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아들과 딸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문자로 전화로 그리고 화상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렇게 나눈 대화는 아들과 딸에게 주는 아빠의 인생 훈수요 부탁이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부탁하며 훈수했던 삶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나도 남은 세월에서 꼭 실천하고 싶다.
아들딸에게 전한 메시지 중 하나가 “거시(巨視)인생과 미시(微視)인생의 조화”다. 아들과 딸이 거시적 안목과 미시적 열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젊은 그들이 인생을 거시적으로 그리고 미시적으로 살아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생은 거시적 비전과 미시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생을 거시적으로만 보면 현실성이 없고 반면에 인생을 미시적으로만 보면 인생이 천박해진다.
거시(巨視)와 미시(微視)라는 말은 경제학에서 자주 쓰인다. 국가 경제나 세계 경제를 살피는 큰 경제학이 거시 경제학(Macro-Economics)이라면 가정 경제나 개별 산업과 지역경제를 살피는 것이 미시 경제학(Micro-Economics)이다. 미시 경제의 뒷받침이 없는 거시 경제는 건강할 수 없다. 거시 경제를 고려하지 않는 미시 경제는 파괴적일 수 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도 거시와 미시의 안목과 지혜가 필요하다. 인생을 살펴보면 매사에 거시와 미시 사이의 결단과 균형을 요구한다. 10년, 20년 후의 인생을 준비하면서 오늘을 놓치면 거시인생에 치중한 나머지 미시인생을 놓친 것이다. 장래의 삶에 대한 숙고와 준비 없이 오늘의 삶에 몰입하면 미시인생에 집중하여 거시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미시의 삶과 거시의 삶의 균형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조건이다.
미시와 거시는 그리스도인 삶에도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천국의 삶을 지향하는 거시적 비전과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사는 미시적 실천이 필요하다. 성도는 천국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천국 소망 때문에 오늘을 허비하면 안 된다. 반면에 오늘 때문에 천국을 잃어도 안 된다. 건강한 성도의 삶은 영원(Eternity)과 지금(Now)이 조화로운 이터나우(EterNow)적 삶이다.
또 성도는 미시적인 삶의 실제(Local)에 충실한 삶과 거시적으로 세계를 품는(Global) 비전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세계를 품은(Global) 선교사였지만 고향을 사랑하고 동족을 사랑하는(Local) 사람이었다. 그는 세계를 누비는 선교사였지만 방문한 지역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세계적인(Global) 비전과 현실(Local)이 조화를 이룬 건강한 글로컬(Glocal) 신앙인의 삶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시선으로 세상과 현실을 보아야 한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불꽃 같은 하나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범사에 조심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큰 가슴이 필요하지만, 하나님 시선을 의식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한다!
눈앞에 작은 이익 때문에 실패자가 되고 영원한 삶을 놓친다. 크고 원대한 꿈만 추구하다 현실을 놓쳐 인생을 망치기도 한다. 맞이하는 2025년을 치열하게 살고 싶다. 아울러 삶의 균형도 놓치지 않고 싶다. 글로컬(Glocal)의 공간 균형과 이터나우(EterNow)의 시간 균형을 유지하리라. 거시적 안목과 미시적 실천으로 아쉬움이 덜한 2025년의 연말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