일 진료해요. 직원들도 그래서 좋아해요(웃음). 돈을 좀 덜 벌더라도, 그 시간에 글 쓰고, 교회 일도 하고, 라디오 방송도 하고, 섬 봉사도 갑니다. 그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죠. 제가 즐기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환자를 보고 돈을 버는 등의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에도 미리 계획한 다음 시간을 굉장히 아끼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틀 근무를 포기하는 게 힘든 거잖아요.
"포기하면 됩니다. 그것도 한번 해봐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 몇 배로 채워 주십니다."
-시간 관리법을 여쭤본 것은 이 글을 읽을 크리스천 청년들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에게 비전과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신다면.
"지금 청년들 삶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우리나라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만큼 상대적 박탈감이 큰 시대잖아요. 하지만 그 박탈감이 절대적인 데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SNS를 비롯해 주변에 너무 시야를 뺏기고 비교 대상이 생겨서 그런 것인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선 1등만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은 달라요. 알려지거나 드러나지 않아도, 당신을 온전히 섬기는 영혼을 기억하시죠. 하지만 그런 점들이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에, 청년들이 그 안에서 위로를 얻기보다 오히려 박탈감이나 자괴감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 화가 외젠 뷔르낭(Eugene Burnand, 1850-1921)의 '부활의 아침에 무덤으로 달려가는 제자 베드로와 요한(the disciples peter and john running to the sepulchre, 1889)', 파리 오르세미술관. 저자는 책에서 이 그림에 관해 "성경 속 인물이나 열두 제자마저도 실제로는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인간의 혼란스러운 감정 동요와 공포에 휩싸이는 나약하고 평범한 인물들에 불과하다"며 "그러한 진솔한 표현과 접근을 통해, 그들의 영웅적 순교 이전에 우리와도 전혀 다를 바 없는 이들의 삶과 믿음을 발견하며 위로를 받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제가 살아온 바에 의하면 막 드러나고 나타내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보다, 낮아지고 어려움 속에 있을 때 더 많이 만져 주셨어요. 저도 지금은 책도 쓰고 다니엘기도회에서 간증도 하니 유명세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오랜 기간 힘든 시절이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공감대를 얻는 것 같아요.
지금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다면,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과 대화하고 만나고 그 안에서 주시는 의미를 깨달으려고 노력하셨으면 좋겠어요. 빨리 이 잔을 채워 달라고 한다거나 도망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부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가시는 것 같아요.
다윗도 어느 날 갑자기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것이 아니잖아요. 수많은 고난을 통해 성장하고 성장해서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것을 기억하세요. 오늘날 시대가 어렵고 힘든 일은 기피하고, 쉽게 돈 벌고 고통 없이 빠르고 쉽게 하는 것을 추구하지만, 그런 시대에 역행하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어요.
정말 아름다운 것은 어렵고 힘든 곳에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다면, 과연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정말 아름답고 선한 것은, 고통과 희생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고난 자체를 추구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이나 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책무를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걸어가는 그곳에, 하나님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을 쉽게 달래기보단,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그곳에 하나님 뜻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향후 집필 계획은.
"말씀드렸지만 <나는 음악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가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를 쓴 C. S. 루이스와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이 친한 친구였거든요. 루이스가 톨킨을 통해 신앙을 접하기도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어 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와 친한 최철규 만화가와 함께할까 하는데, 최 작가가 <만화로 읽는 천로역정>을 그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원전인 <천로역정(1678)>을 쓴 영국 작가 존 버니언이야말로 '기독교 판타지 문학'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어요.
<천로역정>부터 시대가 흘러 20세기 루이스와 톨킨의 작품까지 판타지 문학의 역사가 이어져 왔는데, 기독교 색채도 가지고 있는 점이 흥미로워서 젊은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