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3)
모든 동물은 집을 짓고 삽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하셨습니다. 여우같은 짐승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둥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인류 역사 초기부터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초기에는 움막이나 토굴 속에서 살다가, 후에는 제대로 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집을 땅에 짓습니다. 따라서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좋은 터를 잡아야 합니다.
한국에는 “3대(代)가 적선(積善:착한 일을 많이 함)을 해야 정남향(正南向) 집을 짓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의 전체 면적 73%가 산이어서, 좋은 집터 잡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전에는 대부분 단층집에서 살았지만, 부자들은 2층 집에 살기도 하고 혹은 지하실까지 3층에 살기도 했습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제한되어 있는데, 인구가 많아지면서 더 이상 집을 지을 땅이 없어, 이제 공중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습니다. 옛말에 공중누각(空中樓閣)이라는 말이 있는데, 공중에 누각을 짓는다는 말로,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정말 공중에 누각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공중누각이 바로 아파트입니다. 아파트는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시골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려오면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중에 누각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근대적 아파트를 처음 지은 사람은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1887-1965)로, 그가 건축물을 공중에 지으면서 오늘의 아파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필자는 인류의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꼬르뷔지에게 노벨상을 열 개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택 개념의 혁명이고, 인류의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옛말에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가 있습니다. 좋은 교육,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가 보장되는 곳이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자, 주택이 부족하여, 좁은 땅에 수십, 수 백 가구가 살 수 있는 높은 아파트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한국은 시골에도 아파트가 들어서 아파트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100평 고급 아파트에 산다 해도, 그곳이 인간이 언제까지나 살 수 있는 거처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부르시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동묘지로 가야합니다.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이 있지요. 죽은 후에 우리는 아무 것도 갖고 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것이 많도다.....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세상 집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고, 영원한 거처(居處)는 예수님께서 천국에 마련해 두신 거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처’를 어떤 영어 성경에는 mansion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천국의 고급 mansion에서 살 것입니다. 땅에 있는 맨션보다 천국의 맨션을 기대하며 바른 믿음 생활에 매진합시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만납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교수.