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제자도(우리가 행하는 일)가 비극적으로 분리된 이유는, 그가 실제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에 대한 심각한 오해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로 대체했다. 구원하는 믿음에 대해 가르칠 때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했다.
저자 달라스 윌라드 교수가 이 책을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는 독자들을 아름다운 사랑의 현실로 인도하는 통로로 드러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안일한 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일단 비유들을 듣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비유들은 우리 삶의 내면을 혁신하고 재구성한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가 사랑, 용서, 긍휼, 정의의 참 의미를 일깨워 줌으로써 독자들의 삶과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혁명적 능력을 선사하길 소망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예수님이 오셔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잊으라는 것이었다.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기(마 11:27)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명심해야 할 중요한 개념이다.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영리하고, 지적이고, 학문적이라고 해서, 심지어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와 상호작용하시는 것은 인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삶이라는 조건에 의존한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과 온 세상 앞에서 잃어버려진 자, 정죄받은 자로 서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무엇이 옳은지 알지 못한 채 인생에서 목적을 잃고 방황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이 완전히 무가치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런 후에 사랑의 아버지 품에 안겨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옳은 말과 행동을 하고 하나님을 돕는 사람이 되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용서받은 자, 즉 잃어버려졌던 것과 용서받았음을 완전히 아는 사람의 마음은 로마서 8:33-35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를 정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 누군가가 내가 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비난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나는 화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직접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까.'"고 했다.
그러면서 "제자로서 우리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접점이 되고 있다. 그 영역에서 하나님의 관대함으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커다란 필요가 채워진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며 서 있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그의 반응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살펴보라. 당신이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긍휼, 은혜, 관대함의 도구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당신의 '일상의 업무'가, 세상의 인간적 순서에서는 가장 나중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제공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예수님의 대답은 비유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완벽한 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질문을 들으셨을 때, 이웃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거나, 그 율법교사의 이웃이 누구인지 목록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대신에 예수님은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그가 하나님 나라를 탐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이 이야기는 '내 이웃은 누구인가?'에서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었다. '내 이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토론과 논의는 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질문은 '당신은 누구의 이웃이 되겠는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